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다섯아이키우기

학생회장 김교신 28

주방보조 2017. 6. 25. 13:13

28화.

"야 큰일났어. 미친 이것 좀 봐봐."

아침부터 서민지가 나를 보자마자 뛰어왔다. 아무래도 체육대회가 끝나고 나서 잔뜩 기가 죽어있는데, 또 무슨 큰일일까. 곧 그녀가 내게 보여준 것은 페이스북 자양고등학교 총학생회 페이지였다.

<대 자양고 제 3회 슈퍼스타 J>

자양고등학교 총동창회 5주년을 맞이하여 진행하는 이번 행사의 컨셉은 '복고' 입니다. 선의의 경쟁을 통해 자신의 끼를 발산해주세요!

(접수방법)
1. 본관 출입구에 있는 접수대에서 신청서 작성 후 신청함에 투하!
2. 자양고등학교 총학생회 페이지로 양식에 맞춰 메시지 보내면 신청 완료!
(문의 : 31대 학생회장 김재형. 010-34........)

"이건 뭐냐. 왜 뜬금없이 김재형 선배가 나오냐."

"지금 내가 할 말이 그거라니까?"

"음...뭐 박동주 선배가 나를 싫어하니까 그런거겠지."

"아, 이 미친놈들."

16대 학생회장 출신인 대선배이자 총동창회 이사인 박동주는, 아마 자양고 학생 중에 나를 가장 싫어할 것이다. 애초부터 나와는 철저하게 대립된 관계였으니까.
이 사실이 단톡방에 알려지자마자, 천혜린이 바로 김재형 선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저거 슈퍼스타 J 왜 재형오빠 이름으로 돼있어요? 총동창회에선 저희가 필요없나봐요?

그러자 바로 돌아오는 답장.

-아니 진짜 어쩔 수가 없었어. 박동주 선배님이 김교신이랑은 절대 하기싫다고 하는데... 그래서 32대 학생회랑은 아예 접촉 안하고 나랑 이태민이랑 몇몇 애들 불러서 하기로 했어. 솔직히 나도 하기 싫어. 나이 쳐먹고 뭐하는 짓이야.

-그럼 왜 우리한테 아무것도 안알려줬어요?

-박동주 선배가 자기가 직접 32대 애들 터치할거라고 우리보고 비밀로 하라했어.

나는 그 대답을 보고 참 찌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 싫은걸 억지로 왜하나. 저렇게 결단력이 없으니까 맨날 끌려만 다니지.
한편, 수련회를 간 상태인 2학년 부원들은 아예 연락이 되질 않았다. 아마 지금 이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으리라.

"일단 3학년들끼리 1교시 끝나고 전부 모이죠. 다들 할 말이 많을 것 같은데."

나는 단톡방에 공지를 한 후, 수업 내내 계속 슈퍼스타 J 생각에 잠겼다.
박동주 선배가 나한테 와서 싹싹 빌지 않는 이상 나는 절대 슈퍼스타 J를 해줄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어차피 절대 그럴 일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뭐...행사 하면 재밌겠지만, 이번을 기회로 아예 31대와 박동주를 학생회실에 발도 못붙이게 하는 것도 괜찮지.'

학생회 면접때 찾아와서 면접을 중간에 중지시키고 질문을 뭐 그따위로 짜왔냐고 30분동안 회장단에게 가오를 부리기도 했고, 뜬금없이 31대 학생회와 학생회실에 찾아오더니 학생회실이 엉망이라며 32대 학생회와는 일 못하겠다고 화를 냈었던 것. 이 대표적인 두가지 사건만 봐도 학생회에 앞으로 득이 될 사람인가 해가 될 사람인가 알 수 있었다.

'나보다 16살이나 더 쳐먹고 저러고 싶을까.'

박동주라는 사람은 자양고를 정말 사랑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몇 년 전부터 양현재에 꼬박꼬박 일정 금액을 기부하기도 했고, 총동창회를 주도적으로 만든 사람도 그 사람이니 말이다.
그러나, 학교에는 이득이 되는 사람일지 모르지만, 학생회엔 결코 아니었다. 물론 돈이 많다는 이유로 이태민 선배와 김재형 선배가 그에게 추잡할 정도로 빌붙긴 하지만 말이다.
가끔 박동주 선배가 학교에 오면 31대 선배들이 허리를 숙이며 "오셨습니까 형님!" 이러는데, 그 꼴을 볼 때마다 역겨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마 박동주가 나를 싫어하는 이유도 그것과 연관이 있으리라. 허리를 숙여대며 아부를 떠는 31대 선배들과는 달리, 나는 고개만 까닥하며 인사한 후 매우 딱딱한 말투로 이야기 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건 학생회 부원들의 의견이다. 아무래도 이미 다 내편인 것 같지만.'

문득 다시 옛날 생각이 났다. 내 편이 거의 없던, 아무도 믿을 수 없었던 그 시절. 이제는 아닐 것이란걸 알지만 그래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트라우마로 남아 약간의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

1교시가 끝나고, 3학년 부원들이 모두 사회과 교실에 모이자 나는 그들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일단 슈퍼스타 J, 여러분은 하고 싶어요?"

"아뇨. 정떨어졌어요."
"솔직히 하고 싶긴 한데, 지금 이렇게 대놓고 32대를 배제하는 상황에서 하고싶다고 나서기엔 무리같아요."
"애초부터 전 하기 싫었어요."

