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다섯아이키우기

배반감? ...

주방보조 2005. 9. 19. 23:53

저녁 늦게 아이들 집에서 돌아온 아내가 제게 즐거운 얼굴로 말했습니다.
진실이가 영어 선생님께 특별히 칭찬을 들었다고
영작을 하는 것이 있었는데 틀린 것도 하나 없고 내용도 썩 좋았다고
특별히 따로 하는 영어공부가 있느냐고 그러셨다는...^^

워낙 잘못한 것은 모두 감추고 조금 잘한 것은 침소봉대하는 편이란 것을 잘 알지만
그래도 지난 대동제인가 하는 축제때문에 보름이상 정신을 팔고 목이 쉬도록 떠들어 댄... 맏딸에 대한 불만이 얼마나 해소되는지
그날 밤 즐거운 꿈을 꾸며 잠을 자기까지 했다니까요. 다 잊어버렸지만...^^

아침 일찍 새벽기도를 하기 위해 딸들의 집으로 가서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진실이 책상에 앉아 진실이에게 저의 좋은 기분을 전해 주면서...참 잘했다고 칭찬을 하는 순간
책꽂이에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거꾸로 꽂혀 있는 책이었는데 꺼내 보니 판타지 소설이었습니다. 이드...라는 제목의...
그리고 이어 택리지4라는 책이 책상 구석에 놓여 있었구요.

야야...시험이 보름밖에 남지 않았는데 또 책을 빌려 보느냐?
택리지는 ...그래 제법 읽을만한 책처럼 보인다마는 이 판타지 소설은 백해무익 아니겠느냐?

그런 잔소리를 하면서...
책상 위에 종이들이 수북히 쌓여 있어 정리해주던 중
개학되자마자 내야하는 숙제라고 하여 사진넣을 액자를 하나 사주었는데 ...그것이 아직까지 그 종이더미 아래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아니 개학한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이것이 여기서 뒹굴고 있느냐? 목소리가 좀 커졌지요...
...

 

그리고 계속 잔소리를 하면서 책꽂이에 눈에 익은 스프링 노트가 있어 재빨리 꺼내 뒤적여 보다가 결국은 큰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아니 이 짓을 아직까지 계속하고 있단 말이냐?!!!

지난 학기 야자시간에 공부하는 대신 몇달동안 만화만 그리다...제게 걸려 된통 혼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게 되었던 바로 그 노트였는데...
그때 그린 것 이후로도 열몇장이나 예쁜 일본 만화 주인공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습니다.

씩씩거리며...몇 권의 노트들을 꺼내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여전히 만화스토리들이 빽빽하게 들어 차 있었습니다. 그 놈의 노트들이 제게 혀를 메롱 내밀면서...

...

넌 ...
이 아버지를 조금도 사랑하지 않는구나!!!

결국 화를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앞으론 너와 말도 하지 않을 것이고, 나를 아빠라고 부르지도 말아라. 하루도 못갈 공갈을 마구 퍼부었지요.

이것이 약 15분 정도에 일어난 일입니다^^

 

영어 칭찬 받아서 자랑한 것이 오하려 ... 진실이에겐 화를 자초한 꼴이 되었습니다.

...

성경도 읽는둥 마는 둥 기도도 하는 둥 마는 둥...

그럴수록 더 기도해야 한다는 것 알면서도...

 

그날 새벽기도는 참 ... ^^ 그랬었습니다.

 

 

 

 

 

 

  • 멍석바위2005.09.20 02:34 신고

    한참 어른께 어린 것이 드릴 말씀 없네요
    황당하셨을, 그래서 언성을 높이셨을 그 마음 이해가 됩니다
    ㅎㅎ
    하나님하구 친해져야 하는데 그 기분이 문제지요
    그럴 땐 그냥 그러세요
    아부지 저 화가 났습니다
    아직은 이러니 그냥 아버지께서 이해하시라구요
    그러다 보면 아버지의 마음과도 가까와지고
    아이들을 조금 더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답글
  • 주방보조2005.09.20 07:21

    아이에게 그렇게 막 말해놓고
    새벽기도하러 간 것이므로...당연히 주님과 저 자신을 아니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 앞에 제 모습이 저 게기는 딸^^과 다를 바가 무에겠는가?...
    저녁에 녀석이 밥먹으러 와서 조심스레 말을 거는데...부드러운 잔소리 한마디 더 하고 관계가 회복되었지요.

