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1학년이 되었을 때 고등학교 동창들이던 단짝 친구들은 매 주일마다 미팅으로 만난 여학생들과 서울 주변의 산들을 섭렵하고 다녔습니다. 월요일만 되면 그 녀석들 중 하나인 같은 대학 다니는 놈이 씩 웃으며 어디를 누구와 같이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학생식당에서 툭 던지는 바람에 소화에 약간 지장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저는 주일이면 교회에 나갔고 교회학교에서 봉사해야 했기 때문에 주일에 어디를 놀러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때였지요.
그 중에 녀석들이 가장 빈번하게 갔던 산이 소요산이었고 ... 그래서 소요산 하면 왠지 마음 한켠에 젊어서 누려보지 못한 유일한? 낙원처럼 마음에 남아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지작 만지작거리기만 하고 한번도 가보지 못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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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서 어제 금요일 하루를 자율휴업일로 정하여, 원경이와 교신이가 놀게 되었습니다. 큰 녀석들은 학교로 갔고 가을도 즐길겸...두녀석을 데리고 소요산으로 가보기로 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7호선 전철을 타고...도봉산역에서 1호선으로 바꿔타고...북의정부역까지 갔습니다. (사실은 의정부역에서 열차로 갈아타고 소요산역까지 가면 되는 것인데...) 거기서 소요산의 길을 물으니 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하여...136-5버스에 소요산이 커다랗게 써 있어 냉큼 탔더니 어린이도 할인이 안된다하여 1400*3=4200원을 지불하고 온동네를 꼬불꼬불 다 훼집고 다니는 버스 안에서 저나 아이들이나 속을 울렁이며 1시간이나 걸려 소요산 입구에 도착하였습니다. 집에서 9시 50분에 출발하여 12시 다되어 입구에 도착했으니 약 2시간이 걸린 셈이지요. 만약 의정부역에서 열차를 탓더라면 1시간 20분이면 족하였을텐데...평생 첫 걸음하는 곳이니 이정도 시행착오야 약과다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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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입구는 완만한 산책로로 잘 포장이 되어 있었고 단풍은 겨우 3할정도만 남아있었습니다. 다만 노란 옷을 입은 어린이집 아이들이 잠시 우리 눈을 즐겁게 해주었을 뿐이지요, 식사기도가 끝났는지, 유치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수녀님 먼저드세요'하라고 가르치고 맑고 고운 합창으로 "수녀님 먼저 드세요"하니 가운데 서 계시던 나이 많은 수녀님 얼굴에 활짝 꽃이 피는 것을 보았습니다.
소요산 입장료...는 어른 2000원 어린이는 650원이었고 우리는 3300원을 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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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이야기때무인지 이름뿐인^^요석공원이라는 곳이 있고 산으로 올라가는 곳엔 아담한 절집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소요산은 그 이름과는 전혀 다른 난폭함을 드러내었습니다. 원경이가 조금 오르고 나서 그만 돌아가자며 투덜거리며 한 말이 "내 평생에 이렇게 험한 산은 처음이예요"였으니까요.
길폭은 좁고 가울기는 가파르고 바위들은 얼마나 거칠고 날카롭고 단단한지...각진 차돌투성이의 산, 이것이 바로 소요산이었습니다.
평일이라 사람이 적었고 그리고 올라오는 이들이 대부분 연세든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이었습니다. 몇몇분은 우리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극기훈련하는구나...하시며 웃으셨고 원경이는 올라가는 내내 얼굴이 점점 일그러져 갔으며, 반면 교신이는 다람쥐마냥 거침없이 올라가 제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하백운대, 중백운대, 상백운대까지 갔다가 선녀탕으로 내려오는 길을 택했습니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오는 길이 등성이었던 것과는 달리 깊은 계곡이라, 만일 날이 좀 어둡기라도 하다면 길을 잃는 일이 어렵지 않을듯하였습니다. 정말 아래로 내려오는 내내 우리 셋 외에 아무도 없었거든요. 거의 다 내려와서 선녀탕??바로 위에 정말 위험한 길이 있었는데 아이들을 손잡아 겨우 내려 놓고 나니 거기 낙상하여 다치신 어르신 한분이 누워있었고 119소방대원들이 계속 올리오면서 조치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선녀가 화났나?하는 녀석들의 질문에 뭔가 안전장치가 문제 있는 것같지? 하고 아이들에게 대답하니 제 앞에 선 아주머니 한분 냉큼 받아 '아저씨 신발부터 안전장치가 문제있어요'하시는 것 아닙니까? 하긴 이 험한 산을 맨발에 샌달신고 다니는 이 우리밖에 없다 생각하긴 했습니다만...그 아주머니 저의 마눌에게 걸렸으면 뼈도 못추렸을 것입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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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까지 내려오니 3시10분...기차를 수소문하니 매시 40분마다 있다고... 산위에서 먹은 과자들과 사과들이 요동칠 정도로 빨리 걸어 기차를 탄 것이 3시39분 ...집에 도착한 것은 5시 20분
원경이는 다시는 그 산에 안가겠다 하고 교신이는 재미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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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곰곰 생각할 것도없이
그때 그 놈들이 소요산을 갔다와서 왜 눈을 더 반짝이며 제 속에 불을 질렀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어찌 그 산을 오르면서 손을 잡아주지 않을 수 있으며 등을 밀어주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어느 산보다도 함께 간 여학생의 손을 한번이라도 더 잡아볼 수 있었던 산...
그렇게 산행을 마치고 어찌 놈들의 눈이 반짝이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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