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대가리 나의 고백
강병송(donjoa) 2004/06/03 22:49 조회 : 20
믿지 않는 사람들 눈에는 "내가 예수를 믿어 내는 것"과 "예수님을 믿는 것"의 차이를 모를 것이다. 외견상으로 볼 때는 양쪽 모두 다 예수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나는 "내가 예수를 믿어 내는"쪽에서 정신 없이 뛰어 다니던 신자인줄로 착각한 무신론자였다. 더 잘 믿어 내기 위하여 열심히 지식을 쌓으려고 노력했고, 더 잘 믿어 내기 위하여 혼신을 다해 나분거리며 살았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모든 것들을 다 인정하면서도, 정통의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찬송을 부르면서도 마음속에 거리끼는 무엇이 항상 자리 잡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골수 예수쟁이 였고, 귀신도 쫓아낸 경험도 있고 방언도 하는 골수분자 예수쟁이로 비쳤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모태신앙이 아닌 나는 모든 종교는 동일하다는 사고방식에서 출발해서 이른바 '종교'와
복음은 완전히 다른 것이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고 나름대로 하느님과의 담판을 지으면서 성령의 은사들을 체험하고 방학때면 기도원에서 살았다.
그럼에도 자유가 없고, 평화가 없으며, 길거리에 핀 이름 없는 꽃 한송이보다도 못한 나를 느끼면서 살아야 했다. 나는 그럴수록 성경을 정신없이 읽었다. 성경에 관한 지식은 많아졌는지 모르겠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만족스럽지 못하고 허전한 그 무엇은 항상 나를 짖누르고 있었다.
예수를 믿는 것인지 아니면 예수를 믿는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헷갈리면서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주변에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대답해주는 사람이 없고, 이단들의 책을 읽어봐도 시원한 내용이 없었다. 구원파나 지방교회의 책들을 읽어봐도 의혹만 더할 뿐 시원하게 해결해 주는 그 무엇은 없었다. 제도교회인 구파교회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보려고 결혼 이전에 영적인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뛰어 다녀 보았지만 남는 것은 없었다.
결혼을 했는데 설상가상으로 와이프는 골수분자 불교신자였다.
반야바라밀다 신경에서부터 시작해서 불교에 관한 책들을 읽어댔다. 그러나 그곳에는 잔인함의 말잔치들 뿐 진리라고 볼 수 없는 것들만 내 눈에 띄였다.
하늘과 땅사이에 나혼자 내버려진 존재...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하면서 존재론적인 고민속에 빠져들었다.
왜 병주고 약주는 하느님이란 말인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짖자 마자 단산시켰더라면 이런 존재의 고통을 당하지 않았을 것을....
그러던 와중에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경찰서와 3년동안 싸워야 되는 일을 겪게 되고 다니던 회사도 퇴사하고 백수가 되어 주머니에 2,000원 넣고 다니며 살아야 하는 처지에 빠졌다. 신용불량에 빠지고, 오갈데 없는 신세가 되어 가지고 있던 집도 전세를 주고 나가야 했다.
결국 나는 2,000원 밖에 없는 돈을 방바닥에 놓고 큰절을 올렸다.
돈이 바로 하느님이라고...
내일이 없는 존재인 나에게 돈이 곧 주님이라고 고백을 했다.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차라리 죽는 것이 행복하다고 하면서 핵폭탄이 터지는 전쟁이 오면 그것은 비극이 아니라 이 구차한 존재를 마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였다.
가족도 친구도 동료도 모두 떠나고 남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철없이 뛰어 노는 자식의 모습만이 애처로와 보였다. 자식도 낳지를 말았어야 하는건데...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파산한 그 자체였다.
그러다가
어린 자식놈 문제 때문에 성공회 신부님이 반지하방에 살고 있는 우리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파산된 처지에서도 신부님의 방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스로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가 오히려 부러워 보이면서 나는 비참한 속에서 성공회 최상석 신부님의 심방을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에...
그런데...
순간적으로 그 신부님의 방문이 예수그리스도의 방문으로 느껴졌다.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여튼 최상석신부님은 V자로 손을 들고 기도를 하고서는 교회로 돌아가셨다.
나는 진공상태 혹은 공백상태에서 그렇게 1년을 보냈다.
자다가 일어나 앉아서 멍하니 있는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래도 기도랍시고 할려고하면 1분도 최 안되서
"사랑하는 아들아~ "하면서 믿음에 흔들리지 말라는 말이 내입에서 튀어 나오곤 하였다. 그러나 모든 것이 싫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사막의 은수자들의 이야기와 예수의 기도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무념무상속에서 지식을 치워버리고 사람이되신 하느님이신 예수그리스도와 내가 직접 마주대하는 기도...
신음소리처럼 그 예수의 기도를 맥박에 담아 호흡에 담아 침묵속의 외마디소리로 드렸다. "주 예수 그리스도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부터 불쌍히 여기소서...
그러다가 중세 동방의 신신학자 시메온의 글을 읽었다.
하느님을 만나는 것은 유일한 중재자 예수그리스도에 의해서이고, 그 예수 그리스도는 죄의 자리에서만 발견할수 있다고... 그리고 성령이 예수그리스도를 믿게하는 자만이 예수를 믿게 되고 결국 믿음은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그 믿음은 내가 창출해 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나를 부르신 결과이고 내가 하느님을 찾기전에 하느님이 먼저 나를 눈여겨 보셨고 불쌍히 여기셨으며, 나를 부른 것이라는 시메온의 글에서 정신이 버쩍들었다.
그래... 나는 예수를 믿는다고 했지만 사실은 믿는 것이 아니었으며, 내주장만 내세우고 있었구나... 마음이 안정되면서 예수의 기도를 다시 드리게 되었다.
주여, 감사하나이다... 아멘... 이제 당신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바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나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면에서는 못 믿었던 것입니다. 제가 믿는 다는 것은 사실상 강박관념 혹은 관념이었습니다.
돌대가리인 내가 믿음이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핵심을 깨닫는데는 10년이란 세월이 걸렸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금방 아는 것을...
그 다음부터는 성경을 읽어도 찬송을 불러도 기도를 하여도 모두가 나의 고백이요 바로 나에게 직접적으로 해당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보다 먼저 앞서나가지 않고 기다리는 것, 기대하는 것, 그리고 하느님이 하시는 일에 "예"하고 응답하는 것이 바로 신앙이었습니다.
그 이후 모든 일을 기도로 시작해서 기다리면서 기대하면서 지켜봤습니다. 성삼위하느님께서 어떻게 하시는지를...
신용불량에서도 회복되고, 가족 친지들과의 관계도 회복되고, 직장생활도 평안하고, 복음전하는 일에 투자할 수 잇는 시간도 생기고...
그 이후에는 마음의 자유와 평안을 얻고 부담 없이 삽니다.
저는 예수 안믿는 사람들이나 안티들을 상대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상 복음을 받아 들이느냐의 여부는 하느님에게 달려 있기 때문에 부담 없이 스스럼 없이 여러가지 자료들을 제공해 주고는 있습니다만 그들을 설복해야겟다는 목적은 가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저와 같은 돌대가리 인생으로 10년이라는 세월을 허비하지 말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습니다.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는 1:다수의 관계가 아니라 1:1의 전인적 관계라는 것을 알면서 느낀 이 자유는 종교개혁이전이나 종교개혁 이후나 제대로된 사람들이 항상 이야기 했던 것인데... 저만 몰랐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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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보조2004.06.06 20:44
이요조님도 강병송님처럼 깐깐한 물^^에 속하시지 않나요?
그걸 좀 감추고 사시는 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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