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우리/성경에 대하여

재침례교회와 형제교회(하이텔 '예수클럽'펌)

주방보조 2004. 5. 31. 20:40
[이단]재침례교회와 형제교회
이인규(dsmedic) 2004/05/31 09:14 조회 : 8
 
 


1. 재침례파


재침례파 (再洗禮派, Anabaptist), Rebaptizer라고도 하며, 16세기 종교개혁의 급진파 혹은 좌파 운동에 참가했던 집단이다. 재침례파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유아세례를 반대하며, 세례 대신 물에 잠기는 침례만을 주장하며 급진적 개혁을 주장하였다.


츄리히에서 쯔빙글리와 같이 개혁운동을 하던 사람들 중에서 그레벨(Conrad Grebel), 만쯔(Felix Manz), 후프마이어(Balthasar Hubmeier)등이 있었는데, 이러한 사람들이 쯔빙글리의 온건한 개혁에 대해서 불만을 품고서 급진적인 개혁을 주장하였다.
특별히 유아 세례의 문제에 대해서 논쟁을 벌였는데, 처음에 쯔빙글리도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나중에는 입장을 바꾸어서 유아세례를 지지하였다.
1525년 1월 18일 주정부에서는 모든 아동들에게 유아세례를 행하라고 한다.
만쯔, 블라우록, 그레벨등의 세사람이 주축이 되어 유아세례를 정면으로 반대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재세례파의 시작으로 보인다. 여기에 참석한 세 사람은 모두 금방 죽게 된다.
그레벨은 1526년 흑사병으로 죽고, 만쯔는 익사형에 처해져서 죽었고, 블라우록은 1529년에 화형당하였다.
결국 재침례파는 시작되자마자 주정부의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박해를 받으면서도 꾸준히 전 유럽으로 확산되어갔다.
이들은 카톨릭에서도 탄압을 받았지만, 개신교에서도 비난을 받았으며 캘빈도 이들을 싫어하였다고 전해진다.


2. 재침례파의 확산


그후 재침례파는 한마디로 요약하여 정리하기 힘들만큼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여 나간다.
예를 들면, 스위스의 형제단, 남부독일의 후트파, Sattler파, 후터파, 메노파, 신비주의.... 상당히 많은 분파의 양상을 보였으며, 그들 중에는 다소 급진적 개혁성향을 가진 자들이 있었지만, 그들 중에는 보수적이며 신실한 믿음을 가진 자들도 있었고, 그러나 때로는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이단적 교리를 가진 자들도 있었고, 또 그들만의 패쇄된 집단공동체를 유지하면서 공동사유재산을 부정하기도 하였고, 오늘날의 여호와의 증인들과 같이 국가제도를 거부하거나 군대를 거부하고 세금을 거부하는 반사회적인 분파들도 있었기 때문에, 한마디로 재침례파를 한마디로 평가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현재 캐나다와 미국에 몰려있는 재세례파교회란, 역사적으로 계승된 재세례파가 아니라, 새로 재세례파라는 이름아래 형성된 교회들로 보인다.
어쨋든 현재도 재세례파에 대한 평가는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재세례파의 양상이 너무나 다양하여졌기 때문이다.


3. 형제교회(brethren church)


형제교회, 퀘이커교회등이 모두 재세례파에서 유래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재세례파와 매우 유사한 점을 갖고 있었다고 보며, 재세례파 중에 일부분은 형제교회의 모태가 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1827년경, 기독교형제단이란 단체가 영국과 미국의 기독교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특히 아일랜드에서 성공회 목사로 사역하던 존다아비(John Nelson Darby)이 형제교단의 지도자들과 합세하게 된다.
이들의 첫째 특징은 만인제사장의 원칙에 의하여 성직제도(목사제도)가 부정되어야 하며, 그들의 모임은 오직 성령에 의하여 인도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목적은 사람들이 어떤 강단의 설교나 봉사를 기다리지 않고 주님께서 선하게 생각하시는대로 우리 자신들 중에서 아무나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이 우리를 위해 설교 사역을 하자는 것”


