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우리/성경에 대하여

패션오브크라이스트(이인규님 글)

주방보조 2004. 4. 25. 06:30
뒤늦게 영화 Passion of Christ를 보고....
이인규(dsmedic)2004/04/21 23:03조회 : 13

우리 교회 교우 몇 명과 어렵게 약속을 하여 부부동반으로 멜깁슨의 Passion of Christ 라는 영화를 관람하였습니다.
도대체 무슨 영화이길래 장안의 화제를 몰고 왔는가? 하는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서로 시간이 나지 않는 관계로 밤10시10분 늦은 시각에 상영을 예약하였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후에 우리는 영화 관전평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밤 늦은 시간에 각자 집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원래 긴 글에 익숙합니다. 글이 조금 길 것 같습니다.

 


멜깁슨이라고 하면 먼저 브레이브 허트(Brave Heart)가 떠오른다.
멜깁슨은 Brave Heart(1995)에서 감독과 주연을 함께 하였고, 이 작품으로 멜 깁슨은 오스카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해 5개 부문을 수상하게 된다.
브레이브 허트의 영화장면에서 스코틀랜드의 전설적인 기사, 윌리엄 월레스의 사랑과 투쟁을 그린 대서사시로서 멜깁슨은 얼굴에 하얀 칠을 하고 전쟁에 임하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하면 Leathal Weapon, 그리고 비데오로도 출간된 매드맥스 시리즈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멜깁슨은 독실한 카톨릭인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연기하는 카비젤도 카톨릭 신자이며, 그리스도가 세상을 떠날 때의 나이가 현재 자신의 나이(33살)와 동일하다는 것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그는 채찍으로 맞는 신을 촬영하기 위해 온몸에 끔찍한 흉터와 낭자한 혈흔을 매일 7시간 동안을 분장했다고 전해진다.

Passion of Christ는 예수의 죽음에 대한 사실적 묘사와 반유대적인 내용으로 제작 단계부터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종교 드라마이었으며, 예수가 죽기 전 12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영화배우 멜깁슨이 감독, 제작, 시나리오 집필 등 1인 3역을 맡았고, 특히 유대인들과 일부 기독교 신자들의 반발로 제작 기간 중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카톨릭 교황청도 처음에는 이 영화에 대해서 반대입장을 표명하다가 후에 찬성하였다고 전해진다.

헐리우드의 큰 손은 유대인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이 영화는 그들의 반대와 방해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 영화는 제작중지가 되어 일년 넘게 창고에서 그대로 보관되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또 유대인 큰 손들은 앞으로는 멜깁슨과 영화사업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멜 깁슨은 브레이브 허트 이후 8년만에 다시 메가폰을 잡고 제작 및 각본까지 겸한 이 영화의 제작 일정은 제목처럼 '수난(Passion)'의 연속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기까지의 마지막 12시간을 재조명한 이 영화는 서기 30년경의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라틴어와 아람어로 촬영할 계획이 알려진 후, 촬영 초기부터 투자자로부터 외면을 받았고, 결국 멜 깁슨은 자신의 개인재산을 약 3천만불을 투입하여 영화 제작을 감행했다고 한다.

영화는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지상의 생을 마감하기 전 12시간을 묘사란 내용으로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린 기도로부터 시작된다.
체포되기까지의 과정, 잔인한 로마병사의 혹독한 고문과 인민재판에 가깝게 그를 죽음으로 몰고가는 유대인들의 집단적인 광기가 신약성서 4복음서에 근거하여 리얼하게 재현되었다.
어떤 시대적 배경도 영어로 표현하는 미국영화와 달리, 이 영화는 예수 당대에 실제로 쓰였다는 아람어(셈족에 속하는 아람인의 언어)와 라틴어로 진행된다.
모든 것을 "사실 그대로" 보여주겠다는 멜깁슨은 한때 자막이 전혀 없는 상영까지 고려했었다고 한다.

필자의 소견으로 볼 때에 이 영화는 약간의 문제점이 있다고 보여진다.
물론 개인적인 관점이지만, 그것은 기술적, 예술적인 비평이 아니라, 기독교인적인 관점에서 보는 성경적인 비평이다.

(1) 빌라도를 매우 이성적인 인물로 묘사하였다는 점이며, 빌라도 아내에 대한 이야기가 카톨릭의 전승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카톨릭에서 빌라도의 아내는 성인(Saint)으로 간주되어진다. 빌라도의 아내가 수건을 마리아에게 전해주는 사건은 성경적인 내용과 거리가 멀다.
성경에서 빌라도의 아내는 단지 뒤숭숭한 꿈에 대해서 빌라도에게 전갈을 알려준 사람이지만, 영화는 성경에 기록된 내용 이상으로 빌라도의 아내를 유난히 강조시키고 있었다.

