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맹렬한 진노와 전쟁의 위력으로 이스라엘에게 베푸시매 그 사방으로 불붙듯하나 깨닫지 못하며 몸이 타나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도다"(42:25)
사랑에 대한 배반은 슬픔으로 나타나고
정의에 대한 배반은 심판으로 종결됩니다.
그래서
우리 정의와 사랑의 하나님은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또한 슬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한 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하나님의 분노가 크고 그만큼 그 슬픔이 깊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그 사랑은 결코 정의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내는 인내의 한계선은 정의입니다.
배반은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합니다. 그 불길같은 진노는 사랑의 인내가 끝났을 때 강도같이 임합니다.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사랑이 특별했던 이스라엘에게는 그 사랑이 특별한만큼 더욱 크게 진노가 역사합니다.
안타깝게도 이사야의 시대에 이스라엘은
죄를 죄로 여기지 못한 것같이, 배반을 배반으로 생각하지 못한 것같이, 하나님의 진노도 진노로 깨닫지 못합니다.
고난이 닥쳐왔을 때 사람은 대략 두 가지 종류로 반응합니다.
하나는 그 고난을 통하여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거나 지혜를 얻는 자이며
다른 하나는 그 고난의 원인을 자기 외의 다른 것에서 찾고 남을 탓하거나 원망함으로 기운을 소진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이 두번째 반응조차도 희망은 있습니다. 자신이 아픈 것은 알기 때문입니다.
최악은
고난을 고난으로 여기지도 못하고 스러져 가는 것입니다. 마약에 중독되듯, 죄에 중독되어 그것이 주는 환각을 생명과 바꾸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런 상태에 있는 백성을 향해 이렇게 말슴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사6:9-10)
그러므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마음이 둔하여 지면
하나님의 진노가 이미 이르렀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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