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다섯아이키우기

겁쟁이 아빠(3년전글)

주방보조 2006. 5. 9. 08:56
겁쟁이 아빠... | 성경에 대하여
2003.10.19

 

 
어제 저녁 늦게 있었던 일입니다.

먼저 공부를 끝냈다고 휘파람을 불고 있는 큰 녀석에게...아침부터 쌓인 설겆이를 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기싫어요
명령이다.
아빠가 하면 안되요?
아빠 바쁘다
아잉 이렇게 많은 것을 어떻게 해요
하나하나 하다보면 금방 끝난다.
그럼 1500원짜리로 해주세요.
안돼! 1000원짜리야
투덜투덜...

한시간쯤 지나도 설겆이가 끝나질 않길래...나가보았더니
설겆이거리는 거의 그대로 있고 그릇예닐곱개만 설겆이 받침대에 올라있었습니다.

완전히 사보타지...하고 있는 것이었죠.

그렇찮아도
몇몇가지 그녀석의 행동에 속상해 있었는데...그래서 두달짜리 벌도 이미 내렸었는데...
한꺼번에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그때가 밤 11시경이었는데...잘못했다고 울며 비는 녀석을 붙잡아 문밖으로 내 쫓아 버렸습니다.

...

설겆이를 다 하고...문밖을 내다보니...이 녀석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쫓아내면서...문을 활짝 열어놓았는데...어디론가 가버린 것입니다.

12시가 넘어서도 아무 인기척이 들리질 않아...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파트 놀이터와 쉼터들을 두루 돌아다녀 보았습니다. 없습니다.

중학교 운동장을 살펴보았습니다. 멀리 몇몇 아이들이 어둠속에서 움직이고 있었지만 제 딸은 아니었습니다.

꿈꾸는 집과 쥬라기 책방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손님도 하나 없었습니다.

아파트를 지나 골목들을 훑으며 녀석의 친구집에도 가까이 가보았습니다. 문이 열려잇고 불이 환한데...웃는 소리들이 들렸습니다. 이녀석이 거기 있다면...그래도 안심이 되겠다 싶었지만...거의 없는 게 확실했습니다.

...

아파트 입구를 들어서면서...다시한번 놀이터를 들려보아야지 생각하는데...

눈에 익은 모습의 한아이가 서있는 겁니다.

아빠 잘못했어요
어디갔었니?
계단에 앉아 있었어요
그래...
아빠가 내려가시는 것보고 따라 나왔는데...
알았다
아빠 다시는 그러지 않을께요
그래...

녀석의 들썩거리는 어깨를 부여잡고...함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속으로 그랬지요

야 임마...내가 얼마나 겁먹었는지 아냐?

...

오늘 아침에...

그녀석의 지금껏 받고 있던 벌까지 다 ... 용서해 주었습니다.

아이가 잠시 내 눈앞에서 사라진...공포가...제 마음을 온유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

좋은 주일 아침입니다^^...오늘은 특히...

 

 

 

 

 

  • 봄빛2006.05.09 10:27 신고

    ㅎ~
    누구나 한번쯤 간직한 경험일 것입니다.
    울집은 초등시절 큰 넘을 내쫓았는데
    인석이 다른 곳을 향해 정처없이(?) 가는데
    가면서 슬밋 슬밋 뒤를 돌아 보는 거에요.
    엄마가 따라 오나 안따라 오나 살피느라고~
    그 모습을 보고는 당차게 발길을 돌렸지요.
    몇 발자욱 떼지도 않았는데 허리를 끌어 안으며 터지는 녀석의 통곡
    "우앙~! 엄마! 잘못했어요."
    돌아보니 그저 웃음만 남네요.

    답글
  • 김순옥2006.05.09 10:44 신고

    한얼이는 초등학교때 가출해서 공부도 하고...다 할거라더니
    아파트 옆라인에 사는 친구집 비상구에 가방을 감춰두고 친구집에
    진을 치더니 밤늦게 집에 와서 초인종을 누르기에 들은척도 하지 않았더니
    오히려 큰 소리를 치더군요.
    자식 대접하지 않는다고...동네 챙피해서 결국은 문을 열어줬답니다.
    그 날 아빠는 귀가가 늦어 없는 중이었거든요.
    유난히 고집이 센 아이라서 우여곡절도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한빛이는 아기 수준이랄까요?

    하긴 저희들 어렸을 때도 경험했던 일이기도 하구요.