"총독이 재판 자리에 앉았을 때에 그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 하더라"(마27:19)

특히 빌라도에게 예수를 죽이지 말라고 하였던 그의 아내는 전승으로 "프로쿨라"라고 알려져 있는데, 에디오피아교회에서는 빌라도와 그의 아내가 추앙을 받고 있으며, 희랍정교회는 그의 아내 프로쿨라만이 추앙받고 있다고 한다.
빌라도에 대해서도 유배를 당하거나 자살을 하였다는 전승이 있다.

(2) 멜깁슨은 4복음서를 충실하였다고 하였지만, 4복음서 외에도 독일의 신비주의자로 알려진 카톨릭의 성인 앤 캐써린 에머리치(1744 - 1824)의 책, 그리고 마리아 오브 아그레다의 "하나님의 신비한 도시" 등 다양한 카톨릭의 자료들이 다수 인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의 죽음에 대해서 담담하게 필연적으로 받아들이는 듯한 장면들이 부각되어짐으로서 그녀의 선지적인 예견능력이 강조되고 있다.
특히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에 성전의 지성소 휘장이 찢어진 것에 대한 내용이 생략되었으며, 제단이 반으로 갈라진 것으로 잘못 취급되고 있다.
이러한 것은 만인제사장을 부정하는 카톨릭의 교리 때문이 아닐까?

(3)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직전 어두움의 상태를 단순히 짙은 구름이 해를 가리는 자연적인 상태의 어두움으로 묘사하였다.

"때가 제 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며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눅23:45)

(4) 영화는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과 함께 둘이서 십자가를 지고 간 것으로 나타내고 있지만, 성경은 구레네 사람 시몬이 혼자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라간 것으로 되어 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셨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공관복음의 기록을 참고하면, 예수께서 힘이 딸려 도저히 더이상 십자가를 질 수가 없자, 구레네 시몬에게 대신 십자가를 지게 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저희가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로서 오는 것을 잡아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좇게 하더라"(눅23:26)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더라"(마27:32)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막15:21)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같이 가게 하였다"고 번역되어있지만, 그것은 "같이 십자가를 진 것"을 말하지 않으며, 원문 상에서 헬라어 "앙가류오"는 둘이서 함께 감당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고, "force into service"(강제로 하게 하다)를 의미한다.
즉 더 이상 힘에 부친 예수는 십자가를 질 수가 없게 되었고, 뒤에서 구레네 시몬이 대신 십자가를 지고 뒤를 따라간 것을 "같이 가게 하다"라고 번역된 것이다.
왜 이 영화는 구레네 시몬과 예수가 함께 십자가를 진 것으로 표현하고 있었을까?
물론 예수가 처음에는 십자가를 혼자 지었을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이미 갖은 고문과 채찍을 당한 예수가 결국 힘에 부쳐 십자가를 질 수 없게 되었고, 로마병사는 구레네사람 시몬에게 십자가를 지게하고 예수를 따라가게 하였던 것이다.

성지순례를 갔다온 사람들에 의하면, 카톨릭의 전승에서는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 오르면서 몇번인가 쓰러졌다고 하며, 쓰러진 그 곳마다 표시를 해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 대신에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예수께서 몇번을 쓰러졌다는 카톨릭의 전승이 매우 이상해지게 된다.
결국 영화는 예수와 시몬이 함께 십자가를 진 것으로 제작되었다.

(5) 이 영화에서는 간음사건에서 붙잡혀 왔으나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정죄받지 않은 여인의 사건이 등장하는데, 그 여인이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와 함께 십자가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카톨릭의 일부 전승에서는 막달라 마리아가 향유를 부어준 마리아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서 성경적인 증거는 전혀 없다. 또 간음을 하다가 붙잡혀 온 여인이 막달라 마리아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러한 근거는 더욱 희박하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귀신을 쫒아내 준 여인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막16:9)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눅8:2)

즉 영화는 간음을 하다가 붙잡혀 온 여인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십자가 옆에 함께 있는 장면이 삽입되고 있으므로, 그 여인이 다른 마리아라는 느낌을 주고 있다.
그러나 간음을 하다가 붙잡혀 온 여인(요8:3-9)은 오직 요한복음에만 등장하며, 그 여인에 대한 기록은 더 이상 없으며, 그녀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면 십자가 옆에 있었던 다른 마리아는 누구인가?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요19:25)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마27:56)

다른 마리아는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일 수도 있고(마태복음), 글로바의 아내(요한복음)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그들이 동일인물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쨋든 간음을 하던 여인이나 향유를 부어주던 여인이 막달라 마리아라는 성경적인 증거는 매우 희박하다.