    답글
  • 청랑2005.09.20 21:18 신고

    원필님, 진실이는 재주가 다 따로 있어유~~ 얼마나 이뻐유~~ 좋기만 하구만.....

    답글
    • 주방보조2005.09.20 21:42

      흐흐...
      제 재주도 이게 전부거든요...진실이 털어서 먼지내기.

      저와 진실이의 재주가...무슨 조화를 부릴 날이 오겠지요.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던가^^

    • 청랑2005.09.22 05:18 신고

      으흐흐흐
      원필님은 진실이만 터는 게 아니지라~ 목사들, 먹사들, 털어서 먼지내기에도 선수 안니시요~잉? 먼지가 있응게 먼지가 일어나는 것이지만, 숨쉬기가 곤란혀서.... 큽큽~~~ ㅎㅎㅎ

  • 김순옥2005.09.20 21:52 신고

    지금도 한얼이와 제가 상반된 주장을 하는 게 있습니다.
    엄마는' 컴퓨터 앞에 그 오랜 시간을 앉아 있었다면 적어도 프로그램 하나쯤은
    만들고도 남았을 것이다.'
    한얼이는 '엄마가 언제 맘 편하게 앉아 있도록 내버려 두었느냐,
    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재능이 있다면 그 쪽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부모 마음은 적어도 학생이라면 학교 공부가 우선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바꾸기 힘든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식들 앞에서는 객관적이 되지 못하는 부모들이라는 생각 늘 하게 되구요.

    대학을 가고도,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진로를 찾지 못하는 사람도 많고
    요즘은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말은 아이들이 어떤 것에 재능이 있는지를 몰라서
    방향을 찾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진실이에게 재능이 있다면 학교 공부 조금 앞서는 것보다는
    확실한 방향으로 진학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요.
    고등학교쯤 되면 부모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공부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책상에 앉아 있다고 공부한다는 생각은 부모 생각일거구요.
    믿어주는 것이 최고라고 하네요.
    '믿게 해야 믿어주지...'그게 부모들의 의견이긴 하지만요.

    기도 가운데 분명히 더 큰 뜻이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답글
    • 주방보조2005.09.20 22:58

      저는 진실이의 재주가 이것으로 보이고
      진실이는 자기 재주가 요것으로 보이니 문제지요.

      아이에게 맡기기...는 무책임인 것이 틀림없고
      내 맘대로 하기...는 일종의 폭력이 틀림없으니 문제구요.

      그래서 기도...합니다.

    • 청랑2005.09.22 05:16 신고

      메국에 보니까, 고딩 때에 아이들 적성검사하는게 있습디다....한국도 있나? 아마 좀 자세혀서 내가 메국에는 있더라 라고 방송을 해대는 것 같은디... 뭐 그런게 있어요.... 그런 검사를 한 번 해 보며는, 어느어느 부분에 재능이 있는 것 같더라 정도가 나오고, 그 다음에 해당 학과들이 주우우욱 나오게 되더라구요... 언제 그런 검사를 찾아서리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제 아이는 장애자여서 그런 검사는 없었구요. 메국에 계신 누님들에게 물어보면, 구할 수 있지 않을까요?

    • 주방보조2005.09.22 07:11

      적성검사로는
      사회복지사 또는 건축가..등이 나왔다고 하데요^^
      만화 그리기가 전혀 상관없다고는 못하겠지만...

  • 소리2005.09.21 06:37 신고

    저는.... 진실이 화이팅!!!!
    아자, 아자!!! 고지를 향하야 돌진!!!

    답글
    • 주방보조2005.09.21 07:25

      에이...참...
      사랑이 하고 평강이가 커보세요^^
      아마
      진실이 아부지 홧팅 했어야 했는뎅...그러실 겁니다^^

      ...

