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 시대에 보증을 서려면 이웃들로 증인을 삼고 그들 앞에서 빚진자의 손을 부여잡아야 했나 봅니다.
참 보기에 감동적이고 훌륭한 장면이었을 것입니다.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돕기 위하여 증인들 앞에서 그를 위해 모든 것을 걸겠다는 맹세를 한 것이니까요.
요즘은 보증보험이라는 제도도 있고, 지나친 보증의 폐해를 막기 위해 여러가지 안전장치들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을 위해 보증을 선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로 치부되고 있습니다.
다정함이 시대를 관통하던 시절, 그러니까 대략 70년대까지, 우리나라에 빚보증으로 망한 가정을 찾아내기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친구때문에 망하고, 형제때문에 망하고, 친척때문에 망한 사람들이 숱하였었습니다.
잠언은 여러번 경고합니다.
보증을 서지 말라고.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아마 보증을 선다는 것은 그가 누구든 자기의 분수를 넘어서는 짓을 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보증이란, 사람이 남을 도울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분수에 넘는 일을 하면 반드시 그 댓가는 참혹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분수에 넘는 일일까요?
첫째는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한 것이고
둘째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지나친 것이며
세째는 인간이 내일일을 알 수 없다는 그 한계를 간과한 것이며
네째는 참혹한 결과를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한 잘못때문입니다.
참혹한 결과는 자신의 대에서 끝나지 않고 자녀들에게까지 이어집니다. .
보증을 서 준이가 잘되어서 성공했다면 정말 운이 좋은 것입니다.
운이 좋은 것이 곧 잘한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어리석다고 엄히 그것도 여러번 꾸짖습니다.
멋도 없고 감동도 없을지라도 ...분수에 맞게 남을 돕는 것
그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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