우리나라에 이토록 부정부패가 심각해 진 것에는
교회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가르침에 너무 소홀한 결과가 한 몫했다고 생각합니다.
주님도 기도를 가르치실 때조차 일용할 양식정도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먹는 것과 입는 것으로 족한줄 알라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삶의 자세문제는 가르침의 전면에 서지 못하고 소외되고 무시되어버립니다. 세속적 성공과 승리라는 구호에 묻혀 사장되어 버린 지 오랩니다.
배규태님의 현실적인 이야기들 모두 공감합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현주소이고 현실입니다.
하이텔에서 활동하던 때 그리스도인 여의사분이 일단 10억을 저축하는 목표로 산다고 할 때...그 발상이 탐탁치않다고 비판한 적이 있었지만 ...그것이 또한 우리들의 처한 현실이라는 것 부인할 수 없다는 것 이해는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다는 것과...산다는 것을 이토록 분리해서 이중적인 자세를 견지한다면...
정말 그것이 올바르게 믿는 것일까...회의하게 됩니다.
이상을 포기한 교회...
현실만 인정하는 교회...
부정부패도 현실이니 인정하고
낙태도 현실이니 인정하고
술취함도 현실이니 인정하고
빈익빈부익부도 현실이니 인정하고
권력남용도 현실이니 인정하고
그게 교회입니까?
살아서는 현실적인 이익을 취하고
죽어서는 미래적인 이익을 예비하는
기회주의집단에 불과한 것이지...
...
교인들은 세상의 눈치를 살피며 ... 현실을 인정하고 살고
목사들은 교인들의 눈치를 살피며...현실을 인정하며 목회하는
그런 교회...
거기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와...이 세상을 눈꼽만큼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는 영향력이 나타나겠습니까?
...
정말...
최소한 세리의 그 가슴을 두드리던 마음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01/30 Re:교회의 가르침보다도.... 19
: 그 외의 것들 돈이 개입하지 않는 도덕적인 문제 윤리적인 문제들은 기독교의 가르침이 중요하며 실천해야만 하는 문제들입니다.
...
저는 물론 돈외의 도덕적 문제등의 교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말 잘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바리새인들에겐가요...고르반이라고 하는 데에 대하여 심하게 꾸짖고 계신 장면이 있습니다.
부모에게 해야할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하는 것이죠...
이것은 돈문제 아닙니까?
만약 기독교인들이
부모를 물질로서 잘 섬기는 모습을 보였다면...노후보장이 없어 자살하는 그리스도인 노인들은 없었을 것이며
믿지는 않더라도...많은 노인들이 교회에 호감을 가지고 나아왔을 것입니다.
만약에(만약이란 말을 계속 붙여야 하니 괴롭습니다마는)공무원중에 기독교인들인 이들이 노골적인 뇌물은 차치하고 작은 선물을 가장한 뇌물에조차 단호한 거부를 보였다면...기업하는 데 그렇게 부정부패로서 상부상조해야하는 어려운 일들이 발붙일 수 있었을까요?
...
저는
다른 그어떤 윤리문제보다
"돈"문제에 대하여...그리스도인들이 성경적으로 살려고 먼저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국가에서 시행할 복지(이것도 부정이 많다고 하더군요)를 기다리며..적당히 상부상조하며 살자 한다면
이해는 할 수 있지만...도저히 찬성을 할 수는 없습니다.
...
물론 개인적인 결단과 노력이라는 대안밖에 없는 일이지만 말입니다.
누가 안알아줘도...하나님은 아시지 않습니까?
원필
01/30 교회의 가르침보다도.... 19
교회의 가르침이 잘못돼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이 너무 급박하다 보니까 그런것 아닐가 생각합니다.
노후대책없이 빈손으로 늙었을때 아무런 보장이 없이 비참해 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사촌형님이 적십자 병원에 의사로 근무하는데 전에는 아침에 출근하면 아스팔트 바닥에 이빨들이 즐비했답니다.
밤중에 독거 노인들이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하면 이가 땅에 부딪쳐서 빠진 것들이었답니다.
자녀들 돈 들여서 공부시키지 않았을때의 현실은 참담합니다.
집세에 쫓겨서 2년에 한번씩 집을 옮기며 일년간 저축한 돈 다 털어서 집세 오른것 보충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직장을 잃었을때 먹고살 길이 막막한 것이 현실입니다.
