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호> "소망"에 대하여 (1) | 2001년 07월 09일 |
"소망(所望)"에 대하여 (1) 유비가 제갈량을 세 번째 찾아가자 제갈량은 마지못해 모사(謀士)가 되어 주기로 허락합니다. 그러면서 처음 제시한 전략이 바로 정(鼎)이었습니다. "어차피 혼자는 다 못 먹으니까 셋으로 갈라서 하나만 먹어라"는 것이었지요. 천하(天下: 중국만 천하라고 한 걸 보면 제갈량도 세상 넓은 줄 몰랐던 게지요)를 셋으로 가르면, 발이 셋 달린 솥이 넘어지지 않는 것처럼 세상이 안정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鼎)은 "발이 셋 달린 솥"이란 뜻입니다. 기독교 신앙이 솥이라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그것을 받치는 세 다리입니다. 세 발이 모두 제대로 튼튼해야 신앙이 안정된다는 뜻이겠습니다. 지난 글에서는 그 세 다리 중에서 "사랑"에 대해서 보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사랑의 정의가 한자(漢字) 문화권의 애(愛)의 개념과 상당히 유사함을 살폈지요. 그런데 고린도전서 13장에는 기독교인들이 목숨을 걸만한 (혹은 걸어야 하는) 개념이 두 개나 더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과 소망입니다. 믿음은 기독교 신앙의 기초입니다. 신앙(信仰)이라는 말에 벌써 그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제목에서 눈치를 잡으셨겠지만) 오늘은 소망에 대해서 먼저 한 생각 나눌까 합니다. *희망(希望) 보다는 소망(所望) 그런데 먼저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은 요즘은 소망(所望)이라는 말이 잘 쓰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 대신 희망(希望)이라는 말이 널리 쓰입니다. "네 장래 희망이 뭐냐"와 "네 장래 소망이 뭐냐" 중에서 어떤 말이 더 자주 쓰입니까? 물론 전자이지요.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좀 더 조사를 해 보아야겠습니다만, 어쨌든 19세기말까지는 희망(希望)이라는 단어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습니다. 어떻게 아느냐구요? 성경에 희망(希望)이라는 말이 단 한번도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기하지요? 문헌 조사는 미루더라도 글자의 뜻으로 본다면 희망(希望)은 그다지 좋은 조어(造語)는 아닌 것 같습니다. 희(希)에는 물욕이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희(希)자의 일차적인 뜻은 "성기다"이고 두 번째 뜻은 "드물다"입니다. 세 번째 가서야 "바라다"는 뜻이 나옵니다. 하지만 후한서(後漢書)에 "바라다"는 뜻으로의 희(希)자가 쓰인 것을 보면 그 연원이 오래된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희(希)는 효(爻)와 건(巾)의 합자입니다. 건(巾)은 "천, 옷감"이라는 뜻이고, 효(爻)는 천이나 옷감을 "짜다"는 뜻입니다. 가로 세로로 엇갈린 것이 길쌈 중인 실의 모습을 본땄습니다. 이것이 좀 변해서 "성기게 짜다, 혹은 특별한 방식으로 짜다"는 뜻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희(希)자는 "성긴 천, 혹은 특별하게 짜여진 천"이라는 뜻입니다. 천이란 모름지기 촘촘하게 짜야만 좋은 것인 줄 알았는데, 희(希)자를 보니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성기게 짠 천을 특별한 것으로 쳐주던 시절도 있었나 봅니다. 특별하다보니까 드물었을 것입니다. 드무니까 구하기가 어려웠겠습니다. 그래서 이런 "특별한 천"을 갖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바라다"는 뜻으로 변한 것입니다. 그래서 희(希)는 결국 "가지고 싶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희(希)의 뜻은 동양 문화권에서는 그다지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물욕(物慾)을 가리키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같은 "바라다"라도 망(望)의 뜻은 그 차원이 전혀 다릅니다. 이제 어째서 희망(希望)보다는 소망(所望)이 훨씬 더 나은 개념인지를 망(望)자를 중심으로 보겠습니다. 소망(所望)은 흔히 "바라는 바"라고 직역됩니다. 소(所)는 "것, 곳, 혹은 일" 이라는 간단한 뜻이니까 논외로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주로 망(望)자에 딴지를 걸어야 하겠습니다. 여느 때처럼 파자(破字)부터 해 봅니다. *바랄 망(望) 망(望)자는 세 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선 망(亡)은 "사그러 든다, 죽는다"는 뜻입니다. 월(月)은 "달"이고요. 그런데 망(望)자의 제3요소가 약간 문제입니다. 한국 자전에는 임(壬)자가 "아홉번째 천간 임, 간사할 임"이라고만 새겨져 있습니다. 임진년(壬辰年), 할 때 그 "임"자입니다. 