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바울의 믿고 어려운 일을 맡길만한 사람들임에 틀림없습니다. 다만 성격은 좀 달랐던듯, 디모데는 내성적이고 디도는 외향적인 듯 느껴집니다.
할례당은
유대교였던 자들이 교회에 들어와 그리스도인행세를 하는 중
그리스도인도 자기들 유대인처럼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일컫는 말일 것입니다.
사실 당시 성경은 구약성경을 말하며 그 중에서도 특히 모세5경이 가장 중시되었으니, 당연히 할례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읽혔을 것입니다.
고로 이들의 주장이 매우 설득력이 있고 먹혀들었던 것이 당시의 실상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교회 지도자들이 갈팡질팡하는 사이 그들의 세력이 확장되고 복음이 율법주의에 짓눌리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에 대하여 가장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 바울입니다.
사도행전15장의 최초의 국제적 교회회의인 예루살렘 회의도 바로 이런 이방인에게 강요되는 할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안디옥교회 즉 바울과 바나바가
사역하던 교회의 논쟁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으며, 결론은 구원은 은혜로 받는 것이며 할례는 이방인들에게 무익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헬라인 디도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은 이유를 제시하고 율법과 복음이 어떻게 구별되는 지를 절절히 가르치고 훈계한 편지입니다.
'할례를 행하는 자는 모든 율법을 행할 의무를 지니는 것이고 그것은 구원과 관계없이 육체의 자랑에 불과하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이 복음이다.'
그러므로 할례당은 복음을 버리고 율법으로 돌아가게 하려는 악한 자들입니다.
지금도
우리 가운데 비록 형태는 변형되었지만 '할례당의 사상'은 결코 그 세력이 만만치 않음을 주의해야 합니다.
성도들을
끊임없는 교회사역의 종으로 혹사하는 목사들은 거의 다 할례당이라 보아야 할 것입니다.
건축왕 목사들도 할례당이라 보아야 합니다.
마치 자신을 구약의 제사장처럼 거룩하게 따로 구별 해버리는 목사들도 할례당입니다.
세습하는 목사 역시 할례당입니다.
진리와 자유로 가득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자기권세와 통제로 변질시키는 모든 행위가 다 할례당의 악행입니다.
거기엔 반드시 그렇게 하는 자들의 탐욕이 숨어 있습니다.
속지 말고
힘이 있으면 저들의 가르침을 차단할 것이고
힘이 없으면 재빨리 뒤돌아 도망쳐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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