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늦게 아이들 집에서 돌아온 아내가 제게 즐거운 얼굴로 말했습니다.
진실이가 영어 선생님께 특별히 칭찬을 들었다고
영작을 하는 것이 있었는데 틀린 것도 하나 없고 내용도 썩 좋았다고
특별히 따로 하는 영어공부가 있느냐고 그러셨다는...^^
워낙 잘못한 것은 모두 감추고 조금 잘한 것은 침소봉대하는 편이란 것을 잘 알지만
그래도 지난 대동제인가 하는 축제때문에 보름이상 정신을 팔고 목이 쉬도록 떠들어 댄... 맏딸에 대한 불만이 얼마나 해소되는지
그날 밤 즐거운 꿈을 꾸며 잠을 자기까지 했다니까요. 다 잊어버렸지만...^^
아침 일찍 새벽기도를 하기 위해 딸들의 집으로 가서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진실이 책상에 앉아 진실이에게 저의 좋은 기분을 전해 주면서...참 잘했다고 칭찬을 하는 순간
책꽂이에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거꾸로 꽂혀 있는 책이었는데 꺼내 보니 판타지 소설이었습니다. 이드...라는 제목의...그리고 이어 택리지4라는 책이 책상 구석에 놓여 있었구요.
야야...시험이 보름밖에 남지 않았는데 또 책을 빌려 보느냐?
택리지는 ...그래 제법 읽을만한 책처럼 보인다마는 이 판타지 소설은 백해무익 아니겠느냐?
그런 잔소리를 하면서...
책상 위에 종이들이 수북히 쌓여 있어 정리해주던 중
개학되자마자 내야하는 숙제라고 하여 사진넣을 액자를 하나 사주었는데 ...그것이 아직까지 그 종이더미 아래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아니 개학한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이것이 여기서 뒹굴고 있느냐? 목소리가 좀 커졌지요...
...
그리고 계속 잔소리를 하면서 책꽂이에 눈에 익은 스프링 노트가 있어 재빨리 꺼내 뒤적여 보다가 결국은 큰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아니 이 짓을 아직까지 계속하고 있단 말이냐?!!!
지난 학기 야자시간에 공부하는 대신 몇달동안 만화만 그리다...제게 걸려 된통 혼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게 되었던 바로 그 노트였는데...
그때 그린 것 이후로도 열몇장이나 예쁜 일본 만화 주인공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습니다.
씩씩거리며...몇 권의 노트들을 꺼내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여전히 만화스토리들이 빽빽하게 들어 차 있었습니다. 그 놈의 노트들이 제게 혀를 메롱 내밀면서...
...
넌 ...
이 아버지를 조금도 사랑하지 않는구나!!!
결국 화를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앞으론 너와 말도 하지 않을 것이고, 나를 아빠라고 부르지도 말아라. 하루도 못갈 공갈을 마구 퍼부었지요.
이것이 약 15분 정도에 일어난 일입니다^^
영어 칭찬 받아서 자랑한 것이 오하려 ... 진실이에겐 화를 자초한 꼴이 되었습니다.
...
성경도 읽는둥 마는 둥 기도도 하는 둥 마는 둥...
그럴수록 더 기도해야 한다는 것 알면서도...
그날 새벽기도는 참 ... ^^ 그랬었습니다.
-
-
지금도 한얼이와 제가 상반된 주장을 하는 게 있습니다.
답글
엄마는' 컴퓨터 앞에 그 오랜 시간을 앉아 있었다면 적어도 프로그램 하나쯤은
만들고도 남았을 것이다.'
한얼이는 '엄마가 언제 맘 편하게 앉아 있도록 내버려 두었느냐,
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재능이 있다면 그 쪽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부모 마음은 적어도 학생이라면 학교 공부가 우선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바꾸기 힘든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식들 앞에서는 객관적이 되지 못하는 부모들이라는 생각 늘 하게 되구요.
대학을 가고도,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진로를 찾지 못하는 사람도 많고
요즘은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말은 아이들이 어떤 것에 재능이 있는지를 몰라서
방향을 찾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진실이에게 재능이 있다면 학교 공부 조금 앞서는 것보다는
확실한 방향으로 진학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요.
고등학교쯤 되면 부모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공부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책상에 앉아 있다고 공부한다는 생각은 부모 생각일거구요.
믿어주는 것이 최고라고 하네요.
'믿게 해야 믿어주지...'그게 부모들의 의견이긴 하지만요.
기도 가운데 분명히 더 큰 뜻이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
-
푸하하..
답글
노트들이 혀를 메롱 내밀면서?ㅋㅋㅋ...그 기분 저 압니다요.ㅎㅎㅎ
나중에 진실이가 자서전 쓸 때,
아버지한테 그렇~~케 혼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속적으로 노력해서 만화의 꿈을 펼쳤다...
이렇게 쓰게 되면 어쩔라꼬???ㅎㅎㅎ
양다리 걸쳐 보세요.^^
진실이의 만화를 향한 열정이 범상치 않아 보입니다. -
답글
저 위에.. 김순옥님이 쓰신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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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컴퓨터 앞에 그 오랜 시간을 앉아 있었다면 적어도 프로그램 하나쯤은
만들고도 남았을 것이다.'
한얼이는 '엄마가 언제 맘 편하게 앉아 있도록 내버려 두었느냐,
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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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집집마다 같을 거 같아요.
이런 얘기도 있죠.
제가 아는 만화가가 있는데.. 그 아들도 만화 재주가 있는 지망생이랍니다.
초딩 방학동안 노트 7권의 장편 만화를 그렸대요.
학교에서 인기가 짱이었죠. 돌려보며 읽는 것까진 좋았는데..
한 아이가 수업시간에 보면서 킬킬거리는 바람에
꼬마 작가가 불려나갔답니다.
선생님이 뺨을 때렸대요. "쓸데 없는 짓한다고.."
20세기 고정관념이 21세기의 희망에 상처를 안긴 사건이죠.
"어머니는 내게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하셨다"
일본에서 뒤에 의과대학을 가고 우주소년 아톰을 그려낸 데쓰카 오사무의
자서전 제목입니다.
아이들의 항변처럼.. '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 않는 것도 아닌' 지리한 줄다리기 속에서..
호랑이 새끼로 태어나 겨우 고양이로 자라나고 만게
바로 우리 세대가 아닐까(민족적 비극, 국가적 손실) 하는 생각도 들구요.. ㅎㅎ
에구.. 너무 가볍게(?) 진지해지는게 제 단점입니다.
암튼 평소 아빠로서 똑같이 고뇌하는 문제라서...
동병상련으로 덧붙입니다만.. 여기 쓴 말에 대해 책임은 안지겠습니다. ㅋㅋ
암튼 다양한 의견들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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