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우리/30초 성경묵상

디모데전서11(5:1-16)

주방보조 2020. 3. 19. 19:39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5:8)

출발은 무엇보다도 자기자신입니다.
경계도, 돌봄도, 사랑도, 발전도
나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로부터 시작하여 가까운 데로부터 동심원을 그리며 확정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먼 이웃의 어려움을 잘 볼보며

자기자신을 잘 돌보지 못하는 사람은 이중인격자일 따름입니다.

날마다 사회의 정의를 외치며 자신은 아들의 입시비리에 앞장 선 사람같은 자가 그에 해당될 것입니다.

자기자신 다음은 자기가족입니다.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는 사람은 성경말씀 그대로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입니다.

성경에 이보다 더한 욕은 별로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 중에도 자신의 배우자가 으뜸 되는 대상입니다. 좀 풀어서 쓴다면 자신의 배우자에게 잘못하는 사람은 불신자보다 더 악한자중 최고 악한 자가 됩니다.

그 다음은 친족들

그 다음은 친구들

그 다음은 동료들

그다음은 ...으로 이어져 확장되는 것입니다. 


물론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를 대하는 순서는 위와 같은 순번은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려움의 강도가 각각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어려움이 동질의 것이라면

당연히 이 동심원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 옳습니다. 


본문은 그리스도인의 각 계층의 사람들을 대하는 자세를 설명하는데

특별히 교회안의 과부에 대한 이야기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들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에서부터 어떤 과부가 참과부이고 교회가 돌보며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다룹니다.

가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로하여금 짐지게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60이 덜 된 젊은 과부는 또한 교회의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구체적 대상에 대한 문제는 당시대의 사회현상이나 풍속과 관계가 있으므로 현대의 교회가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으나

도움이 필요한 약자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가족이나 친족이 있으면 사회적 약자계급에 속한 이들을 향한 첫번째 책임이 있으므로 당연히 그 짐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스스로 어려움을 감당할만한 나이나 체력이라면 교회에서 부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입니다.

공동체가 감당해야 할 일은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공동체의 근간입니다.

먼저 마땅히 각각의 그리스도인이 해야할 일을 먼저 감당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공동체인 교회가 집중하여 중대하고 절실한 문제를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성령의 역사와 함께 다가온 첫 감동으로 모든 것을 교회에 집중시키고 모든 문제를 교회에 떠맡겼던 첫 예루살렘교회의 시도는 

역사적으로 두 번 다시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천국의 실현이었지만 우리들의 현실은 "아직"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공동체인 교회와 개인인 그리스도인들이 각각 나누어 그 문제를 감당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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