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정말 형편없는 몸이 되었지만
어릴적 나의 오른발은 나의 자랑이었다.
하프라인에서 볼을 차면 빨랫줄처럼 골대를 향해 날아갔었다. 날아오는 공의 위력에 골키퍼 녀석이 도망간 일도 있었다.
공부가 무엇인지
그 잘난 오른발의 능력은 책상에 앉아 무력화 되고 말았는데
그래도
결혼이후
충신이를 목말 태우고 설악산을 누빈 것이나
진실 나실 충신 셋을 한 유모차에 태우고 거의 날마다 아차산을 오르내렸던 것도 전설적인 오른발의 힘이 아니었다 할 수 없었으리라.
당뇨가
20년 이상 몸을 상하게 하고 나서도
100km가 넘는 춘천라이딩 말미에
왼쪽 다리는 장경근인대 증후근을 겪었어도 오른쪽 다리는 오른발의 힘 덕분에 여전히 씽씽했었다.
50 중반이 넘어가면서
매년 발걸음을 늘려갔다.
작년 매일 2만보씩을 걷기까지
그것으로 당뇨와 싸웠으나 역부족 당뇨약과 고혈압 약은 늘어만 갔다.
그리고
나의 자랑...오른발이 무너져 갔다.
먼저 발바닥에 족저근막염으로 통증이 심해졌고,
오른발 두번째 발가락이 퉁퉁 붓기 시작했다.
3천보를 걸으면 발가락에 통증이 나타나고
올해부터 목표로한 2만2천보의 나머지, 1만9천보를 걷는 내내 그 통증을 참아내야만 했다.
우리 동네 클래식500이란 최고급요양원?에서 뷔페알바를 한 교신이가
'거기 식사하러 오시는 할아버지들이 대부분 아버지처럼 어기적거리며 걸으세요.' 하고 '할머니들은 쌩쌩하시구요" 한 뒤 씨익 웃어대는 것은
나의 오른발 두번째 발가락의 사정을 모르고 놀려대는 것이다.
할 수 없이
어제
첫 신혼살림을 살던 진실 나실을 낳고 길렀던 그 건물이
정형외과로 변신 한 뒤 처음으로
환자가 되어 나의 오른쪽 두번째 발가락을 의사에게 내밀었다.
'뼈엔 이상이 없고요, 혈액순환이 안 되어 그런 것입니다.'
피가 안 통하면 이러다 썩고 잘라내냐 하는 것이다. 이것이 무시무시한 당뇨족의 시작이고 나의 당뇨 25년의 중간보고다.
나의 자랑 오른발을 언제까지 지켜낼 것인가, 이것이 이번 전투의 묘미다.
다리 스트레칭과 발가락 맛사지 그리고 골프공을 발바닥으로 굴리기 그리고 족욕을 일단 처방?받았다.
오른발 두번째 발가락...지금은 가장 소중한 지체다.
사랑한다 오두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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