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자녀의 꿈을 꺾기도 하지만
자녀들도 부모의 꿈 꺾는 일 비일비재다.
오늘 나도 꿈 하나를 꺾었다.
사실 소박한 꿈이었는데
공평하지 못할 것 같아 그만 두기로 하였다.
자식들의 용돈 주는 것을 모아 기금을 만들고
죽을 때 남는 재산도 그 기금에 보태고
그것으로 자식들의 자녀들 그리고 그 자녀의 자녀들에게
개별적인 가정이 해 주지 못할 기회를 주는 것, 이것이 그 꿈이었다. 시작은 보잘 것 없어도 만약 이것이 우리 뿐 아니라 우리 자녀들에게 이어지게 되면 그냥 작은 꿈이 아니라 큰 사업이 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시작한 꿈.
첫째와 둘째는 착실히 용돈을 보내왔다. 월급이 반토막 나도 용돈은 깎지 않고 보내주었던 진실이, 극심한 초과근무로 월급이 조금만 오르면 더 많이 보내곤 한 나실이, 모두 눈물겨운 아이들이다. 그 박봉에 그렇게 해 준 것에 대하여 마음으로 너무 미안하고 고마우면서도 내 가슴에 품은 소박한 그들을 위한 꿈에 아무렇지도 않은듯 널름널름 받아 저축해 두었다.
그러나 충신이가 제동을 걸었다. 올해 초부터 용돈을 보내지 않고, 전화비마저 떼어먹고 있었다. 이것은 예상치 못한 복병이었고, 이 놈에겐 말이 통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기에 아무 말 하지 않고 녀석이 지금껏 보내온 용돈과 내 통장에서 빠져나간 녀석의 전화비가 거의 같아지는 이 순간까지 참았다. 결국 충신이는 용돈을 한푼도 내지 않은 것이 되었다. 이것은 불의다. 충신이가 잘못했다는 불의가 아니라 내가 용돈을 받아 의롭게 쓰려는 의도가 불의라는 말이다. 용돈을 바친 부모와 용돈을 바치지 않은 부모가 섞여 있는 것이 나의 손자들이고, 그들을 위하여 그렇게 조성된 기금을 쓰는 것이 불공정하며 불의함이 되는 것이다. 불공정할 미래를 차단하기 위해, 나는 꿈을 접었다.
오늘 가족회의를 했다.
1.미국의 어머니와 누나에게 가족들이 안부라도 좀 가끔 물어지기를 부탁했고
2.새집과 헌집에서 아들들과 딸들을 바꾸기로, 그래서 아들들은 새집으로, 딸들은 헌집으로 9월 중 처소를 바꾸기로 했고
3.그동안 받은 용돈을 모두 돌려주기로 했다.
무심한 듯 말했지만...사실 마음이 무척 힘들었다.
소박한 꿈이라도 벌써 5년이 넘게 해 온 일인데 막상 그만 두려니 슬펐다.
그 아픔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나도 그들의 꿈을 많이 꺾었으리라. 인과응보려니 받아들여야 한다. 뜻이 선하면 다른 인도하심이 있겠지.
나는 어쩌면 나의 가족이라는 영역의 이 땅에서 그의 나라를 조금이나마 실현시키고픈 욕심이 있었나보다.
그런 꿈은 깨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도
그동안 그 소박한 꿈을 아내와 나 둘이 몰래 가지고 행복해 한 시간들이 감사하다.
사실 꿈꿀 나이가 아니다.
아버지의 그 나라에 갈 준비를 하나하나 실제로 해 나가야 할 나이다.
늙었다. 꿈도 꾸지 말아야할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