몸이 병들었을때 누구도 도와주는 사람없고 막막한 것이 또한 우리의 현실입니다.
아무런 보장이 없습니다.
보장이란 돈밖에 없는 것이 또한 현실입니다.
하루 먹을 일용할 양식만 가지고는 도저히 살아갈 방법이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일부 권력층이나 부유층들의 부익부 빈익빈을 부추기는 부정 부패는 일소되어야 하지만 일반 서민들에게 까지 일용할 양식으로 만족하라고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사회 복지가 완벽한 나라에서는 일용할 양식으로도 만족할 수 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 노후대책문제, 주거문제 교육문제, 의료문제등은 현실적으로 너무도 심각하게 옭죄는 문제이기 때문에 함부로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고위층이나 권력층 일부 부유층에게 영향을 발휘하여 정신 개조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권력층이라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권력층은 아니니까 김원필님의 말도 일리는 있습니다.
교회 자체도 그렇습니다.
하루에도 수십개씩 개척교회라는 군소 교회들이 설립이 됩니다.
개척교회란 현실적으로 볼때 스스로 먹고 살면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큰 교회란 3M 이나 삼성같은 기업이지만 개척교회는 우리나라 구멍가게 회사입니다.
교회도 유지되려면 결국은 돈이 필요합니다.
돈이 남아서 쓸데없는데 사용하는 대형 교회도 있지만 집세도 못내는 개척교회가 많습니다.
교회 자신이 기도로서만 유지된다고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
교회의 가르침 일용할 양식정도로 만족하고 사는 사회가 되려면 자신이 비축한 돈으로 해결하는 사회가 아니고 공동으로 비축한 돈으로 공동으로 해결되는 사회가 되어야지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로 만족하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그 외의 것들 돈이 개입하지 않는 도덕적인 문제 윤리적인 문제들은 기독교의 가르침이 중요하며 실천해야만 하는 문제들입니다.
배규태
01/30 Re:진짜 하나님 말씀/^^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딤후3:16
음...여기서 성경은 구약을 의미한다고 보아 별 문제 없으니...아굴의 잠언도 하나님의 말씀이 되겠죠?
형제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벧후3:15
음...하나님께 받은 지혜로 썼으니 하나님의 말씀이라해서 뭐 그리 틀린 말이 아니겠는걸요?
그리고...예수님의 말씀을 걸고 넘어지시면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라는 주님의 말로 대신할 밖에는 없군요^^
그걸로 부족하다구요?
"하나님의 보내신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 됐어요?
시비할 것을 시비하세요^^
원필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라는게 들어가야 하나님 말씀이 아닐까 싶네욤.
:
: 성경에 있다고 다 하나님 말씀은 아닐 듯.
:
뵈뵈
01/30 Re:Re:당연히 그래야 한다는건 진리입니다. 17
물론 김원필님의 생각이 모두 옳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개개인의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을 쫓아서 사는 생활이 되기 까지는 너무 힘든 문제가 많습니다.
천년이상을 기독교를 믿고 살아온 유럽도 아직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공산주의가 유럽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결국 국가가 국민 복지 문제를 외면하여 부정 부패가 심각하고 부익부 빈익빈의 계층 차별화가 심각해 지면 우리나라에서도 공산주의는 다시 일어섭니다.
그러기전에 우리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한 기독 사회주의(그냥 붙여본 명칭) 체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회주의라면 공산주의와 혼돈하는 분들이 많은데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은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그리고 김원필님이 말씀하시는 성경의 말씀들중 일부분은 그 당시 유목민들의 인구 몇명 되지않고 그날 그날 먹고 사는 것만 해결하면 되는 시대의 야기가 많습니다.
부모님을 모시려면 집도 큰집이 있어야하고 노후 의료비 부담도 져야하고 기타등등으로 또 부모님 모실 돈을 비축해야 합니다.
개개인이 하나하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개조되는 사회가 빨리 와야 겠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은 급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잘못하다가는 아르헨티나 꼴 납니다.
배규태
01/30 김원필 형제님의 하나님 말씀 구별 법. 24
진짜 하나님 말씀인지 가짜 하나님 말씀인지 구별하는 것은 김원필형제님 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일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 어떤 형제가 짜장면 짬뽕의 메뉴선택을 주님의 응답으로 결정할 때는 사이비.