(6)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마지막 부활의 장면이 겨우 몇초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그 마지막 장면이 부활이라는 사건의 본질자체를 부각시키는 것보다, 손에 뚫린 못자국을 보여줌으로서 매우 우스꽝스럽게 연출되고 있다.
아마 영화는 도마의 신앙고백을 은연중에 염두에 둔 모양이지만, 손바닥에 너무나 깨끗하고 선명한 구멍이 나있는 장면은 한편으로는 매우 희극적인 요소가 되어진다.

(7) 미국에서도 문제가 되었지만, 반유대주의적인 감정이 문제가 되어진다. 이 영화에서 유대인들은 광신주의자, 혹은 피에 굶주린 잔혹스러운 집단으로 간주되어지고 있다.
며칠전 그들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을 입성하는 예수에게 종려나무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쳤다. 그들은 불과 며칠 사이에 피에 굶주리는 살인집단으로 표현되어지는 것이다.

(8) 왜 아람어와 라틴어로 제작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어차피 거의 모든 관객들은 자신의 나라의 언어로 표현된 자막을 보기 때문이다.

(9) 아무런 대사도 없이 지켜만 보는 사탄의 등장이 매우 이채로왔으며, 그러나 후반부에 아기를 안고 있는 사탄의 장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굳이 사탄의 아기를 등장시키려는 의도가 무엇이었을까?

(10)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문제점은 이 영화가 불신자들에게 주는 구체적이고 명백한 멧세지가 없다는 것이다. 성경을 아는 기독교인들은 영화가 주는 멧세지를 알고 있지만, 성경을 모르는 불신자들에게는 예수에게 행하여진 폭력이 잔혹한 고문적 행위로만 간주되어질 수가 있다.
미국 Time 지는 이 영화에 대해서 Why(왜)가 드러나지 않았으며 How(어떻게)만이 표현된 영화라고 비판하였다.
즉 예수가 왜 십자가에서 죽었는가라는 멧세지가 분명히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개봉시 평론가들의 반응은 호평과 혹평으로 양분되었는데, 개인의 신앙적 관점을 갖고 있는 평론가들의 반응은 대부분 호평이었으며, 신앙적인 관점이 없는 평론가의 반응 중에는 "종교영화라는 이름을 사용한 잔인한 폭력영화"라는 혹평이 실제로 있었다는 점이다.  
어떤 평론가는 이 영화에서 오직 본디오 빌라도만이 이성을 잃지 않은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혹평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빌라도는 자신들의 제사에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섞은 적이 있었던 잔혹스러운 이방종교를 가진 자이다. 즉 사람을 자신의 제물로 바친 자이다.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눅13:1)

(11) 찢어지는 피부, 살점, 피... 이러한 폭력이 너무 잔인하게 묘사되며, 너무 긴 시간을 할애함으로서 오히려 마치 잔인한 폭력영화장면을 지루하게 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그것이 사실적인 묘사를 강조하기 위함이었다고는 하지만, 십자가에 못박히는 장면은 성경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는 장면이다.
예를 들면, 나무를 관통한 못을 망치로 구부리는 장면등은 성경적인 기록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예수가 당한 고난을 축소하거나 부정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예수가 당한 고통을 리얼하게 표현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어느 정도 이해는 가지만, 한편 폭력과 고문을 너무 필요 이상으로 긴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는가하는 생각도 든다. 하물며 그러한 장면을 보는 불신자들의 생각은 어떠하였을까?

이 영화는 이탈리아 남부 마실리카타에 있는 아름다운 도시 마테라에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장면이 연출되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네시타 스튜디오가 있는 로마 외곽지역의 세트에서는 예루살렘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었다고 한다.
이 거대한 세트에는 그리스도의 종교 재판이 행해졌던 사원과 필레트의 성 앞, 몇몇 법률 심의가 이루어 졌던 정원과 그리스도가 매맞고 채찍질 당했던 성안 토지의 모습이 갖추어져 있었다고 한다.
 
멜 깁슨은 촬영 감독인 갈레브 데스차넬에게 영화가 극명한 음영의 대비를 통해 생생한 실감이 표현될 수 있도록 촬영을 요청하였고, 영화 속에서 어둠을 꿰뚫는 빛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촬영의 40% 정도는 밤 또는 밀폐된 실내에서 진행하였다.
의상 담당자 마우리지오 밀레노티는 철저한 사전 고증과 직접 손으로 제작, 전반적인 시각적 디자인을 강화함으로써 멜 깁슨이 담고 싶어했던 카라바지오의 갈색, 검정, 베이지가 어우러져서 만들어 내는 그림자를 훌륭히 표현해냈다. 한편, 잔인한 채찍질과 십자가 처형 장면 등 멜 깁슨이 원하는 것과 타협하지 않고, 사실주의적 이미지를 담기 위해 세계 최고의 분장 전문가인 케이트 반델란과 그레그 켄놈이 이끄는 특수분장과 가발 스텝들이 할리우드에서 날아왔고, 예수의 역할을 맡은 주인공 제임스 카비젤은 매일 7시간이나 걸리는 특수분장을 참아내야 했다고 전해진다.