지금도 형제교회는 목사제도를 부정하고 회중에서 성령이 인도하여 감동을 받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스스로 설교사역을 하는 곳이 있다.
이러한 결과, “성령의 인도하심”이라는 개념이 실제 성령이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라는 이름 아래, 인도자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 되는 결과가 초래하여, 결국은 교리와 사상문제로 분열을 초래하게 되었던 것이다.
정해진 교리와 신학적 체계가 없다는 것은 결론적으로 다양한 교리와 신학을 허용함으로서 분열을 초래하는 결과가 되어진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오늘날의 형제단은 교리문제로 인하여 심각한 분열을 초래하였으며, 이들은 존다이비와 같이 매우 배타적인 교회도 있고 다소 개방적인 교회(뮬러, 크레이크)도 있었다.
이들은 내세가 훨씬 중요하므로 영혼구원은 현실적인 사회, 정치문제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고 보는 성향이 있고, 특히 이들의 특징은 예수의 재림을 강조하며, 매우 강력한 선교활동을 펼친다.


일반적으로 형제교회는 크게 분류하여 두 그룹이 있는데, 하나는 흔히 '개방적인 형제교회?(Open Brethren)로 알려진 그룹과 또 하나는?배타적인 형제교회?(Exclusive Brethren)로 알려진 그룹이 그것이다.
“개방적이다” 혹은 “배타적이다”라는 용어의 의미는 타교단과의 외부적인 교제권에 대한 존중의 태도를 보여준다. 배타적인 형제교회는 오직 자신들의 교리만을 주장하는 심한 교리주의에 잡혀 있다.


최근 몇년간 영국 일간지에 실린 공식적인 보고에 따르면 제반 사업체나 전문직 연합회, 그리고 대학교 등에 진출해 있던 배타적인 모임 출신의 성도 수가 현저하게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개방적인 형제 교회는 한 마디로 중앙 통제기관이 없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이들은 영국과 미국, 그리고 유럽 대륙과 아프리가 대륙, 그리고 아시아 여러 국가 등에 널리 퍼져 있으며, 각 지역마다 많은 수의 교회 혹은 모임을 구성하고 있다.
실상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각 지역 교회는 그 운영에 있어 독립적이다. 그들은 어떤 총회나 노회 등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지역간에는 가족처럼 친밀한 교제와 강한 결속력을 형성하고 있다.


4. 형제교회(형제회)의 기원


교회사적으로 볼 때 형제교회 운동의 기원은 주후 1825년부터 시작된다.
물론 형제교회 자신들은 일반적으로 주장하는 그 교회의 기원은 사도 시대부터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실상 이들의 목적은 신약성경에 나타난 단순하면서도 융통성 있는 초대 교회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려는데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19세기 초 무렵 여러 기독교 교단들에서 분리되는 일들은 오늘날 형제 교회들이 직면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
형제운동의 개척자는 일단의 청년들로서 대부분 영국 더블린에 소재한 트리니티 대학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들은 제반 교파의 장벽을 뛰어넘어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예배와 교제를 위해 함께 모일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들중 어느 누구도 이같은 모임이 장차 큰 운동의 시발점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였다.
실상 그들은 결코 새로운 교단을 만들려고 시도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그같은 시도야말로 그들이 함께 모이는 순수한 목적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얼마 동안 그들중 일부는 전에 소속된 구성원으로 남아 있었고, 그중 극소수만이 성직자로 임명을 받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같은 성직 수여 관행은 곧 비판을 받음으로 오래 계속되지 못했다.


이 형제회 운동의 초기 인도자 중에 하나가 바로 존 넬슨 다비(주후 1800-1882)로 불리는 아일랜드 교회 신부였다. 그는 비상한 지적 능력과 성품의 소유자로서 각 교단 소속 교회가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는 시기에 그리스도 교회의 연합을 증거하는 전세계적 협력을 꿈꾸었다.
여하간 다비의 여러 견해는 개방적인 그룹보다는 배타적인 그룹에서 고수되었다.
그리고 1848년 개방적인 그룹과 배타적인 그룹간의 분열이 일어났을 때 다비의 가르침을 따르는 무리에게 '배타적인 형제회'란 이름이 붙여졌다.