그러나 중국 자전을 보면 임(壬)자가 "정"(중국 발음으로 '청(cheng)')으로도 읽힙니다. 그 흔적은 한국 용법에도 일부 나타납니다. "드러내 보이다, 드리다"는 뜻의 정(呈), "조정, 관청, 공정하다"는 뜻의 정(廷), "마음대로 못하다, 그래서 걱정하다"는 뜻의 정( ) 등이 그것입니다. 이 글자들에서 정(壬)은 주로 소리를 나타낸다고 하지만, 이 글자가 "정"으로 읽힐 때에는 그 뜻이 "학식있는 사람(나중에 선비로 해석됨)이 서 있다"입니다. 그것은 선비 사(士)자와 변형된 사람 인(人)자의 합자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망(望)의 어원적 뜻을 종합해 봅시다. 두 가지로 풀 수 있습니다. 먼저 정(壬)의 뜻을 무시한 해석은 "사그러들 달"입니다. 사그러들 달이라니요? 그렇습니다. 보름달입니다. 찰대로 꽉 차서 사그러드는 일만 남은 달입니다. 그래서 망(望)자는 "보름 망"으로 새겨지기도 합니다. 한편 정(壬)의 뜻을 고려한 해석은 "식자(識者)가 사그러들 달을 바라본다" 입니다. 이때 망(望)자의 새김은 "바라보다"가 되지요. 이 "바라본다"는 말은 고개를 들어서 하늘의 달을 본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그 달이 기울어들 것을 "내다본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망(望)자는 공간적으로 "바라본다"와 시간적으로 "내다본다"는 뜻을 모두 가집니다. 관찰과 생각을 통해서 "아하, 이제 달이 기울기 시작하겠구나"하고 알게 되는 것이지요. "저걸 좀 갖고 싶다"는 뜻인 희(希)와는 근본이 틀린 말이지요? 그러니 희망(希望)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말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소망(所望): 확신을 갖고 기다림 이런 해석을 통해 소망(所望)의 뜻을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소망은 긍정적인 바램만이 아닙니다. 부정적인 면도 예측과 기대의 범주에 듭니다. 망(望)이란 "달이 찰" 것이 아니라 "기울" 것을 내다봅니다. 어두운 면을 내다보는 것이지요. 혹은 밝고 어둡고를 떠나서 객관적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내다본다는 뜻으로 새길 수 있을 것입니다. 소망(所望) 개념의 또 다른 뜻, 사실은 더 중요한 뜻은 그것이 "확실성을 가지고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오랜 경험을 통해서 보름달이 사그러드는 것만큼 "확실한" 일이 또 있겠습니까? 오죽하면 "달이 차면 기울게 마련"이라는 속담까지 생겼겠습니까? 게다가 예측과 기다림을 가리키는 망(望)자에는 "식자(識者)"까지 동원되어 있습니다. "달이 차면 기운다"는 것은 안 배운 사람도 모두 경험으로 압니다. 그런데 왜 이 글자에 "배운 사람"을 등장시킬 필요가 있었을까요? 조조가 천자를 보호 겸 감시하기 시작한 직후에 도읍을 낙양에서 허도로 옮긴 이유를 기억하십니까? 그건 왕립이라는 당시의 한 인텔리겐치야가 하늘의 별을 보면서 "화성의 기운이 떨어지고 토성의 기운이 올라오는 것을 보니 곧 천자가 갈리겠구나"했기 때문이었답니다. 조조의 모사였던 순욱도 왕립의 이론을 지지하면서 "화성기가 있는 낙양을 버리고 토성기를 머금은 허도로 갑시다"고 권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옛날 지식인들은 천체의 운행을 보고 인간과 나라의 흥망과 생사화복을 "미루어 알아"냈다고 합니다. 뻥이라고 무시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 당시에는 그게 최고의 지식이요 과학이었으니까요. 정확한 예측을 위해서는 면밀한 관찰 뿐 아니라 관찰 결과에 대한 주의깊은 "해석"도 요구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경험과 생각, 혹은 관찰과 해석, 이 두 가지는 소망(所望) 개념의 두 가지 중요한 구성 요소입니다. 쉽게 말해 "바라보고 내다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망(望)의 파자(破字)에 따르면 소망(所望) 개념은 "경험과 관찰, 생각과 해석을 바탕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을 확신하면서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그 예측과 기다림은 근거없는 바램이 아닙니다. 인류의 경험과 식자의 관측, 그리고 깊은 생각과 면밀한 해석으로 뒷받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습니까? 이런 소망(所望)개념이 그간 생각해 온 "소망"과 같습니까? 이번에는 서양에서는 소망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한번 보겠습니다. *호프(Hope) 흠정역 영어 성경에서는 소망을 호프(hope)로 번역했습니다. 우리는 소망과 호프를 같은 개념인 양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둘 사이에는 공통점도 많지만 차이점도 적지 않습니다. 웹스터 영어사전에서는 호프의 첫 두 가지 뜻으로 "to cherish a desire with anticipation"과 "to desire with expectation of obtainment"을 제시합니다. (번역하면 오히려 혼란이 생길까봐 그대로 따 놓았습니다). 