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우리/조정희칼럼

[개념]깨닫다에 대하여(6)

주방보조 2004. 2. 8. 00:53
<제92호> [개념] "깨닫다"에 대하여 (6) 2002년 03월 15일


이번에는 "깨닫다"의 세 번째 의미인 "진리를 터득하다"를 살펴봅시다.  그런데 여기서 쓰인
"터득하다"는 말도 썩 적합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터득(攄得)의 터(攄)는 "펴다, 오르다, 헤치다"는 뜻입니다.  터(攄)자는 손 수(手)와 깊이
생각할 려(慮)의 합자입니다.  그런데 려(慮)는 다시 호랑이 호(虎)의 윗 부분과 생각할
사(思)자의 합자입니다.  호랑이 호(虎)자는 윗 부분은 호랑이 가죽의 얼룩덜룩한 줄무늬를
가리킵니다.  

그럼 호랑이 무늬와 생각이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중문자보의 해석은 "호랑이 무늬는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상 제각각이다.  려(慮)는 한가지 사물을 아주 여러 가지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게 바로 깊이 생각할 려(慮)자입니다.  

그런데 이 려(慮)자가 손 수(手)자와 합자되어 있습니다.  손의 일차적인 기능은
"잡는다"입니다.  그러니 려(慮)의 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생각 중에서 마침내 꼭 집어낸 것이
있다면 그것이 곧 터(攄)자가 가리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이 바로
터득(攄得)입니다.  

결국 "터득(攄得)하다"는 "여러 가지로 깊이 생각해서 한 가지를 선택하다"는 뜻입니다.  
"이해하다"와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해하다"와 구별되는 뜻으로서의 "깨닫다"를
"터득하다"로 설명할 수는 없겠지요.

그렇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습니다.  "알다"나 "이해하다"와 구별되는 "깨닫다"는 뭐라고
풀어야 합니까?  다시 말해 "위험을 깨닫다," "실수를 깨닫다"와는 다른 의미를 갖는 것으로
생각되는 "도를 깨닫다"의 "깨닫다"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냔 말입니다.  그것은 주로
종교적이거나 초월적인 깨달음을 가리킬 때에 주로 사용하는 뜻이라고 봅니다.  

이 때의 깨달음은 영어로는 "인라이튼먼트"(enlightenment)나 "어웨어니스"(awareness)로
번역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래서 흠정역 영어 성경에서 이 단어들을 찾아서, 거꾸로 그
헬라어나 히브리어 원어를 찾아보고, 그 원어들이 한글 개역 성경에 어떻게 번역되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실망스럽게도 인라이튼먼트나 어웨어니스의 헬라어, 히브리어 원어가 "깨닫다"로 번역된
경우는 단 한 경우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영어, 헬라어, 히브리어 계통을 따라서 한국말
"깨닫다"의 의미를 추적하는 것은 소득이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깨닫다"의 세 번째 의미를 찾아보기 위해서는 한문과 한글의 어원적 의미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정희 드림.
(성경의 한국 개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