이같은 형제회 운동은 더블린에서 시작하여 영국 전역으로 그 세력이 확장되었다.
영국의 첫번째 형제 교회는 1831년 플리머스에 세워졌다. 그래서 이들에게 그 지명을 따라 플리머스 형제교회(Plymouth Brethren)란 낯익은 이름이 붙여졌다.
플리머스에 세워진 형제 교회의 두 인도자는 사무엘 트레겔레스(Samuel P. Tregelles,1813-1875)와 그의 친척이 되는 벤자민 뉴톤(Benjamin W. Newton, 1807-1899)이었다.  뉴톤은 19세기 당시 영국에서 출간된 헬라어 신약성경역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책의 주편집자였다.


또다른 형제 교회 가운데 중요한 교회는 브리스톨에 위치한 베데스다 예배당(Bethesda Chapel)으로서 스코틀랜드 태생 유대인 목회자인 헨리 크레이크(Henry Craik, 1805-1866)와 독일계 죠지 뮐러(George Muller, 1805-1898)가 공동으로 사역한 곳이다. 특히 죠지 뮐러는 브리스톨에 1836년에 고아원을 세워 주님께 대한 믿음으로만 고아원을 운영한 사람으로서 전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도 그가 시작한 고아원들이 그곳에 남아 있다. 또한 바네이도 박사(Dr. T. J. Barnado)도 형제 교회 멤버로서 1870년에 영국에 죠지 뮐러처럼 고아원을 세워 운영한 인물로 존경을 받았다.


해외 선교


죠지 뮐러의 매재인 안토니 그로브스(Anthony Norris Groves, 1795-1853)는 그리스도인 형제회의 최초의 해외 파송 선교사였다. 그는 엑스터(Exeter)에서 운영하던 치과병원을 그만두고 개척 선교사가 되어 먼저는 바그다드로 나갔고, 후에 다시 인도에 가서 선교사역을 감당하였다.
그는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해 동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인들의 연합이 그들을 분열시키는 어떤 일들보다 더 중대한 일임을 잘 알고 있었다. 한번은 그가 자신과 심각한 불일치를 보이는 몇몇 사람들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들이 소유한 선한 것에서 분리되느니 보다 차라리 그들의 제반 악행을 감내하겠네.?
그가 생각한 악행이 어느 정도 실제인지의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우리는 그의 고백을 통해서 개방적인 형제 교회가 추구하는 태도가 무엇인지는 감지할 수 있다.


교리와 신조


사실상 성경 교리에 관한 한 개방적인 형제 교회들은 교회사에서 정통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교리를 그대로 믿고 있다. 이들은 역사적인 기독교 신앙을 확고히 붙들고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믿는 바로는 ?믿음과 실천의 기반이 되는 절대 무오한 성경?에서 그 같은 교리와 믿음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복음주의적인 기독교 교리를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타락한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로 믿고 선포하고 있다.


그리고 이같은 복음 전파의 열망 때문에 그들은 교파를 초월해서 순수하게 복음을 증거하는 무리들과 기꺼이 합력해서 일하기도 한다. 실례로, 미국의 빌리 그래함 전도팀이 영국의 여러 섬에서 전도사역을 할 때 개방적인 형제 교회들은 아주 적극적으로 그들과 합류해서 일하였다.
성경 예언 성취는 형제 교회 운동의 시초부터 상당한 관심사였다.
실상 형제 교회 소속의 많은 설교자들이 지금도 주님의 재림과 종말에 상당한 관심과 식견을 갖고 있다.
이들이 지은 찬송가곡 중에서도 주님의 재림에 비중을 둔 내용들이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들은 특정하게 주님의 재림 시기를 정하거나, 현실 생활의 도피를 가르치는 극단적 종말론주의자들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주님의 재림을 대망하면서 경건한 삶의 필요를 강조하고자 힘쓰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이 형제 교회들에서 발견하는 매력은 형제 사랑을 기반으로 한 풍성한 교제와 지적인 자유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실행(實行)


