쩜쩜쩜/잡문

이별...

주방보조 2021. 3. 27. 15:59

어제

아내와 함께 여전히 왕성하게 알을 낳고 활동하는 달이와 한달 전부터 꼼짝하지 않고 있는 별이와

둘로부터 4차례에 걸쳐 태어난 400여마리(교신이가 세어보았다는^^)은하수 무리들과 아직 부화 하지 않은  알들과

헤어질 준비를 하였습니다. 교신이가 토요일 시간이 조금 나니까 자연으로 돌아가는 우리 달팽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하여 이별을 하루 연장한 것입니다. 아내와 진실이는 마지막 밤을 잘 지내라고 흙도 갈아주고 상추잎도 새로 넣어주고 물도 뿌려주었습니다. 

아내를 필두로 온 가족들이 녀석들과 정이 많이 들었지만

특히 진실이는 달팽이들의 츤데레 엄마노릇을 열심히 하였지요, 투덜거리면서도 알뜰하게...보살피는 엄마.

달이 별이 둘만으로도 크고 작은 플라스틱 통을 네 개나 차지하는 그 번식력을 감당할 수 없어서 5개월간의 만남을 종결짓기로 하였습니다. 

교신이가 매의 눈으로 단 한마리의 달팽이도 탈락하지 않도록 수고를 많이 하였습니다. 

비닐봉지에 먼저 알들을 털어 넣고 다음으로 뚜껑이나 벽에 달라붙어 있는 녀석들을 조심조심 떼어 넣고

마지막으로 별이와 달이를 넣어주었습니다.

마침 봄비도 살살 내려주어 뿌려줄 물을 따로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팔꿈치가 탈이 나서 우산을 받쳐들기 힘들어 함께 하지 못했고

토익스피킹 시험을 보고 온 원경이가 교신이와 저를 따라 나섰습니다. 

한강 뚝방 경사지 중에 비교적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고 좀 넓은 장소를 아내와 산책 중에 미리 찾아 두었었습니다.

자양중앙나들목으로 들어와 직진하여 한강을 만나는 곳입니다. 거기 돌복숭아나무 두 그루 중 안쪽 것 아래로 정했습니다.  

교신이는 달이를 꺼내어 잘 적응하는지 테스트를 해본다면서 빗물방울이 진 풀 잎 위에 달이를 올려 놓았습니다. 

저는 가져간 달팽이 먹이를 주변에 골고루 뿌려 주었고, 마음 속으로 어찌 하든지 잘 살아남기를 기도했습니다. 

이별은 비록 예고된 것이었다 해도 어쩔 수 없이 슬픕니다.

돌아오는 길이 허전하고 염려되고 미안하였습니다. 

 

밤이 깊어 가는데 아직도 비가 내립니다. 

며칠 더 있다 보낼 것을, 추워서 걔들이 어찌 살겠는지, 죽으면 어떻게 하죠...아내는 마음이 몹시 불편해 보입니다.

아 뭘 그리 걱정을 하시오, 걔네들 추운 겨울에도 가뜬히 겨울 잠 자고 살아나는 녀석들이니 너무 걱정을 하지 마세요.

아내의 앓는 소리에 큰 소리를 쳤지만, 제 속마음도 아내 같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달이...

 

  • 들풀2021.03.29 08:34 신고

    와우!
    달팽이와의 이별이라니..
    정이 많이 들었던가봅니다

    답글
    • 주방보조2021.03.29 18:04

      정은 매일 먹이를 주던 아내와 며칠만에 한번씩 흙을 갈아주고 통을 마련해 준 진실이가 가장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아내는 이별이 영 섭섭했는지 좀 더 있다 하라고 저를 나무라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자연으로 돌려보내자~~...주의면서도 이별은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아렸습니다.

    • malmiama2021.03.30 07:37 신고

      달팽이들에겐 자연 그리고 자유..함께 할 고난이겠습니다.

    • 주방보조2021.03.30 19:01

      그 고난은 자연에 맡기기로 하였습니다만, 그래도 가끔 기도할 때면 덧붙여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구하기도 하였답니다.

  • 김순옥2021.03.30 09:04 신고

    아주 작은 미물에게 갖는 이별의 아픔을 공유할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건
    요지경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희망이 있어서 좋아요.
    생명의 존엄성이 사라져가는 뉴스들을 접하면서 느끼는 슬픔이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는 듯해서요.

    답글
    • 주방보조2021.03.30 19:06

      살아있는 생명을 돌본다는 것은 확실히 배우는 것이 많은 일입니다. 아내는 달팽이들을 돌보면서 모든 다른 작은 생명체들에게도 마음을 쓰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아이들은 개나 고양이를 추천하고 있는데, 그것은 절대 안 된다고 단호히 거절 중입니다. 아직 손자 하나도 못 보았는데 미리부터 힘을 뺄 수 없다는 이유지요.^^

'쩜쩜쩜 > 잡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상...  (0) 2021.04.20
달이와 별이 은하수들과의 이별(넘버1)  (0) 2021.03.27
능내역 가는 길...작년 가을의 추억  (0) 2021.03.07
달리기...7  (0) 2021.02.26
달리기...6  (0) 2020.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