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6시간만에 박동주의 글은 내려갔다.
솔직히 자기도 쪽팔리겠지. 나이 똥꼬로 쳐먹은거 인증하고 욕먹고 동창회 이미지만 잔뜩 깎아먹었으니 말이다.
임재경 선생님의 말을 들어보니, 박동주는 전화로 여전히 자신의 떳떳함을 주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둘째치고, 나는 임재경 선생님에게 더욱 대단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박동주가 내년에 광진구의원으로 출마한다고 하더라. 동창회 만든 목적은 아무래도 그거 같아."
역시 학교를 사랑해서 동창회를 만든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양고등학교를 출세의 발판으로 사용하기 위해 선한 사람의 탈을 쓰고, 마치 자신이 자양고를 사랑해서 많은 후원을 하는 것처럼 행세한 것이다.
'이런 인간이 광진구의원이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상상만해도 끔찍하다. 내가 사는 지역의 대표가 박동주라니. 자신의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권위적이고, 광진구 주민들을 위하기는 커녕 분명 윗사람들에게 어떻게든 잘보여서 더욱 더 출세하려고만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희생당하는 것은 애꿎은 광진구 주민들 아니겠는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선배들의 커뮤니티인 대자양고 학생회 페이스북 그룹에서 박동주 선배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슈퍼스타 J 우승 상금이 30만원이군요...저는 무슨 인생 역전이 가능한 금액인 줄 알았습니다."
"저는 이번 일을 보면서 현재 학생회 편에 들기로 했습니다. 딱 봐도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보이니까요."
"이번을 계기로 불편한 분들의 얼굴은 더이상 안보게 되었으면 좋겠군요."
"저는 총동창회 창립멤버로서, 박동주 선배가 학생회에 간섭하는 것을 온몸으로 막으려 했지만 결국 막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이번 학생회의 용감한 행동으로 개혁이 되어서 보기 좋군요!"
어느새 그 그룹엔 쥐도새도 모르게 박동주 선배가 사라져 있었다. 여기에서까지 까일 줄은 몰랐겠지. 김재형 선배와 이태민 선배가 함께 사라진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렇게 보니 불쌍하기까지 했다. 특히 31대 선배들은 우리 모두에게 차단당했으니 말이다.
"난 김교신한테 잘못한게 하나도 없다니까?"
이 대사를 떠올리니 다시 화가 솟구쳤지만.
'소설이나 한 번 써볼까? 그동안 있었던 일로.'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참 힘들었는데, 알아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가끔 학생회가 지금까지 한게 뭐가 있냐고 누군가가 비아냥대는 걸 들을때마다 다 설명해 줄 수도 없어서 참 난감하기도 했고.
......
SPTA 학교 발전 협의회!
학생, 선생, 학부모,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자양고 발전을 위한 회의가 열렸다.
학생대표로 나와 부회장인 서민지, 구연모, 그리고 서기인 이연우가, 선생 대표론 각 부서별 부장 선생님들과 교장 교감 선생님, 지역대표로 총동창회장 이재성과 총동창회 이사 박동주 외 광진구청 대표, 그리고 학교운영위원이신 학부모님들이 모두 참여하는 회의였다.
"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번 SPTA 회의 진행을 맡게 된 신승은 부장이라고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자양고등학교 발전을 위한 토론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좌석배치부터 나와 박동주는 약간 떨어진 대각선 맞은 편이었다. 그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그와 나는 서로 미소 가득 띈 얼굴로 여유롭다는 듯 표정관리를 했다.
각 한사람씩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했는데, 박동주의 차례가 되자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소갯말을 길게 늘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자양고등학교 16대 학생회장이었고 현재 총동창회 이사를 맡고있는 박동주라고 합니다. 지금 생활지도부장 선생님이 제가 회장할 때도 생활지도부장 이셨는데, 이렇게 다시 인연이 닿을 줄은 몰랐네요. 하하하!"
그러자 생활지도부장 김대영 선생님이 웃으며 그의 말을 받아줬다.
"아, 박동주 저 분이 저의 애제자입니다. 학창시절 상당히 거칠었는데, 그래도 저렇게 성장한걸 보니 정말 대견하고 자랑스럽네요. 제가 지금까지 본 학생회장 중에 최고였습니다."
"아이고, 과찬의 말씀을. 제가 확실히 학창시절때 주먹을 과격하게 쓰긴 했습니다."
박동주의 말에, 선생님들 모두가 재밌다는 듯 박장대소를 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디가 웃기다는거지.
박동주는 웃음이 멈춰갈 때 즈음 말을 이어나갔다.
"뭐...제가 학창시절에 좀 과격했던 것이 아마 후배들에게 상당히 와전되어 전달이 됐는지, 지금 저기 앉아있는 학생회장에게 큰 오해를 사게 되었나봅니다. 이번에 32대 학생회와 조금 마찰이 있었는데, 그간 쌓였던 오해를 풀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으면 좋겠군요."
그러자 모두가 나를 쳐다봤고, 나는 허공을 바라보며 썩은 미소를 얼굴에 가득 담았다. 저렇게 슬쩍 넘어가면 내가 당할 줄 알았을까?
'자기 잘못은 절대 인정 안하고 나를 의심만 가득찬 사람으로 몰아가는건가.'
그의 속내는 뻔했다. 어차피 선생님들은 자신에게 관대한 입장이니, 이런식으로 나를 몰아세우고 대충 사과같지도 않은 사과를 하면 선생님들이 사과를 받아주라는 분위기를 형성시킬 것이라는 계산이겠지.
그래서 나는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잠깐 웃는 표정을 지었다가, 뭘 보냐는 눈빛으로 선생님들을 쫙 훑어보니 그제서야 나에게 집중된 시선이 풀렸다.
