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우리/조정희칼럼

[개념]깨듣드에 대하여(8)

주방보조 2004. 2. 8. 00:55
<제94호> [개념] "깨닫다"에 대하여 (8) 2002년 04월 04일


그래서 마지막으로 한국말의 "깨닫다"를 살펴봅니다.  한국어의 어원 풀이는 상당히
제한적입니다.  한글 문헌은 겨우 15세기로까지 밖에 거슬러 올라가지 못할 뿐 아니라,
그나마 이런 기초적인 어휘에 대한 자료가 적기 때문에 어원이나 그 의미를 분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개 결정적인 증거 대신 정황적인 증거만 가지고 추측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추측의 위험을 감수하고 말한다면, 한국말 "깨닫다"는 "깨다"와 "닫다"의 합성어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국말에서 "깨다"는 "부수다"는 뜻이거나 "잠이나 취(醉)함에서
벗어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닫다"는 "뛰다, 달려가다"는 뜻이지요.
깨부수고 달려간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저는 "깨다"가 "알(卵)을 깨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잠에서 깨다" 혹은 "술에서
깨다"는 뜻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잠이나 술에서 깨다는 뜻의 영어나 성경의
원어가 한국말로 "깨닫다"로 번역된 바가 없다는 점은 앞에서 지적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알을 깨다, 혹은 알에서 깨다"는 뜻만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랫동안 알(卵)은 한민족에게 경이로움의 대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막 낳은 알을 깨보면
끈적한 액체와 조그만 노른자가 가운데에 있을 뿐입니다.  거기서는 생명의 실마리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거기서 껍질을 깨고 생명체가 나옵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움직이지도 못하던 물체가 생명으로 변하고, 게다가 그 생명은 사람도 못하는
비행(飛行)을 합니다.  

이런 면에서 "알"은 "씨"를 닮았습니다.  씨도 그 자체로는 조그맣고 보잘것없고 죽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땅에다 심어놓고 기다리면 벼, 보리도 나오고 사과, 배도 열립니다.  
놀라운 생명현상이지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함석헌 선생님이 민중을 "씨 "이라고 부르셨던 것은 이런 씨와 알의
끈질기고 잠재적인 생명현상에 주목하셨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민족의 고대 삼국(三國)중에서 두 나라의 시조, 즉 고구려의 고주몽과
신라의 박혁거세의 탄생설화가 바로 난생(卵生)입니다.  백제의 시조도 결국 고구려에 있다고
한다면, 삼국의 시조가 모두 알에서 나왔거나 그 후손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알(卵)의 생명
현상에 신비함과 경외심까지 갖고 있었다는 증거라고 봅니다.

저는 시카고의 한 박물관에서 달걀이 부화되는 과정을 생생히 보여주는 전시관을
기억합니다.  우리 꼬마에게 보여주기 위해 거길 갔었는데, 제 자신이 매료됐었습니다.  

알(卵)에서 생명이 나오는 과정은 두 단계입니다.  첫째는 알 속에서의 성장입니다.  그
속에서 새는 생명과 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준비를 갖춥니다.  

성장이 마무리되면 둘째의 단계로 넘어갑니다.  즉 알 껍질을 깨는 것입니다.  새의 몸집이
커지면서 알 껍질이 저절로 깨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그 조그마한 부리로 안에서부터
껍질을 쪼아 깨뜨립니다.  그리고는 세상에 나오는 것이지요.  

그것을 깨고 나오기만 하면 좁은 알 껍질 속과는 비교도 안되는 넓은 세상이 있습니다.  
게다가 날개가 자라면 창공을 날게 됩니다.  그게 바로 한국말에서 "깨닫다"라는 개념이
생기게 된 연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렇게 볼 때, 깨달음은 느낌과 생각을 통해 사물과 그 의미를 파악하려고 무진 애를 쓰는
과정도 포함하지만, 마지막에는 자신의 감각과 사유의 범위를 제한하는 장애물을 깨뜨리는
과정까지도 포함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그것이 처음부터 장애물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알 껍질이 어린 새에게 영양과
안전을 제공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내부 성장이 끝나면 알 껍질은 이제 질곡으로
변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감각과 생각은 "앎"을 쌓고 심화시키는 데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양분이자 보호막입니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그것도 장애물로 변합니다.  어린
새가 알 껍질을 깨듯이, 자신의 느낌과 생각의 틀을 깨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깨달음의 순간을 맞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을 깨고 나면, 즉 깨달음을 갖게 되면, 그 앞에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가 열립니다.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세상이 펼쳐지는 것이지요.  깨달음의 결과는 깨닫기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조정희 드림.
(성경의 한국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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