형제 교회의 특징적인 요소는 교리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실천적인 이유 때문이다. 개방적인 형제 교회 중에서 침례는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믿고 받아들인 사람들에 한에서 베풀어지고 있다. 그리고 침례의 방법도 물에 담그는 침수(浸水)를 지지한다. 이들은 매주일 아침마다(어떤 교회는 저녁 시간) 성만찬을 통해 주님을 기억하고 있으되, 이같은 주의 만찬은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을 위해 주님이 베푸신 것으로 믿는다.


분명 이같이 매주일 드리는 성만찬이 형제 교회들의 가장 특징적인 면모이다. 그리고 이들이 떡과 잔을 떼기 위해 모일 때 그들은 예배 참여자들을 미리 선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의 자발적이고 질서에 따른 참여로 인해 성만찬 시간은 경건하게 실행되고 있다. 이때 여러 형제들이 찬송가를 선택하여 부를 것을 제안하고,  기도와 감사로 회중을 인도하며, 그리고 성경 본문을 읽거나 문맥을 간단히 해석하면서 주님의 성품과 그분의 구속 사역을 찬송하면서 떡과 잔을 대한다.


형제 교회에는 교단 등에서 위임한 목사(목자)을 두고 있지 않다. 물론 교회내에는 성직자 개념으로서의 목사(목자)가 아닌, 은사로서의 목사(목자)를 두고 있으며, 이 은사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해고시키거나 교회의 운영에 대해서 좌지우지할 수 없다. 주님께서 교회의 필요를 따라 친히 세우셨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상 각국의 교회마다 복음 전도와 성경을 가르치는 상당히 많은 수의 전심사역자들이 사역하고 있다. 각 지역 교회는 장로들 혹은 감독들로 불리는 책임있는 인도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으나, 이들이 자신이 속한 교회를 벗어나서 타 교회에서도 동일한 역할을 감당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 장로들은 직분이나 권위보다는 본이 되는 삶을 통하여 성도들을 인도하기를 힘쓴다.            


문제는 형제교회가 워낙 분파가 많으므로 인하여 한마디로 그 성격을 말할 수가 없다.
어느 형제교회 분파는 우리나라에 구원파 사상을 전하였다고 보여진다.
또 어느 형제교회 분파는 여호와의 증인과 같은 현실도피적이며 체제와 국가를 적대시하는 분파를 초래하였고, 또 어느 형제교회 분파는 지방교회와 같이 삼위일체나 기독론을 부정하는 이단체제로 분파되었으며, 실상 많은 형제교회라고 불리는 집단들이 이단적인 교리와 사상을 갖고 있다.
 
전문적이며 체계적인 신학을 공부하는 제도가 없음으로 인하여, 잘못된 사상과 견해에 빠져들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러한 잘못된 주관적인 오류가 성령의 사역이라고 잘못 판단되어지므로 인하여 비판을 받지 않는 것이다.
형제교회 중에서 배타적인 분파들은 일반교회를 사단과 음녀의 교회라고 배척하는데, 그 근본적인 첫 번째 이유는 그들만이 갖고 있는 이단적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교리와 사상과 다르다는 것이다

  • 푼수2004.05.31 21:22 신고
    형제교회.. 저도 얼핏 듣기로는.. 이단으로 들어왔엇는데..

    교회구조적인 부분은.. 제가 개척하며 지향하고 있는..
    구조와 비슷하네요..

    "제자 양육 및 배가 원리"의
    "평신도 교회" 및 "가정교회" 적인 구조.. ^^

    주님의 교회..
    주님의 몸의 몸됨은..
    역시.. 무엇을 믿고 있는가.. 하는 신앙의 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가르쳐지고, 전하고, 믿고 있는 핵심된 교리와 신앙의 내용이..
    어떠한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현재.. 제가 자라온 장로교도 그렇고..
    거대 다섯교단이라고 하는 자칭 건전하다고 하는 교회에서..
    교회 구조는 체계적일지 모르지만..
    동시에 교육내용인 교리역시도..
    교단이라는 지붕아래서 건전하다고 자칭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현장에서는..
    교단적이고.. 성경교리중심의 가르침이..
    온전하게 가르쳐지는 교회를 몇 교회 못봤습니다..