** 연변신앙하는 형제가 교회의 출석을 주님에게 응답으로 결정할 때에는 침묵
바이블에서 하나님 말씀을 찾을 때에는 위와 마찬가지로 결정할 것 입니다.
그렇다면 김원필 형제님은 어떻게 구분하는가?
간단합니다. 마음에 들면 하나님, 말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인간 탓 ..
비슷한 우리 속담에 "잘 되면 내 탓, 안되면 조상 탓"의 거꾸로 버전으로 보면 됩니다.
물론 모두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안면 있고 친분 있으면 공감하는 척 한다거나 침묵
하는 게 기독교인의 습성이죠.
바쿠스
01/30 와우.. 하나님의 의중을 아는 형제도 나타났군.. 22
>하나님의 말씀을 녹음해 놓은거 어차피 없는 마당에
>뜻이 하나님의 의중과 같으면 하나님의 말씀인 셈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성진형제님께선 그 분의 의중은 인간이 모른다고 했던 것 같았는데...
하나님 의중을 아는 신통방통한 형제님이 등장하셨군요.
귀귀코코(주1)식의 변은 기독교인의 특징이긴 합니다만...
---------------
(주1):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배규태 형제님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식으로 번역하면 ear ear, nose nose ^^)
바쿠스
01/30 Re:교회의 가르침보다도.... 21
사회구조가 변화되지 않으면
사회가 변하지 않으면 아무리 기독교인이라 할지라도 어쩔수 없었던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인것만은 분명합니다
사회구조의 근본적인 변화와 개선이 없으면
아무리 기독교인이라 할지라도 역부족이며 그런 사회속에서 살아가야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타협할 것은 타협해야하는 어쩔수 없는 현실에 대한 말씀을 듣고 가슴이 많이 아프군요
그렇습니다
그것이 현실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가슴앓이를 하면서도 그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김원필님은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는 어떤 상황, 어떤 조건에 우리가 처해있다 하더라도 그 가운데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말씀하시매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길은 좁은 길입니다
대세의 흐름속에서 나름대로의 양심과 믿음을 가지고 살아도 되는 적당주의가 오늘의 이 현실을 이렇게 되도록 만드는데 일조 한게 아닌가,
또한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비판과 각성을 촉구하고 있고 본 칼럼이 그러한 중심이 흐르고 있기에 저 개인적으로 무척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배규태님도 전적으로 저의 생각과 동일하시리라고 여겨집니다
잘 아시겠지만 구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일조를 바치라 하셨고 그 바쳐진 십일조는 제사장이 쓸 최소한의 것만 남겨두고 모두 고아나 과부, 약자나 어려운이들을 위해 사회에 환원이 되었음을 기억하시겠지요
그래서 그 사회는 누구나 할것없이 적어도 최소한의 일용할 양식과 최소한의 생계는 유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다른나라의 사회복지제도와 유사한 모습일 것입니다
물론 그것을 시행하게 된 정신과 사상은 기독교의 정신이든 아니든 말입니다
저는 오늘날 우리의 교회도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헌금을 맡은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헌금이 쓰여져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사회보장제도가 정부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지만 그것은 계속 발전, 확대 되어나가야 할 것이고
그것을 만드는데나 시행하는데에서도 기독교인들이 할수 있는 최선의 몫을 담당해야 겠고
교회도 자신의 몫을 담당해야 겠고
개개인으로서의 기독교인도 역시 마찬가지라 여겨집니다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보다 구체적이고 심도 있게 확실한 의지를 가지고 가르치는 경우가 많지 않아 보입니다
교회도 세속화 물량주의에 많이 젖어있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돈과 명예, 권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면 그것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합니다
자신이 자유롭지 않음으로 그에 대한 정면 비판과 발전적으로 보다 나은 상태로 나아가기를 주저하며
사회가 이러니까,
교인들이 원하지 않으니까
자신도 그런 속에서 어쩔수 없이 살고 있으니까등등의 이유로 인해 한탄은 하면서도
실천이 따르지 않는 무력한 기도는 하면서도
죄용서는 구하면서도
다시 그 자리에 뭉개고 앉아 버립니다
저는 이런 현실을 보면서 망하면 망합시다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심정을 가지고 살아 보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럼으로써 모두 함께 사는 길로 다시 일어서자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돈이든, 부정부패든, 사회의 구조이든, 무엇이든 말입니다
교회도 역시 마찬가지이고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 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좁고 험한 길로 정진 또 정진 해야 합니다
그 길만이 지금 당장은 죽는 길로 보이지만 다시 사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다가 죽으면 그것으로 족하겠지요
일생을 진리와 씨름하며 그길을 걸어왔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가장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기에 말입니다
초면에 너무 말이 길어 실례가 많았습니다
다 알고 계시는 말씀이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행하지 않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고 사료되며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살기를 원하시기에 강조해 보았습니다
샬롬!^^
소미산
01/30 바쿠스님과 뵈뵈님...한데묶어^^ 30
먼저 뵈뵈님...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성경의 참된 저자를 성령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정도 주관적인 관점이 있지요.
