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을 쓴 이는
길을 가다가 엉망이 되어버린 밭과 포도원을 보았습니다.
어쩌면 이 밭과 포도원의 전 주인들이 그의 절친이었는지 모릅니다.
부지런히 밭을 가꾸고 포도원을 돌보던 친구들은 나이들어 죽고
젊은 그들의 아들들이 아비의 밭과 포도원을 물려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어느 여름날
옛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자기의 밭은 믿음직한 맏아들에게 맡기고 문득 떠 오른 추억을 따라 절친들의 마을을 휘 돌아보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놀랍게도 옛날의 그 밭, 그 포도원이 아니었습니다.
땀을 흘리며 잡초를 뽑는 어느 중년의 아낙을 불러 이 밭과 저 포도원이 어찌 저렇게 되었느냐 물었습니다.
그녀는 허리를 힘들게 펴며 그 밭의 주인이 사는 마을을 손가락질 하면서 대답했을 것입니다.
아비들과 달리 저 아들들이 다 성실과는 담을 쌓은 자들이니 어찌 하겠느냐고 혀를 찼습니다.
옛날 줄지어 잘 자란 채소와 가지마다 반짝이는 열매들은 그 집안의 번영을 말해주는 듯 했었는데
이제 가시덤풀과 거친풀들과 무너진 담이 이미 그 행복의 때는 지나고 말았음을 대신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는 옛 친구의 집 앞에까지 갔을지 모릅니다.
기울어진 담벼락 반쯤 떨어져 나간 문짝들 마당조차 풀이 무성한 그 집 앞에서 젊은 부부의 그악스레 싸우는 소리 아이들의 배고파 우는 소리가 들렸음직 합니다.
그는 절망을 느꼈을 것입니다.
옛 친구들과의 우정을 생각하여 돕고 싶으나, 아무 것도 도울 수 없는 절망.
집에 돌아와 저녁시간 아이들을 앉혀 놓고 그 이야기를 해 주었을 것입니다. 잘 알아듣는다면 평생에 도움이 될 체험이 담긴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
게으름엔 그 어떤 약도 없습니다.
게으름은 가장 치명적인 중독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도 게으른 자를 도우시지 못합니다.
게으름은 무능, 무책임, 무기력과 자기합리화, 변명, 파괴, 그리고 많은 질병의 근원입니다.
그 어떤 교훈도 게으른 자를 교화하기란 약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힘이 들 일입니다.
그래서
게으름은 죽음이고 절망입니다.
살아있으나 산 자가 아니며 눈을 떴으나 보는 자가 아니며 입을 열었으나 들을 말을 할 수 있는 자가 아닙니다.
공격적인 죄를 범하지 않고 사는 자들중에
스스로 그 정도면 착하다 여기며 사는 게으른 자가 있다면
그는 크게 착각하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게으른 자가 착할 수는 없습니다.
게으름 그 자체가 지독하게 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더 나아가 모든 악의 근원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빈궁과 궁핍이 1차적인 결말이라면
영적으로는 죄와 사망이 그 뒤를 잇게 되는 것이 게으름이라는 죄입니다.
게으름을 깨뜨리려면 단 한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지금 당장 일어나서 일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꿈에서 깨고 공상을 멈추고 행동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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