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우리/30초 성경묵상

디모데전서13(6:1-2)

주방보조 2020. 3. 21. 22:17
"무릇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 할 자로 알찌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6:1)

노예제도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은 없습니다. 찬성도 아니고 반대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의 제도와 법이 무엇이든지

그것보다 더 큰 하나님의 법이 다스리는 나라는 그것과 동시적으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자는 이 세상의 육적 나라이고

후자는 영적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법과 제도를 자기들의 쓸모에 따라 바꿔 갈 것이지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는 변함없는 진리로서 이루어진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가르침은 이 세상의 법과 제도 위에 덮여가는 것이지

이 세상의 법과 제도를 바꾸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언제나 상황에 따라 또 바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노예제도 가 있으면 노예들은 어떤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 진리의 하나님께 부합하며

노예를 부리는 자들은 어떻게 노예를 대함이 하나님 앞에 올바른가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노예는 주인을 주님처럼 섬기고, 주인된 자는 노예를 형제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거기 잔혹한 노예제도의 폐해가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노예제도는 기독교의 전파와 더불어 역사 속에서 사라져갔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현재 우리의 자유로운 인권이 존중되는 세상의 역사를 만들어 간 지침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누가 어떤 위치에 처하여 살고 있든지

복음은 우리에게 사랑으로 정의로 살아갈 것을 명합니다.

가난한 자들은 가난한 가운데 그렇게 할 것이고, 부자들은 역시 부유한 가운데 그렇게 할 것이며

여자는 여자로서, 남자는 남자로서, 이 세상의 법과 제도와 상관없이 진리 가운데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빠르게

이 세상의 법과 제도가 변해가는 것입니다.


제국주의 시대에 극악했던 인종차별적 노예제도는 기독교국가들이 앞장섰던 비국적 상황입니다.

그것은 복음이 왜곡되고 정치와 돈이 교회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기독교타락의 시대였기 때문에 벌어진 잘못이었습니다.

그 잘못을 되돌릴 수는 없었지만 그것조차 기독교의 복음으로 무장된 선구자들에 의해 격파되어 갔습니다.


아직도 이 사회의 불균형과 적대감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법과 제도를 고치면 해결될까요? 절대 아닙니다.

법과 제도는 아무리 바뀌어도 인간의 문제는 다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바뀌어야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법과 제도도 적절하게 바뀌어 갑니다.

그래서 다시 강조합니다.

복음안에서 무얷보다 '사람이 먼저' 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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