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으로 죄얼을 입게 하였으면 그 범한 죄를 인하여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찌니"(4:3)
(죄얼이란 단어가 어려운데 공동번역에선 벌이라고 하고 개역개정에선 허물이라고 풀어내었습니다. 죄얼은 죄악에 대한 재앙, 다시말하면 하나님이 내리시는 징벌적 재앙이란 의미이니 그냥 벌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좀 더 깊은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단어로 보입니다. 원어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문맥상 허물이나 죄보다는 벌 또는 죄얼이 좀 더 타당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죄를 사람의 직분과
죄에 대한 속죄제를 드리는 제물의 크기가 비례합니다.
제사장은 수송아지
이스라엘 온 회중도 수송아지
족장은 숫염소
평민은 암염소나 어린 암양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많이 맡긴 자에게서는 많이 찾고
적게 맡긴 자에게서는 적게 찾으십니다.
그러므로
같은 죄를 저질렀어도
그 죄로 인한 결과는 그가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며 그 책임을 묻는 크기도 다른 것입니다.
...
성도 몇이 타락해서 교회가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직자가 타락하면 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쉽게 멀어지는지 모릅니다.
국민 몇이 못된 짓을 했다고 나라가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지도자들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일을 벌이면 순식간에 나라가 뒤집어지기도 합니다.
최선은
죄를 예방하여 멀리하고 관여치 않는 것이며
최악은
회개하지 않고 그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고집스러움입니다.
우리나라에 그런 성직자들 그런 지도자들이 발붙이지 못하기를...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