그러다 손경식이 치가 떨린다는 듯 한마디 던졌다.

"그냥 이번 기회에 31대나 박동주 선배나 다 끊어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 또 이태민 선배 때문에 회장이랑 이간질 당하고 싶지 않아요."

일단 분위기는 모두 내 편이었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다. 이게 지극히 정상이니까.

"그럼 이 자리에서, 슈퍼스타 J는 박동주가 와서 무릎꿇고 빌어도 협조 안해주는걸로 하죠."

그러자 모두 고개를 끄덕거리며 승낙했다.

"야 미친, 김재형 선배랑 이태민 선배한테 부재중 전화 엄청왔는데? 아니 박동주 선배한테도 전화옴."

서민지가 핸드폰을 들고 곤란하다는 듯 외쳤다.

"넌 어떻게 생각해. 선배들에 대해서."

나는 서민지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고, 그녀는 곧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다 죽여야지. 아니 솔직히 나 지금 너무 빡치거든?"

"왜지?"

"왜긴, 일단 우리 대놓고 무시 당했잖아."

좋다. 이제 게임은 거의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면, 우리 입장을 정리하자. 우린 지금 눈뜨고 코베인 상태니까, 자양고등학교 총학생회 페이지에서 그 슈퍼스타 J 관련 글을 모두 삭제하라고 서민지 니가 김재형 선배한테 말해. 그건 총동창회 페이지에나 올리라고."

"오케이."

자양고등학교 총학생회 페이지는 관리자가 총 5명이었는데, 나와 서민지, 강다영, 그리고 김재형 선배와 내가 잘 모르는 30대 학생회 출신 선배가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슈퍼스타 J 관련 글을 지울 수 있었지만, 그래도 통보는 해야겠다는 판단이었다.

"그럼 슈퍼스타 J는 안하는걸로 하고, 일단 쉬는 시간 다 끝나가니까 교실로 가자."

......

2교시가 끝나고 핸드폰을 켜보니 페이스북 알림이 하나 떠있었다.

-자양고등학교 총학생회 페이지 관리자에서 삭제되었습니다.

이 미친놈들. 아마 서민지가 보낸 메시지를 보고 나를 관리자에서 삭제한 것이 분명했다.
내가 이 사실을 단톡방에 알리자, 학생회 부원들은 더욱 더 분노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서민지와 강다영은 아직 관리자에서 제명되지 않은 듯 했다.

'이거, 또 뭔가 느낌이 오는데.'

내 예상대로라면 분명히 서민지와 강다영을 포섭해서, 나를 적으로 돌리려는 의도였다.
그리고 그것이 맞다는 것을 곧 알 수 있었다.

3교시가 끝날 무렵, 서민지에게 문자가 왔다.

-박동주 선배가 점심시간에 만나자는데?

-오, 시간 남아도나봐?

-뭐 3학년 부장들도 데려오라고 하는데, 너를 데려오라는 말은 없어.

- 그건 상관없어. 내가 갈거니까.

사업은 6개를 하고 한 달에 2억을 번다는 분이, 자양고등학교엔 왜 그렇게 자주 찾아오는지. 그래도 제 발로 걸어들어오니 참 고마웠다.

......

그렇게 점심시간이 되고, 나는 서민지와 함께 박동주를 만나러 소회의실에 들어갔다.

"오오, 민지야 오랜만이다. 여기 앉아."

나는 아예 무시하며 서민지에게 말하는 박동주. 그러나 그의 정면에 내가 대놓고 앉자, 그의 얼굴 표정이 일그러졌다.

"넌 왜왔니? 나는 너한테 할 말이 없는데?"

"사과를 받아야 할 것 같은데요?"

"무슨 사과?"

"제가 총학생회 페이지 관리자에서 제명 당했습니다만."

"아, 내가 시켰어. 너 삭제하라고. 김재형이 나한테 그러더라고. 김교신은 정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애니까 지금 빨리 삭제하는게 나을거라면서..."

"제가 지금 현재 회장인데 학생회 페이지에서 제명당한다는게 말이 됩니까?"

"그거 페이지 니가 만든거 아니잖아. 그 총학생회 페이지는 너보다 한참 위인 대선배님들께서 만든건데, 그걸 니가 사용하고 있었을 뿐이지 그게 너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야."

"기가 막히는군. 저를 제명할 권리가 선배에겐 있습니까?"

"아, 그거야 당연하지! 난 너보다 16대나 선밴데? 게다가 넌 이미 대선배들을 부정했잖아."

"제가요?"

"니가 초창기에 선생님들한테 뭐라 그랬지?"

"전혀 기억이 안납니다만."

"그거나 더 생각하고 와. 난 더이상 너한테 할 말이 없어. 우리 총동창회에서는 너를 학생회장으로 인정하지 않으니까."

"그럼 슈퍼스타 J는 저와 전혀 연관이 없는걸로?"

"어어, 그건 내가 확실하게 맞다고 해줄게."

"네, 그러세요. 저야 좋죠. 그럼 민지랑 좋은 이야기 나누세요~"

난 그렇게 서민지와 박동주를 등지고 회의실을 나왔다. 괜찮은 대화였다. 총동창회에서 나를 학생회장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발언과, 슈퍼스타 J는 나와 전혀 연관이 없다는 확답까지 얻었다. 이제부터 나는 그에게 질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


짧습니다. 너무 늦은것 같아서 그냥 올릴래요... 내일 좀 길게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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