"그럼 지금부터 각 대표별로 학교에서 무슨 역할을 맡고 있는지에 대한 소개를 한 분씩 돌아가면서 하겠습니다."
진행자인 신승은 선생님이 말하자, 박동주가 손을 들고 발언권을 요청했다.
"동창회 이사님, 말씀하시죠."
"아...그리고 제가 사실 엄청 바빠서요, 죄송하지만 먼저 발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동창회는 그동안 양현재의 정상화시키고, 우수 인재 육성을 위한 장학사업을..."
또 시작이다. 장학사업은 무슨 이름만 거창하지 그렇게 돈이 많이 들어가지도 않은데다가, 양현재를 정상화 시켰다는데 얼마를 투자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나서 하는 말이라곤, 동창회 좀 알아달라고 구걸하는 것이었다.
"저희 동창회가 그래도 선생님들의 생각보다 학교를 위해 하는 일이 많으니, 그것은 좀 잘 알아주셨으면 좋겠고, 학생들에게도 홍보가 잘 되도록 협조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긴. 학교를 위해 하는 일이 많긴 했지. 교무실 돌아다니면서 선생님들에게 선물을 뿌리고 다녔으니 말이다.
나는 학기 초에 갑자기 담임 선생님이 아침 조회시간에 교실에 들어와서 한 말을 듣고 충격에 휩싸였었다.
"야, 그 너네 선배중에 박동주라고 있는데, 그 사람 참 좋은 사람이더라. 너네도 그 사람 보고 배워야해. 돈도 많이 벌고..."
그걸 듣고 나와 김태환이 그 인간 16살 후배한테 꼰대나 부리는 미친놈이라고 말했었지만, 선배를 대하는 태도가 그게 뭐냐는 소리나 들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교무실 돌아다니면서 선물 공세를 하고 다닌 것이었다.
'한심한 인간들. 돈만 준다면 나라도 팔아먹을 인간들이다. 이게 바로 공무원의 폐해지.'
이런 학교를 다녀야 하는 내 신세도 참 불쌍했다.
......
SPTA 회의는 무난하게 끝이 났다. 나는 창의체험시간의 무의미함에 대해서 따졌고, 그 외에는 딱히 발언을 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 발언을 할 기회가 없었다. 선생님들이 빨리 끝내고 밥먹으러 가자며 대놓고 눈치를 줬으니까.
"회의가 끝났으니 모두 예약한 식당으로 가도록 하죠. 아, 학생대표들은 교무실 냉장고에 샌드위치 준비해놨으니까 그거 먹어~"
그래, 그 더러운 밥 니네끼리 잘 쳐먹어라. 나도 너네같은 인간들이랑 같이 밥먹기 싫었다.
아무래도 기분이 잔뜩 잡쳐서 회의실을 나와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데, 총동창회장 이재성이라는 분이 나를 불렀다.
"회장친구, 혹시 나랑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하죠. 2층 원탁으로 내려오세요."
아마 그도 나에게 듣고싶은 말이 많을 것이다. 나도 그건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음...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할까..."
그가 의자에 앉으면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교감 선생님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야야, 회장아, 우리 동창회장님 한 번 안아드려라."
"네?"
"아무리 그래도 선배님이 짱이야 짱. 학연은 절대로 끊길 수가 없어. 그러니까 넌 선배님들에게 잘보여야돼 알겠지?"
"저한테 왜이러시죠."
"아니 그러니까 슈퍼스타 J도 잘 도와주고, 동창회랑 사이좋게 지내봐. 응?"
어이가 없었다. 갑자기 나타나서 이게 뭔 오지랖인지.
교감은 그 말을 하고서 밥을 먹으러 간다며 서둘러 어디론가 가버렸다.
"흠흠. 본론으로 돌아가보자. 이번에 무슨 사건이 있었니?"
"제가 듣기로는 총동창회에선 저를 회장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데요. 이렇게 저랑 얘기하셔도 되는건가요?"
"아...그건 박동주 그 친구의 뜻이지 우리의 뜻은 아니야. 그것만은 알아주렴."
"뭐 그거 외에는 너무 복잡해서 설명하기가 힘듭니다. 다만 박동주 그 분이 저희 32대 학생회를 모욕했을 뿐입니다. 저는 절대 제대로 사과받지 못하면 슈퍼스타 J에 협조할 생각이 없습니다."
"으음...솔직히 동창회도 박동주 그 친구가 주도적으로 만든거니까...나도 이런 일이 있는 줄은 잘 몰랐단다."
그 말을 들으니 마치 31대 학생회를 보는 듯 했다. 얼굴 마담으로만 존재하는 껍데기 회장 김재형과, 그를 휘어잡고 권력을 휘두르는 이태민. 동창회도 별 다를 바는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 박동주 이사가 너네에게 제대로 사과를 할 것 같진 않아. 그래도 좀 봐주면 안되겠니?"
"절대 안됩니다."
단호한 나의 대답에, 그는 민망한 듯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장의 뜻은 잘 알겠어. 나도 이만 저녁약속이 있어서...마지막으로 서로 번호교환이나 하자."
"그러죠."
번호 교환을 하고, 나는 그와 헤어져서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박동주가 광진구의원이 되는 일은 절대 막아야한다.'
오직 머릿속엔 이 생각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가식과 위선으로 가득 찬 그 인간이 이 지역을 대표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니까.
......
제가 이 글을 올리기 전에 게시한 사진을 보면 다들 아실겁니다. 왜 그렇게 선생님들이 동창회를 끊지 못하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것에 대해 저와 뜻이 맞는 학생회 담당 선생님이 계셔서 그나마 다행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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