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향을 떠나 유리하는 사람은 보금자리를 떠나 떠도는 새와 같으니라"(27:8)
과거 고향을 떠나는 일은 피할 수 없는 대세였습니다. 시골에서 살 수 없으니 서울등 대도시로 사람들은
밀려 들어왔습니다. 공장노동자로 서비스업종사자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들이 터를 새로 잡고 일가를 이루기까지의 그 수고와 아픔은 겪어보지 않은 자들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도시는 커갔고 사람들은 부유해져 갔습니다.
해외로 이민을 가는 일도 덩달아 확대되어 갔습니다. 고국을 떠나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나라로 나아간 이들도 수많은 고초를 넘어 터를 새로 잡고 번성해 왔습니다.
"본향을 떠나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닙니다. 과정은 힘들어도 결과는 유익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본향을 떠나 한 민족을 이루었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본향처럼 여겨질만한 애굽을 떠나 가나안 약속의 땅으로 민족을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그의 뒤를 잇는 이들이 하나님의 약속하신 새 나라 이스라엘을 세웠습니다.
"떠남"이 없이는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본향을 떠나는 일은 창조적인 시작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부모를 떠나서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이 자녀들의 독립이며 새로운 가족의 탄생인 것처럼 말입니다.
새의 새끼가 자라 둥지를 떠나는 것을 이소離巢라고 합니다.
어떤 새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어미새는 일찍 이소시키려 하고 새끼는 좀 더 버티려고 하는 갈등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금 일찍 이소시키는 것이 조금 나중에 이소시키는 것보다 생존율이 훨씬 높다고 합니다. 좀 일찍 이소하여 미숙한 비행으로 천적의 먹이가 되는 것보다 둥지에 오래 머무르는 것이 천적에게 먹힐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랍니다.
새가 둥지를 떠나는 일은 생존과 발전을 위한 필연적인 일입니다. 그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보금자리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이 말씀은
부정적인 해석보다 긍정적인 해석이 본뜻에 더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본향을 떠나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사람은 보금자리를 떠나 독립을 하려는 새와 같다'
물론 아무런 목적도 계획도 없이 탕자처럼 본향을 떠난 이들이 없지 않고
보금자리에서 아직 덜자란 채 뛰어 내리다가 고양이의 밥이 되어버린 새가 없지 않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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