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한 변리로 자기 재산을 많아지게 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 불쌍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그 재산을 저축하는 것이니라"(28:8)
'기회비용'을 생각하면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은 상거래에 있어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신용도에 따라 위험부담이 달라지므로 위험할수록 높은 이자를 받는 일도 당연한 일입니다. 예수님도 달란트의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은 자를 꾸짖으실 때 은행을 이야기하시고 이자를 말씀하셨습니다. 율법도 이스라엘 사람끼리는 이자를 받지 말 것을 명하였지만 이방인들에게는 이자를 받아도 된다고 하였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 자체를 죄악시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이자를 받지 않는 것이 자비로운 행위로 칭찬받을 일인 것일 따름입니다.
적정 이자율이 얼마가 되어야 하느냐는 문제는 시대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었습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닙니다만 오래 전에 읽은 책에서 초기 기독교에서도 이 문제로 논쟁이 있었으며 당시엔 대략 연리 40% 정도를 적정하다 하였답니다. 지금(2021년) 전세계적으로 연리가 1%이하로 내려간 것과 꽤 큰 차이를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중한 변리'라는 것은 그 시대의 기준 금리 즉 적정 이자율을 크게 넘어서는 '고리대금업'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조선시대엔 '장리'라는 고리대금업이 일반화 되어 있었는데 그 이율이 80% 정도였고 대부분의 관료들이 장리를 놓아 이익의 재료를 삼았다니 그 폐해가 어느정도였을지 상상이 갑니다. 백성들의 삶이 곤궁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유태인들은 중세 이후 고리대금업으로 유명한 자들이었습니다.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은 그 대표적 모델입니다. 소설이니 극적인 반전이 있지만 그 반전을 빼고 보면 고리대금업의 잔혹함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재미있게도 세익스피어 시대 영국의 번영은 스페인에서 탄압받던 유태인 고리대금업자들이 영국으로 피해 가면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경제를 돌아가게하는 돈의 힘이 스페인에서 영국으로 옮겨간 것이지요)
어쨌든 예나 지금이나
고리대금업은 사람을 말려 죽이는 사회적 악덕입니다.
그것으로 부자가 된 자들은 사람들의 시체 위에 재산을 쌓은 것과 같습니다.
이 악덕에 대하여 하나님은 반드시 징벌하실 것입니다. .
돈에 중독된 이들은 돈의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그들은 돈에 짖눌려 살며 돈의 의미와 가치도 모른 채 모으기만 하고 마침내 죽는 것입니다.
육신의 죽음이야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고, 그들의 삶 그 자체가 영적 죽음과 같을 것입니다.
그들이 죽고 나면 그들이 모아 놓은 재산은 다른 이들에 의해 선한 일에 쓰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돌고 도는 돈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러므로
고라대금업같은 타인의 고통을 나의 이익의 재료로 삼는 일을 삼갈 것이며, 덧붙여 투기의 이익에 눈이 멀지 말아야 합니다.
속히 얻은 재물은 마침내 화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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