    도덕적인 교훈의 내용을 말씀을 빌려서 설교하고 있다는 느낌뿐이었습니다.

    복음중심.. 십자가와 구원과 성도의 성도된 삶..
    의 주제가 담긴 설교가 한국교회 가운데에서..
    더욱 자주 온전히 설교되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답글
  • 푼수2004.05.31 21:29 신고
    제가 만난 평신도중에..
    '복음'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물었을때에..
    그 기초적인 내용조차도 못대답하는 분들이 허다 했습니다..

    그런 분들을 그냥 허수아비처럼 않혀두고서..
    도덕적이고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인본주의적이고 인간의 귀에 달콤하게 들려지는 그런 설교주제만을 골라서..
    나름대로는 성경적인 설교를 한다고 하여도..
    그것이 참된 교육적인 설교가 될 수 있을런지요..

    저는..
    이단문제에 있어서...
    지금까지는 커다랗게 뭉탱이로 묶어서 이단이니 아니니 했지만..

    그것 만큼이나 중요한것은..

    이단이라고 정죄하고 단죄한 본 교단들 자신 조차도..
    자신들이 붙들고 있는 신학과 교리들을..
    교회현장과 교육현장에서 온전히 실천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자각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물론, 이 일이 객관적으로 눈에 띄게 개선되는 것이 확인되기는 힘든 일이지만요..

    만약, 그런 개교회들 자신이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들이 이단과 별반 다를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종종.. 하나님께선 이단들로 인해서 슬퍼하시기 보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름받은 교회의 참 교회되지 못함으로 인해 슬퍼하고 계심을 느낍니다.

    답글
  • 주방보조2004.05.31 23:36
    두가지가 함께 진랭되어야 하겠지요.

    진리를 수호하는 일과
    내부적 개혁을 달성하는 일

    ...

    내부적 개혁 참 중요합니다.
    ...

    그러나
    또한 기독교의 정체성이란 큰 틀을 놓쳐서는 안되는 것이구요.

    이단문제나 교리문제는 그런 큰 틀을 세우는 일이니만큼
    소홀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봅니다.

    ...

    저는 솔직히 두부분 모두 소홀하다는 것이
    우리 교회들이 가지고 있는 현주소라고 생각합니다.

    ...

    개혁도 지지부진

    정체성확립도 흐물흐물...--;;;

    답글
  • 김명준2006.09.13 23:52 신고
    형제교회는 이단이 아닙니다.

    현제 형제교회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시고 이런 글을 적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현제 형제교회는 전국에 약 230곳 정도 있으며 순수하게 성경대로 신약교회의 원리대로 하고자 하는 교회입니다.

    이단연구에 권위를 가지신 탁지원 소장님도 이단이 아니라고 정하셨습니다.

    국제종교문제연구소에서도 이단이 아니라고 정하셨습니다.

    직접 이 분께 전화하셔서 물어보셔도 좋습니다. 부산장신대학교에 찾아가서 물어본 사실입니다.

    더욱 궁금하신 사항이 있으시면 www.moimnews.or.kr 로 가시면 인터넷홈페이지가 있는

    형제교회가 링크되어 있습니다.

    이 글은 잘못되었습니다. 현제 형제교회는 복수의 목사(장로)들에 의해서 다스려지고 있으며

    교리와 질서가 분명하게 잡혀있습니다.

    확인후 바로잡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답글
    • 주방보조2006.09.14 00:00
      이단이라고 한 글이 없는데요? 자세히 꼼꼼이 읽어보시길...

      혹 제목만 보셨는지 모르겠는데요^^
      제목 앞의 머리말은 그 글을 쓴 카테고리를 표시해 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