이것을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요?
그리고
딤후의 성경은 구약이라고 명시했는데...글좀 잘 읽고 답을 하시구요^^ 그 뒤의 것들도 그래요^^
바쿠스님의 연변운운은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중국집가서 짬뽕먹을까 짜장면 먹을까하고
문제가 있어서 교회에 나가야할 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것하고 같은 문제일 수 없고
그러므로
짬짜님^^의 경우 얻는 답과
고민중에 더 옳은 것을 선택하는 것과 비교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아내가 무지 아플 때 교회가야되나 말아야되나 고민한 적이 있어요
물론 가는 쪽으로 선택을 했죠...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뭐가 문제있어요?
저는 그분의 그냥 안다는 뜻이 그런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합니다.
바쿠스님이 짬짜님의 팬인줄 몰랐네요^^
원필
01/30 Re:김원필님께_차근차근 생각하시고 답변해 주시길 21
: 먼저 뵈뵈님...
: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
: 성경의 참된 저자를 성령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정도 주관적인 관점이 있지요.
:
: 이것을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요?
"다 그만한 이유"란 어떤 이유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성경에 씌어 있다고 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아니라고 이미 말씀드렸지요.
욥의 친구들이 한 말도 하나님의 말씀인지 질문했는데 답을 안하셨더군요.
제 의견은 그들이 한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그들의 생각 또는 느낌을 말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같은 근거로 김원필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이라며 인용하신 잠언의 말씀 또한
한 사람의 기도 내용일 뿐이지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박해 주십시오.
: 그리고
: 딤후의 성경은 구약이라고 명시했는데...글좀 잘 읽고 답을 하시구요^^ 그 뒤의 것들도 그래요^^
:
제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처음에 김원필님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며 인용하신 것이 디모데전서였죠.
그래서 제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 바울의 말이라고 했더니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근거로 김원필님께서 디모데후서를 대셨죠.
그런데 그 딤후 구절에서 말한 "모든 성경"이란 디모데전서가 빠진 구약이라면
논리의 앞뒤가 안 맞지 않습니까?
해명해 주십시오.
제 생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말, 하나님의 선지자가 하나님이 하신 말이라며 한 말, 하나님의 선지자가 자기 생각을 표현한 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기도 찬양 내용,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한 말,
예수님께서 하신 말, 예수님의 사도들이 한 말 등등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이 말들이 "성경"이라는 테두리 안에 들어 있다고 해서
도매급으로 "하나님 말씀"이라는 이름 하에 사용되어서는 안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한 말보다는 믿는 사람이 한 말,
예수님의 제자들이 한 말보다는 예수님이 직접 한 말,
선지자들이 한 말 보다는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말
등등이 더 무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김원필님께서도 인정하시다시피
사도 바울이 디모데 전후서를 집필할 당시에는
신약 성경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되어 있지도 않았고
구약 성경과 같은 정경의 권위를 인정받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이 쓴 편지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며
복음서와 동등한 권위로 사용되거나
심지어 복음서의 기록과 배치되는 주장을 위해 인용될 것이라고는
사도 바울 자신조차 짐작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뵈뵈
01/31 Re: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이 아모스 2장 6절 부터에 해당합니다./예... 16
북왕국 이스라엘이 당시 번성했지만
선지자의 눈앞에 그 망할 죄가 속속드리 비쳐졌습니다.
적절하신 말씀입니다.
원필
: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
: 신 한켤레를 받고 궁핍한자를 팔며
:
: 가난한 자의 머리의에 있는 티끌을탐내며
:
: 겸손한자의 길을 굽게하며
:
: 부자가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
: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
: 모든 단 옆에서 전당잡은 옷위에 누우며
:
: 저희 신의 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라.
:
배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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