여기서 먼저 주목할 단어는 디자이어입니다. 원(願)한다는 말이지요. "-하고 싶다"는 말이므로 다소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의 "바램"입니다. "바램"과 "디자이어"는 앞에서 본 희(希)와 그 뜻이 통한다는 점을 일단 지적해 둡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말이 앤티시페이션과 익스펙테이션입니다. 앤티시페이션은 "뭔가 일어나기 전에 행동을 취하거나 감정적으로 반응하다 (taking action about or responding emotionally to something before it happens)"라고 풀리어 있습니다. 앤티시페이션의 뜻에 "감정적으로 반응함"이라는 설명이 있는 점이 눈에 띕니다. 그래서 호프의 첫 번째 뜻은 "감정적이고 개인적인 동기에서 무언가를 바라다"로 풀릴 수 있습니다. 한편 익스펙테이션은 "확실성이 높은 일을 준비하며 기다린다 (implies a high degree of certainty and usually involves the idea of preparing or envisioning)"는 뜻입니다. 다소 불확실한 것에 대한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기다림이 앤티시페이션이라면 익스펙테이션은 앞으로 다가올 일을 아주 확실하게 내다보고 그것을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분명히 다르지요? 굳이 비교를 하자면 앤티시페이션은 앞서 본 희(希)에 가까운 반면, 익스펙테이션은 망(望)에 가까운 개념입니다. 그러니 희(希)와 망(望)을 뒤섞어 놓는 일은 그다지 현명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호프가 정의상 앤티시페이션과 익스펙테이션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라면 호프를 희망(希望)으로 번역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없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웹스터 사전에서는 호프(hope)와 그 유사어들을 비교하면서, "확실하지는 않으나 주관적 신념을 가지고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다리는 것"이라고 보충 설명하고 있습니다. 호프는 앤티시페이션에 더 가깝다고 못을 박은 셈입니다. 이렇게 보면 호프는, 비록 그 사전적 정의에 앤티시페이션과 익스펙테이션을 모두 갖고 있더라도, 후자보다는 전자에 더 가까운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호프가 앤티시페이션에 더 가까운 뜻이라면 소망(所望) 개념과는 거리가 더 멀어질 수 밖에 없지요. 그러면 호프를 희망(希望)이라고 번역하기에는 점점 더 무리가 생깁니다. 망(望)이 거기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혹시 희원(希願)이라는 말을 쓴다면 호프에 가장 가까운 뜻이 되겠습니다. 이 말에는 앤티시페이션과 디자이어의 뜻이 다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희원과 소망은 다른 개념이며, 서로 구별되어야 할 것입니다. 소망에는 주관적이고 감정적이며 불확실한 요소가 전혀 없기 때문이지요. *호프: 긍정적인 것만 바란다 호프(hope)가 소망(所望)과 다른 결정적인 차이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호프는 어원상 "부정적인 것을 내다보다"는 뜻이 없으며, 어법상으로도 그런 용법이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지옥에 가기를 호프(hope)한다"는 말은 사용되지 않습니다. "내 아들이 망하기를 희원한다"고 말하면 정신이 이상한 사람일 것입니다. 주관적, 개인적, 감정적으로 일이 잘 못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요약해 봅시다. 개역 한글판 성경에서 사용한 소망(所望)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어떤 일이 확실히 일어날 것을 미리 내다보고서 준비하면서 기다리다"는 뜻입니다. 이런 뜻의 소망은 흠정역 영어 성경에서 사용한 번역어 호프(hope)의 뜻과는 좀 차이가 납니다. 호프에도 익스펙테이션으로서의 뜻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호프는 주로 "감정적으로 원하는 것을 기다리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호프는 부정적 맥락으로는 절대 사용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호프는 고유어 "바라다"나 한자어 희(希)와 원(願)에 가까운 개념이지요. 그러면 "소망"과 "호프" 중에서 어떤 것이 성경의 소망 개념에 가까울까요?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 ------------------------------- **이걸 보면서 "음, 이제 곧 기울겠군"하고 내다보는 것이 바로 망(望)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