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22:15)
우리 시대에
아이를 채찍으로 때린다면 아이를 빼앗기고 교도소에 갈 수도 있습니다.
가부장적 권위가 초법적인 생사여탈권까지 가졌던 시대의 언어이니 우리 시대와 같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수단은 다를지라도 징계는 아이들에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만은 분명합니다.
요즘의 징계는 대략 잔소리하기, 용돈끊기, 활동을 제한하기, 반성문쓰기, 그리고 벌세우기 정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린 아이들은 순진하고 솔직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정직하거나 남을 배려한다거나 절제한다거나 배우기를 즐거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배워야 할 것은 많고 쉽게 나쁜 버릇에 빠져버릴 수 있습니다.
어리다는 말이 지금은 나이가 적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원래의 뜻은 어리석다는 의미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잠언의 이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어린 아이들에게 올바른 교육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고, 나이나 이해력의 진도에 따른 징계란 교육수단으로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실
어린아이에 대한 징계란 사랑없이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 철이 들면
그때 그토록 싫었던 어머니의 잔소리가 사무치게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그 호통 소리가 필요한 때를 깨닫기도 합니다.
뒤늦게나마 그것이 지극한 사랑이었음을 알게되는 때문입니다.
징계가 저 옛날의 채찍이든지 현대의 벌이든지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징계는 어린 아읻르에게 가장 좋은 영양소와 같은 것입니다.
아이가 잘못하는데도 징계하지 않음은
사랑하지 않음외에는 설명할 도리가 없습니다.
행함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인 것같이
징계없는 사랑은 죽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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