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신이는 운동이라고 하면 다 잘 합니다.
달리기 멀리뛰기 베드민턴 자전거 태권도 춤...그리고 축구!!!
요즘 이 녀석 축구에 대한 열정이 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아침 댓바람부터 아내의 호통소리가 났고 나즈막한 저주파의 교신이 음성이 그 밑을 은근히 울리며 흘러들었습니다.
아내의 소리는 알겠는데 교신이의 소리는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넘버1과 넘버2가 다툴 때
넘버3인 제 처신은 언제나 조심스러워야 하는 법입니다. 괜히 끼어들었다가 면박을 당할 수도 있으므로...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안돼, 난 다 말했다'로 일관하던 아내가 제게 도움을 청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여보 이리 좀 와 보세요" ...ㅎㅎㅎ...요때가 바로 넘버3가 당당히 끼어들 수 있는 순간입니다. 네`~하고 거실로 행차를 했습니다.
교신이는 아침에 다른 중학교와 축구시합이 있고, 그 시합을 하고 나면 또 해피리그인가 하는 어른들과 함께 한게임을 더 해야하고, 점심먹고 좀 쉬었다가 또 다른 중학교와 시합을 해야한다고, 제가 듣지 못할만큼의 낮은 소리로 엄마에게 통보했고, 마눌님은 날마다 놀고 또 토요일 아침 한번도 아니고 하루종일이라니 기막혀 하신 것이 이 다툼의 발단이었습니다.
마눌님이 저의 합류에 힘이 나셔서 , 야 너 이 험한 인생을 어찌 살라고 놀기만 하려는거야? 하시는 것을
인생을 살아보지도 못한 아이에게 인생을 말하는 것은 무리라며 진정시키고
교신이와의 대화를 시작하였습니다.
축구선수가 되고싶으냐?
아니요
너의 코치에게 축구선수되는 길을 알아봐 줄까?
그러실 필요 없는데요
그럼 고등학교를 체고로 갈래?
아니요
나는 그런 길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너도 알겠지만 난 진실이에겐 만화가 되라고 했고 충신이에겐 공고를 권했었다.
네 압니다.
축구가 그렇게 좋으면 축구를 해라.
...
이때부터 막내아들은 침묵모드로 전환하여 고개숙인 소년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녀석이 침묵하면 우리는 별 수가 없습니다. 철수해야지요.
녀석은 8시 조금 넘어 조용히 집을 나갔습니다. 축구유니폼에 옷가지가 든 가방을 메고...
...
9시에 원경이 자기소개서 작성반에 가는 길 데려다 주고
시합이 있다는 자양중학교에 들러서 마침 열이 붙은 축구경기를 보았습니다.
교신이는 2학년이라 후보들에 끼어 앉아 있었습니다.
코치가
야! 너희들! 저기 야구그물망 좀 치워라 하니
교신이 포함 세명이 터벅터벅 걸어 골대 오른편에 있는 그물망을 옮겨 놓고 돌아 와 앉았습니다.
그리고
야! 체육관에 가서 의자 좀 여섯개 가져와라 하니
교신이 포함 세명이 벅터벅터 걸어 양손에 접는 의자들을 들고 왔습니다.
그 사이 교신이네 팀은 두 골을 넣어 전반에만 2:0으로 이기고 있었습니다.
...
잠시 쉬는 시간에 집으로 갔습니다.
마눌님이 아침에 자전거를 타자 하시더니, 그 사이 마음이 바뀌셔서 이마트를 가자하셨습니다.
후반전도 보고 싶었지만 마눌님의 외출준비의 특권때문에 보지 못하고...이미 경기가 끝난 뒤 물병을 들고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녀석을 슬쩍 보았습니다.
...
이마트에서 선풍기도 사고 반찬거리 몇개를 산 뒤에
마눌님은 반바지 하나를 번쩍 들더니 '이거 이쁜데요' 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교신이에게 어울릴 반바지였습니다. 며칠전 두벌이나 사주었는데 말입니다.
여보, 이건 안 됩니다. 이런 식으로 사랑하면 반드시 화를 당합니다. 맹목적 사랑은 배반의 씨앗이라니까요오옷...
겨우 뜯어 말리고^^
어제 휴학계를 내고 집에서 탱자탱자 노는 충신이를 불러 짐을 싣고 가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11시쯤 된 그 시간에 자양중을 들러보니
아이들과 어른들이 섞여서 경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거기 오른쪽 윙을 맡고 있는 교신이가 좀 버벅대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엄마에게 혼이 난 때문인지
아니면 첫 경기에서 후반전에 뽑혀 뛰다가 실수를 했는지
아니면 후보노릇만 해서 그랬는지
자신감이 없어 보이고 팔팔하던 평소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경기가 곧 끝나고 녀석을 향해 우리 셋이 손을 흔들었지만...놈은 아는 척 시시한 웃음과 눈짓 한번 하고 의자를 나르러 갔습니다.
...
아침엔 좀 화가 났는데
후보 김교신 선수...너무 불쌍해 보였습니다. ^^
내년엔 중3이니까 붙박이 선발로 뛸 수 있겠지요.
어차피 공부 안 하는 거...축구나 신나게 하게 해주어야 할까부다...하는 말도 안 되는 감동이 비죽이 앞 가슴을 뚫고 나오려 하고 있었습니다.
-
수원의 남동생 아들은 고2인데도 축구 사랑이 여전하고,
답글
미국의 남동생 아들은 역시 이제 고2가 되는데 농구에 미치다시피라더군요.
두 녀석들 모두 나름대로 공부도 잘합니다.
한빛이는 운동은 어려서 도장에 가져다 준 돈 만큼으로 태권도 4품을 딴 것 말고는
운동은 남의 일이고 지금까지 오로지, 변함없이 게임만 합니다.
거기다 대학에 가기 전까지는 맥주 한 캔 입에 대지 않던 녀석이
때때로 술을 마시고 다닙니다.이런저런 핑계거리도 참 많더군요.
그러니 저는 게임보다는 운동이 훨씬 낫다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교신이가 중학생이니 주말쯤은 축구에 올인해도 별로 나쁘지 않을 것 같거든요.
체력을 키우는 일 말고도 지구력, 협동심...도움이 많이 되지 않을까요?
공부는 서서히 해도 고등학교에 가서 최선을 다하면 될 것 같은데
그것을 확신할 수 없어섯 조금 걱정은 되지만요. -
-
공부 따로 채근하지 않아도 저 알아서 열심히 해서
답글
성적 올리는 자녀 둔 부모는 복 많은 부모입니다.
공부 안 하는 자식은 아무리 위협하고 애걸하고 잔소리해도 소용없습니다.
날 때부터 다른 종족인 게 분명합니다.
그러니 전 일찌감치 포기하고 공부하란 소리 일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제 마음이라도 편하고 미워하지라도 않게 되니 다행핝 일이라고 자위하면서요.
그런 아들들을 둘씩이나 키운 선배? 아빠로서 한 말씀 올렸습니다. ㅎㅎ -
게임보다는 확실히 축구가 낫습니다.^^
답글
저는 운동과 관련해는 아이들에게 늘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탁구,수영,자전거,헬쓰......
운동신경이 덜 발달한 형민이는 흥미가 없으니 당연히 열심이지 않더군요.
주말만큼은 교신이의 날로 정해줌이 어떻습니까?-
주방보조2013.06.16 22:41
월화수목금토...모두 교신이의 날입니다.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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