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우리/30초 성경묵상

이사야128(47:1-15)

주방보조 2020. 2. 10. 02:17
"전에 내가 내 백성을 노함으로 내 기업을 욕되게 하여 그들을 네 손에 붙였거늘 네가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고 늙은이에게 네 멍에를 심히 무겁게 메우며 
말하기를 내가 영영히 주모가 되리라 하고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지도 아니하며 그 종말도 생각지 아니하였도다."(47:6-7)

'차선책을 쓰시는 하나님'

이 주제는 오랫동안 하나님의 모순되어 보이는 몇가지 행사를 저 나름대로 이해하는 수단이 되어 왔습니다.

하나님의 징벌 수단이 내포하고 있는 악함에 대한 것입니다. 

아 놈 저 놈 할 것없이 모든 적폐를 다 척결해 버리시면 될텐데

이 악한 놈으로 하여금 저 다른 악한 놈을 척결하시는 방식은 최선이라 보여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망해도 왜 하필 이면 그 악한 앗수르이며

유다가 망해도 왜 하필이면 저 사악한 바벨론입니까.

이 질문은 국가의 망해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모든 경건한자들의 의문이며

하박국 선지자는 노골적으로 하나님께 질문을 돌려댑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합1:13)


최선은 모든 악을 다 제하여 버리시는 것입니다. 

차선은 일부 악을 제거하기 위하여 다른 악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최선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최후의 심판에나 가능한 일이기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인 심판의 대상인 상황에서 하나님은 차선을 택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징벌하기 위해 앗수르라는 몽둥이를 사용하고, 유다를 징벌하기 위해 바벨론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차선책을 사용하실 수밖에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어쨌든

그것은 하나님의 일하시는 영역이니 이 정도 이해하고 그분께 맡기고

정작 문제는

몽둥이를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몽둥이가 스스로 자신의 승리를 마치 자기자신이 의롭거나 완전하여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교만이 스스로를 급속하게 더욱 악하게 하고 마침내 패망에 이르게 하고야 말게 됩니다. 승자의 저주가 바로 그렇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또한 그 몽둥이로 매를 맞은 자가 생각하기를

이 몽둥이야말로 우리를 이겼으니 숭앙하고 본받을 표준이라고 생각한다면 스스로 더욱 큰 화를 자초하고 말 것입니다. 


승리했다고 교만하면 안 됩니다. 그 승리는 하나님의 차선책이며 자신의 의나 능이 아니며 자신도 똑같이 회개할 대상임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패배했다고 비굴해지면 안 됩니다. 그 패배는 하나님이 마침내 복을 주시려고 때려서 깨닫게 하려 하심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모든 일의 성취자는 하나님이심을 아는 자, 그 하나님 앞에 스스로의 더러움을 브끄러워 할 줄 아는 자만이

이기든 지든, 몽둥이로 쓰이건 그 몽둥이에 매를 맞건, 자신을 온전히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바벨론은 몽둥이 주제에 신처럼 군림하고 우쭐거렸으므로 기필코 급속히 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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