쩜쩜쩜/잡문

아이들과 논쟁 중...

주방보조 2019. 6. 13. 08:54

1.아프면 병원에 가야 한다: 참을 수 없을만큼 아파야만 병원에 간다.

2.누구를 방문하려면 꼭 연락을 하고 만나야 한다: 연락하면 민폐이므로 연락없이 찾아가야 한다.

3.핸드폰이 현대생활엔 꼭 필요하다: 핸드폰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4.외모와 복장을 돈을 아끼지 말고 가꾸어야한다:생긴대로 살고 아껴 살아야 한다.

 

요즘

다섯 다 큰 자식놈들과

늙은 아비가 논쟁중인 주제들입니다. 

 

몸에 조금만 이상한 증세가 있어도 쪼르르 병원에 달려가는 어떤 놈에게

건강염려증이라고 타박을 주었더니

끙끙 앓으면서도 병원에 안 가는 저를 오히려 공격하고 나섰습니다. 병을 키우시는 아버지라고.

우리 몸에는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라 좀 참으면 대부분은 그냥 낫는다고 반박을 했지만

온갖 만성질환이 오랫동안 따라붙은 늙은이의 앓는 빈도수가 늘어나면서 최근엔 좀 밀리고 있는 입장입니다. 

 

저는 옛날 전화 없을 때 연락없이 불쑥 찾아오는 손님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시절에 뇌가 머물렀는지

선생님댁에 찾아갈 때도 친구집을 찾아갈 때도 미리 알리고 가는 것이 몹시 거북합니다. 제자놈의 속성을 이해하시는 선생님이

오히려 명절에 무슨 일이 있어 집을 비우실 것이면 제게 전화를 주십니다. 몇번 헛탕을 칠 때도 없지 않았지만 저는 그것이 마음 편합니다. 

그런 저의 작태를 아이들이 이구동성 비난합니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보라고. 근데 제겐 찾아올 제자도 친구도 없으니 입장 바꿔 

생각할 일이 없습니다. 미리 연락을 하면 말야 나를 맞이할 준비를 하느라 힘들어질 것이잖아. 치워야 하고 차려야 하고, 난 그것은

민폐라고 생각한다. 그냥 자연스럽게 만나면 좋고, 아니면 됐고 그렇지 않으냐? 하지만, 아이들의 강경함에 기가 죽고 있는 중입니다. 

 

핸드폰을 쓰지 않는 이유는 제겐 그것이 필요없기 때문이고, 가지고 다니기 무겁고 귀찮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제가 밖에 나갔다가 

늦게 오거나, 자기들과 길이 어긋맞겨 못만나거나 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이제는 "필요'한 것이 되었다고 저의 탈 핸드폰정책을 끝내려고

합니다. 거기엔 마눌님까지 가끔 동원되는데, 그건 아마 저를 편리하게 부려먹지 못하여 그럴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핸드폰 없음의 특권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길 양쪽에 도열한 금계국의 물결 속에서, 찬란한 한강의 물결이 만들어 내는 빛의 대잔치 가운데에서, 

어마어마한 가마우지 떼가 하늘을 나는 광경을 보다가, 아카시아 꽃 향기를 음미하거나 장미향을 흠향하다가 

삐리리 벨소리나 푸들푸들 진동에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다만 인터넷 본인 인증때문에 자식들 핸드폰을 잠시 빌려야 할 때마다 

이제는 좀 핸드폰을 마련하시죠?라는 비아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버티는 힘만은 타고난 제가 아직은 버틸만 합니다. 

 

아무 옷이나 입고, 아무 신발이나 신고, 아무렇게나 머리를 깎아대는 일에 대하여 이놈들은 저를 비난하고 

핏이 안 맞으면 유행에 떨어지면, 입지도 않고 신지도 않고 버려버리는 것과 비싼 미용실이라도 맘에 들게 하는 곳만 찾는 이놈들을 저는 비난합니다. 

제 주장의 강점은 아직 이놈들이 돈을 엄청나게 벌어대고 있지 못하다는데 있습니다. 

돈도 궁한 놈들이 머리하는데 거액을 뿌려대는 데엔 노골적으로 혀를 찹니다. 저의 찌프린 표정과 혀차는 소리에 궁색한 변명을 해대던 놈들이

결국은 이렇게 반격해 옵니다. 

보세요 아버지, 아버지 입으신 티 겨드랑이에 구멍이 났잖아요!  

 

벌써 오래전에 

아버지 말을 고분고분 듣던 시절은 끝이 났습니다.

이젠

아버지를 자기들 말에 고분고분하게 따르도록 하려는 변환의 시대가 온 것 같습니다.

아직은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일어나서는 안 된다, 다짐을 합니다만

마치

그 고집이 낡은 가죽끈 같다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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