      두고봅시다아~~

    • 소리2005.09.21 16:23 신고

      히히힛! 진실이 아부지 삐지셨슴까?
      그래도 할 수 없슴다.
      지는 아즉도 진실이 편!!!!! 다시 한번 진실이 화이팅!!! 아자!!! ㅋㅋㅋㅋㅋㅋ

      누구 한 사람은 우리 진실양의 편에서 그녀 손을 들어줘야 하지 않겄슴까!
      그렇게 생각하시지용, 너그러우신 진실 아버님? ㅋㅋㅋㅋㅋ

    • 주방보조2005.09.21 17:12

      진실이가 알면 무지 좋아하겠네요.

      모르게 입다물고 있아지~~~

  • 원이2005.09.22 01:06 신고

    푸하하..
    노트들이 혀를 메롱 내밀면서?ㅋㅋㅋ...그 기분 저 압니다요.ㅎㅎㅎ
    나중에 진실이가 자서전 쓸 때,
    아버지한테 그렇~~케 혼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속적으로 노력해서 만화의 꿈을 펼쳤다...
    이렇게 쓰게 되면 어쩔라꼬???ㅎㅎㅎ
    양다리 걸쳐 보세요.^^
    진실이의 만화를 향한 열정이 범상치 않아 보입니다.

    답글
    • 주방보조2005.09.22 10:53

      아직은 양다리 할만큼 혜안이 없어요^^
      그 범상치 않아보이는 열정이 제눈에는 오직 똥고집 내지는 미련으로 보이거든요.
      여하튼 열심히 말릴 겁니다^^
      그래야 녀석도 진짜 자서전이라도 쓰게되면
      아부지의 핍박을 이겨낸 승리를 맘껏 자랑할 수 있을테니까요.

      아님
      무지 고마워 하든지...^^

  • coolwise2005.09.22 19:47 신고


    저 위에.. 김순옥님이 쓰신 부분..
    -------------------------------------------------------------
    엄마는' 컴퓨터 앞에 그 오랜 시간을 앉아 있었다면 적어도 프로그램 하나쯤은
    만들고도 남았을 것이다.'
    한얼이는 '엄마가 언제 맘 편하게 앉아 있도록 내버려 두었느냐,
    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

    이건 집집마다 같을 거 같아요.
    이런 얘기도 있죠.

    제가 아는 만화가가 있는데.. 그 아들도 만화 재주가 있는 지망생이랍니다.
    초딩 방학동안 노트 7권의 장편 만화를 그렸대요.
    학교에서 인기가 짱이었죠. 돌려보며 읽는 것까진 좋았는데..
    한 아이가 수업시간에 보면서 킬킬거리는 바람에
    꼬마 작가가 불려나갔답니다.
    선생님이 뺨을 때렸대요. "쓸데 없는 짓한다고.."
    20세기 고정관념이 21세기의 희망에 상처를 안긴 사건이죠.

    "어머니는 내게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하셨다"
    일본에서 뒤에 의과대학을 가고 우주소년 아톰을 그려낸 데쓰카 오사무의
    자서전 제목입니다.

    아이들의 항변처럼.. '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 않는 것도 아닌' 지리한 줄다리기 속에서..
    호랑이 새끼로 태어나 겨우 고양이로 자라나고 만게
    바로 우리 세대가 아닐까(민족적 비극, 국가적 손실) 하는 생각도 들구요.. ㅎㅎ

    에구.. 너무 가볍게(?) 진지해지는게 제 단점입니다.
    암튼 평소 아빠로서 똑같이 고뇌하는 문제라서...
    동병상련으로 덧붙입니다만.. 여기 쓴 말에 대해 책임은 안지겠습니다. ㅋㅋ
    암튼 다양한 의견들을.. ㅎㅎ

    답글
    • coolwise2005.09.22 19:50 신고

      아.. 그런데.. 컴퓨터 게이머나.. 만화가는 희망하는 애들이 너무 많아서
      장차 너무 치열해질 분야라는 게 좀 문제인 것 같아요.
      각별한 재주가 보이지 않는 한.. '블루 오션'은 아닌 것 같다는 거지요.
      이것도 '만화의 다양한 미래'를 몰라서 하는 소린지 모르겠지만요.. ㅎㅎ

  • 주방보조2005.09.22 21:11

    각별한 재주 대신 각별한 고집만이 양쪽에서 불꽃을 가끔 튀기는 거죠^^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