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호> 바른 기도 어문법 | 2002년 10월 17일 |
최근에 장로교 총회가 "기독교 용어 연구 위원회"를 구성해서 교회 용어를 한국말 어문법에 맞도록 수정하는 작업을 벌였다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저야 한국말 자체보다 한국말을 매개로 전달되는 개념에 더 비중을 두고 작업해 온 편입니다만, 교회 와 그리스도인들이 바른 한국말 어휘와 어문법에 맞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 위원회의 건의 사항은 전부 열여덟 가지인데 그 대부분이 총회에 의해서 채택된 것 같습니다. 그 건의 사항 중에서 기도에 대한 일곱 가지를 우선 아래에 옮겼습니다. 저로서는 그 대부분에 찬성하 는 편입니다. 이 분야에 비교적 마음을 기울여 왔다고 자부하는 저로서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 이 많았습니다. 예컨대 세 번째의 호격조사 사용의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저도 때로는 기도 중에 "주여"라는 말 을 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말 어법에서는 내 말을 듣는이가 나보다 높은 사람일 때에는 이름 이나 칭호 앞에 '-(이)여'라는 호격조사를 붙일 수 없습니다. 네 번째 건의사항은 한국어의 압존법에 관한 것입니다. 압존법이란 내 말의 듣는이가 아주 높은 사 람일 때에는 그보다 낮은 사람에게는 (그 사람이 나보다 높더라도) 존대하지 않는다는 규칙이지요. 이 규칙에 따르면 예컨대 "할아버지, 아버지께서 가셨어요"는 올바른 어법이 아닙니다. 그 대신 "할 아버지, 아버지가 갔어요"라고 해야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기도 중에 "우리 성도님들께서 강건하시도록...."이라든가 "우리 목사님께서 설교를 잘 하시도 록..." 같은 표현은 올바른 어법이 아닌 셈입니다. 성도님들이나 목사님이 내 기도를 듣는이이신 하 나님보다 높지 않기 때문이지요. 아마 "우리 성도님들께서 강건하시도록...."이라는 표현은 "우리 성도들이 강건하도록...."이라는 표현으 로 쉽게 고쳐질 수 있겠다 싶습니다만, 목사님의 경우는 어떨까요? 기도 중에 "우리 목사가 설교를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표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을까요? 제 생각으로는 그리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왜냐고요? 그만큼 우리나라 교회에서는 목사님들이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지위까지 넘볼 수 있는 위치에 이른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압존법을 무시해 가면서 하나님보다 목사 님을 더 높이고 있는 실정인데다가, 그걸 고치기가 아주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지요. 마지막 건의 사항은 제가 잘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기도 중에 하나님을 수식하는 말로는 성경에 나오는 '객관적'인 형용사들을 사용하자는 제안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개인적이거나 주관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수식어는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랑의 하나님, ..."은 괜찮지만 "사랑하는 하나님 ..."이라는 표현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제 "개인적으로"는 그게 그렇게 큰 문제가 될까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동기도를 드리거나 회중 앞에서 기도를 인도하는 경우에는 물론 그런 주관적인 표현은 삼가는 것이 좋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여러 사람과 같이 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혼자서 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럴 때는 내 감정을 하나님께 내 보이는 게 그리 흠이 될까요? 오히려 하나님께서 더 좋아하실 지도 모릅니 다. 내 자신도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것 같고요. 게다가 살다보면 하나님이 원망스러울 때도 없잖아 있잖습니까? 그런 생각이 간절한데도 '사랑의 하 나님..."이라든가 '정의로우신 하나님...' 하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나오겠습니까? 그럴 때는 그냥 생각 나는 대로 '야속하신 하나님...'하고 부를 수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 궁금합니다. 아무튼 이런 작업은 아주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째서 진즉에 그런 생각들을 못했을까요?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는 국어학자들도 적지 않았을텐데요. 그러나 아무리 늦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느리더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속담에도 "느려도 황소걸음"이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영어 속담에도 "느려도 꾸준하면 목적을 달성 한다"는 말이 있더군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정희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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