영화를 보는 도중, 간간히 눈물을 훌쩍이는 여자 성도들의 울음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나도 예수의 고난을 보면서 두 주먹을 쥐고 동참하고 있었다. 영화를 본 후에 여자들은 대부분 잔혹한 장면(예를 들면, 채찍에 살점이 떨어져가는 장면과 손바닥에 못을 박는 장면등)에 외면을 하였다고 말하였지만, 필자는 그러한 장면을 보지 않고 지나치는 것이 마치 신성모독처럼 느껴져서, 모든 장면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지켜 보았다.

패션 어브 크리스트라는 영화는 일반적인 기독교 영화가 보여주는 이상으로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 영화를 보면서 주후 70년경 예루살렘의 멸망으로부터 시작되어 나라를 잃은 유대인들과 나치스에 학살당한 유대인들이 그들의 인과응보라는 생각이 자꾸 떠올랐다.
확실히 그 영화는 반유대 감정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 영화는 예수의 죽음에 대해서 본디오 빌라도와 그의 아내에게 관용과 무죄를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또한 이 영화에서 특이한 점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거의 슬퍼하는 기색이 없이, 담담하고 운명적으로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점이다.
카톨릭신자가 만든 영화답게 마리아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어쨋든 이 영화는 상당한 화제를 낳았다.
예수의 최후를 다룬 영화 '패션 어브 크라이스트' 를 보고 미국의 한 살인범이 범죄 사실을 고백하고 자수한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 텍사스주 로젠버그에 살고 있는 21살 댄 랜덜 리치씨는 노끈으로 애인을 목졸라 숨지게 한 뒤 목 메 자살한 것으로 위장했고 경찰로 자살로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하지만 리치씨는 멜 깁슨이 제작한 영화 '패션 어브 크라이스트' 를 본 후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경찰서에 찾아가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고 자진해서 감옥에 갔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보도하였다.

또 지난 18일자 팜비치포스트에 따르면 은행에서 강도행각을 벌이고 도주 중인 범인이 영화를 보고 감명돼 경찰에 자수를 했다고 한다.

또 이 영화가 예수를 죽게 한 장본인을 유대인으로 직접 표현해 반 유대인 정서를 부추긴다"고 강력하게 반발하던 미국 내 보수적 유대인들은, 최근 이 영화를 관람하던 유대인 여성이 심장마비로 즉사하자 "영화가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며 멜 깁슨을 상대로 천문학적 액수의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글로브지에 따르면 이스라엘 정부는 유대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깁슨을 이스라엘 법정에 세울 방침이고, 이스라엘 일부 과격단체에서는 깁슨을 `죽음의 표적(Marked for Death)`으로 세울 것이라 발표해 깁슨은 외출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집에서도 겹겹이 경호원에게 둘러싸여 지내고 있다.

멜 깁슨은 피플지와 인터뷰에서 생명에도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 이 영화에 열성을 쏟았던 이유에 대해 "나는 성신의 인도에 따라 영화를 만들었을 뿐이며 운명에 이끌렸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 운명이라고 하는 동기는, 독일의 신비주의 작가인 앤 캐서린 에머리히가 쓴 예수의 수난에 관한 책이 우연히 자신의 집 선반 위에 떨어졌고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멜 깁슨은 이것을 "운명"이라 여기며 작품을 영화화하기 위해 10여년을 준비했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전 내무장관 엘리 이샤이는 "멜 깁슨의 영화는 유대교도가 예수를 죽인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분명 잘못된 것이고 이런 오해 때문에 이미 지난 2000년 간 유대인들은 수많은 학살과 고통을 당해야 했다. 이 영화는 명백한 명예훼손을 했고 피의 복수만을 부를 뿐"이라고 분개했다.

<글로브>에 따르면 깁슨은 심리적으로 큰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이 영화로 돈 방석 위에 앉게 되었다. 부와 명예가 보장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살해 위협에 대한 우려와 걱정 때문에 멜깁슨은 외출도 제대로 못하는 가운데 집에서도 겹겹이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지내고 있다.
주치의는 "깁슨의 정신 상태가 매우 불안하다. 약간의 정신착란 증세에 때때로 자살충동도 느끼는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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