쩜쩜쩜/잡문

달이와 별이 은하수들과의 이별(넘버1)

주방보조 2021. 3. 27. 19:54

달이와 별이 은하수들과의 이별

달이와 별이를 만난 건 퇴직이 결정되고 연차를 쓰면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에 있었던 10월 어느 날이었다.

추석 전부터 비싸던 채소값이 몇주간 지속되어 시금치를 못 사먹다가 시금치 대신 가격이 좀 내린 부추를 쿠팡에서 주문했다.

냉장고에서 이삼일 있다가 꺼내서 씻으려고 비닐을 벗기는 순간 툭 하고 달팽이 한마리가 떨어졌다.

다른 벌레들처럼 물에 씻겨 내려가겠지 하고 씽크대에 방치 후 씻고 있었다.

그런데 달팽이가 씽크대 상단으로 기어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어찌할 줄 몰라 뚜껑 있는 작은 통 하나에 넣고 숨구멍을 내어 주었다.

그 사이에 도마 위에 올려 놓은 부추 더미 사이로 더 작은 귀여운 달팽이가 올라와 있었다.

아이고 내가 무지막지하게 칼질했으면 어쩔 뻔 했어 하며 통에 넣어 주었다. 

부추에서 나왔으니 부추를 먹겠지 하고 썰던 조각들을 넣어 주었다. 

그런데 몇시간이 되어도 먹는 기색이 안보였다.

그래서 당근을 채썰어 주었다.

딸들도 신기하게 와서 보았다.

그러더니 주말에 진실이가 이마트에 가서 작은 반찬통같은 달팽이집과 코코핏트, 먹이를 사왔다.

남편은 집에 구멍을 뚫어 주었다.

그렇게 우리 식구가 되었다.

이름도 큰놈은 달이, 작은 놈은 별이라고 지어 주었다.

뚜껑이 반투명이라 잘 안 보였지만 가끔 먹이를 먹는 모습을 보며 먹는대로 똥색갈이 변하는 걸 보며 신기해했다.

그렇게 지내다 크리스마스가  되어 쿠팡에서 달팽이용 큰집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마련해 주었다.

그 후 1월 정도에 둘이 붙어 있는 모습을 보이더니 먼저 별이가 알을 낳고 그 담에 달이도 한 번 알을 낳았다.

알들에게 은하수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진실이가 자료를 찾아 알을 따로 다른 집으로 내주었다.

너무 작은 알들이라 보살피기가 쉽지 않았다.

'살팽?'했다는 죄책감을 가지기 싫어 돌봐주는 것이 좀 어려워졌다.

각방을 쓰게 해야 한다는 진실이의 의견이 있었지만 너무 비달팽적이다며 무시하였다.

그런데 별이와 달이가 또 알을 낳았다.

이제 알들의 집은 3개로 늘고 이제 더 이상 알을 낳는 것은 관리불가이고 달이별이도 지칠 것 같고 해서 진실이가 칸막이를 하여 별거를 시켰다.ㅠㅠ

그렇게 몇 주 있는 동안 겨울이어선지 달이와 별이는 자주 자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별이는 알을 낳은 후 활기가 떨어진 느낌이 들게 더 자주 잤다.

그리곤 또 깨고 해서 안심하던 어느 날 별이는 며칠이고 그 자리에 붙어서 아무리 물을 부어주며 깨워도 깨지 않았다.

별이가 별나라로 간 것 같았지만 남편은 혹시 모르니 겨울잠 몇 달 자다가 깰 수도 있으니 그대로 놔두자고 하였다.

억지로의 별거, 은하수들을 돌보는 것에 대한 한계 등으로 우리는 날이 따뜻해지면 자연으로 돌려주자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백년 만에 서울에 가장 벚꽃이 빨리 폈다는 3월 넷째 주 비가 보슬보슬 오는 3월 27일 토요일 눈이 좋은 교신이의 도움을 받아 달이와 별이 은하수를 모두 코코핏에 담아 먹이와 함께 그동안 남편과 산책하며 보아두었던 자리로 놓아주러 남편과 교신이 원경이가 나갔다.

오래 전 달팽이 구조대였던 교신이와 남편.


처음 달이와 별이를 만났을 때 하나님이

 은퇴한 나의 마음을 위로하러 보내셨다 생각했다.

이별은 언제나 슬프다.

은하수 중 조금 커진 아이를 한마리만 놔두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에 모두 보내었다.

나는 겁쟁이라 이제껏 달팽이를 손에 놓아 본 적이 없다.

오늘 이별의 시간에 처음으로 달이의 껍데기를 쓰다듬어 주면서 이별을 고했다.

눈물이 났지만 아닌 체 얼굴에 물을 묻혔다.

달이와 별이야 그리고 은하수들아~

그동안 우리 가족을 행복하게 해주어서 고마와~

부디 행복하고 너무 높이 올라가서 자전거 도로로 가지 말고 천수를 누리기를~

왜 하필 비가 올까...

 

교신이 손위의 달이

 

 

 

 

  • 들풀2021.03.29 09:43 신고

    두분이 모든것 닮으셨습니다.
    그러니
    독수리 오형제들도 닮아갈 수 밖에
    없겠습니다.

    이건 그냥 넘기기 아까운
    가족이야기입니다.
    전국민에게 알려줘야할듯!

    답글
    • 주방보조2021.03.29 18:08

      오늘 산책길에 아내와 그곳에 들렀습니다. 이틀 연속 비가 왔고 날도 좀 추워 어떻게 되었을까 걱정을 했는데...곁에 두었던 상추잎 아래에 은하수 아주 작은 별 하나가 더듬이를 내밀고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둘이 함께 탄성을 질렀습니다. 살아있어서 참 다행이다, 나머지들도 다 잘 있을 것이다...확신을 하면서요^^

    • malmiama2021.03.30 07:33 신고

      와우~~^^♡

    • 주방보조2021.03.30 19:06

      ^^...

  • malmiama2021.03.30 07:33 신고

    그리스도인들에 있어
    이별은 슬프지만 새 생명으로 이어짐이 소망일진저...
    달팽이를 통해 부활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네요.

    답글
    • 주방보조2021.03.30 19:10

      알들을 처음 낳았을 때, 절반은 죽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을 했는데...단 한마리도 그냥 죽지 않았습니다. 모두 살아서 벽을 오르고 천장에 붙어 있었습니다. 생명이란 참으로 대단하다 감탄했었습니다. 미물의 생명이 이럴지니, 하나님의 자녀의 생명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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