    그런 진실이가 이제 수험생 대열에서 또다른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겪어내고 있네요. 마음은 앞서는데 맘만큼 되지도 않고 성적도 따라 오르지 않고...
    부모가 위로가 되어주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답글
  • 원이2006.05.09 13:56 신고

    앗! 모두들 한번쯤 경험하는군요.
    저도...ㅎㅎ
    때는 한 밤중... "너 그러려면 나가!" 했더니, 정말 나가더란 말입니다.
    자기가 가긴 어딜가? 그저 문 밖에 나가 찬 바람이나 쏘이고 있으려니... 하고 한-참을 있다가,
    너무 오래 있는다.. 싶어 나가봤더니, 허걱!... 없는 겁니다.
    헐레벌떡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다가,
    결국 차까지 몰고 (그 엑센트!) 동네를 구석 구석 돌기 시작했지요.
    한-참을 돌다~ 돌다~ 혹시...해서 집에 돌아와 보는 길...
    이제 집으로 돌아오는 녀석을 만났는데, 그 때 얼마나 감격스럽던지...ㅎㅎㅎ.
    저는 그 때 부모 자식간의 그 끈끈한 뭔가를 팍! 느꼈었답니다.
    왜 돌아왔냐니까,
    슬리퍼를 신고 나갔는데, 발이 너무 아파서 돌아왔다고....ㅎㅎㅎ

    여자애였다면 더욱 공포에 떨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부모들은 다 겁쟁이입니다.
    그저 안 그런 척--하는 거지요.^^

    답글
  • 아침이슬2006.05.09 17:34 신고

    가끔...
    애들이 속을 섞이면 혼을 내기도 하고 매를 들기도 하지만
    '나가라'는 말은 입 밖으로 안내려고 애를 씁니다.
    흔히 하는말로 '입술의 열매'라고 할까요?
    행여 그 말이 빌미가 되어 일 생길까봐....
    왜 있잖아요. 잘 못한걸 뻔히 아는데 자꾸 하지마라 하지마라 하면 더 하고싶어지는 것...
    조금 다르긴 하지만 '나가라, 나가라...'가 정말 나가란 계기가 되면 어쩌나...하는...
    ㅎㅎ
    그러고보니 전 더 겁쟁이 엄마네요^^

    답글
  • 소리2006.05.09 18:25 신고

    아하하하, 겁먹었던 아빠~~~ 얼러리 꼴러리~~~
    앗, 지송합니다. 어른을 놀리면 안되는데... 죄송합니다. 꾸벅~~

    원필님은요.. 마음이 정말 너무 맑으세요.
    다른 중견(?) 부모님들도 다 경험한 것이라 하시지만... 아버지로써의 근엄함과 권위와
    이런걸 다 떠나서 솔직하고 약하고 정말 정 많은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시는게
    진짜 진짜 따뜻합니다.^^

    근데, 저는 우리 사랑이 한테도 말 안듣고 화 나면 나가라고 하는데요..
    녀석은 현관문 밖과 베란다에서 서성거리다가 삼분 후에 엄마가 문 열어주면
    제 품에 달려오더만요. 그 모습만을 봐도... 참 뭉클 하더라구요. 내가 엄마구나.. 엄마 품이
    그렇게도 좋구나... 아무리 화 내고 꾸중해도 그래도 엄마한테 안기고 싶구나.. 이런 걸 느끼게 되어서 말이지요.

    여튼, 참 따뜻한 이야기 잘 읽었어요.^^

    답글
  • 주방보조2006.05.10 00:31

    요즘 제가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통계를 배워야 하거든요^^
    대학시절 통계를 제법 좋은 점수를 받아서 ... 어떠랴 했는데
    sas라는 생소한 것으로 어찌해야 한다는데... 책을 봐도 모르겠고 프로그램을 어떻게 사용해야할지도 모르겠고 우울증이 도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성경 10장은 꼭 읽습니다만...블로그에는 소홀하게 되는군요.

    댓글 한꺼번에 다는 무례에 대한 변명입니다.

    ...

    모두 경험하는 부모이야기...인 것이
    하나님이 우리안에 심어놓은 자녀에 대한 사랑이 같은 종류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어쨋건...저도 요즘은 아침이슬님처럼 더 겁쟁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답글
  • Pia2006.05.10 23:23 신고

    저도...한겨울에 내복바람으로 쫓겨난 적이 있었는데, 우리 엄닌 나와보시지도 않더구만요.

    그나마 훌쩍거리고 있는 제가 불쌍해 보였던지, 동생이 문을 열어 주었는데
    그게 발각이 되어서 둘다 벽보고 꿇어 앉아서 손 들고 있었다는...ㅋㅋㅋ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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