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돌아갈 수 없는

어머니의 구부러진 새끼 손가락...

주방보조 2012. 4. 26. 16:29

어머니를 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잘 아는 분과 만나 대화 하는 중에

어머니의 글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머니의 글씨가 참 훌륭했다고 기억하시고 계시다고...

 

제 어머니는 글씨체가 참 독특하셨습니다. 

예쁘거나 단정하거나 균형잡혔다기보다는 힘있게 쭉쭉 뻗은 칼날같은...

강직하고 굽힐 줄 모르는 성품을 잘 드러내고 있다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분의 훌륭하다는 평에 대하여는 글쎄요...

 

어머니는 숙대를 나오시고 적지않은 기간동안 교직에 몸담으셨었습니다.

좌골신경마비로 쓰러지시고 교단을 떠나셔서 몇년후 몸을 겨우 회복시키셨을 때는 다시 교직으로 돌아가실 수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마비 후유증은 그 이후에도 어머니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오른 손...

제가 국민학교 1학년 때 세들어 살던 작은 단칸방, 부엌의 끓는 물을 들다가 그 오른 손에 힘이 빠지는 바람에 화상을 심하게 입었습니다.

새끼 손가락은 완전히 구부러졌고 그 옆의 손가락도 약간 휘어졌습니다.

가끔

아니, 자주였을 것입니다.

그 구부러진 새끼손가락을 펴시려고 애쓰시는 모습을 뵙곤 하였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못된 자식인 저는 꼭 한 마디를 던지곤 했습니다.

그렇게 편다고 펴지겠어요? 포기하세요.

 

...

 

작년인가 누님과 대화 중에

어머니께서 메국의 큰 병원에 가셔서 심장 치료를 하시고 덤으로 그 새끼손가락을 펼 수 있는지 의사에게 문의를 했고 정밀하게 검사를 다 한 후에

의사의 손가락을 펼 수 없다는 답을 들으시고

누님 말로

정말 엄마답지 않게 ... 

눈물을 상당히 흘리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었습니다.

 

오늘 그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어머니의 그 연세에도 그 손가락때문에 우신 그 마음이 ... 느껴졌습니다. 

돌아갈 수 없는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회한...

 

...

 

죄스러운 마음이 밀물처럼 심장을 두둘기고

목구멍을 메꾸고

눈물을 밀어냅니다.

 

오늘따라 너무나 높고 맑고 푸르른 하늘입니다.

 

 

 

                                (10년전이니 2002년정도가 되겠군요. 그러니까 어머니 74세 때 쓰신 친필입니다.

                                  예전 편지글은 창고어느 구석에 갇혀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

 

 

  • 주방보조2012.04.27 13:01

    진실이라는 녀석은
    저런 편지에도 꿋꿋하게 ...몰래 만화만 그리고 자빠졌었다는...^^

    거기다가
    호주에서도...공부할 시간에 앵그리버드 점수 올리고 계시죠^^

    답글
  • 한재웅2012.04.27 20:56 신고

    그 연세에 고등교육을 받으셨다니 대단하십니다.

    답글
    • 주방보조2012.04.28 01:26

      어머니는 속된말로 초년운이 상당히 좋으셨습니다.
      결혼하면서부터 급전직하 ... 가정 건강 모두 발목을 잡았지요.
      지금껏 하나있는 아들조차 고집불통에 불효자인데...
      말년에 메국이 효자노릇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집주고 돈주고 치료해주고...

  • 김순옥2012.04.27 22:20 신고

    아침에 글을 접하고 눈시울이 뜨거웠어요.
    멀리 계신 어머님을 그리워하는 사모곡을 접하는 것처럼 가슴이 짠하더군요.
    문득 10년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도 났어요.
    할아버지께서 훈장을 하셨다고 하는데 아버지께서도 필체가 좋으셨거든요.
    결혼하고 언젠가 아버지께서 편지를 보내셨던 기억도 나네요.
    객지에 있는 자식들에게 편지를 쓰셨던 아버지도 생각나구요.

    어머님께서 너무 멀리 계시죠?
    가까이 계시는 친정엄마를 생각하는 저와는 참 많이 다르시리라 생각되네요.
    뵐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쯤? 생각하실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실거라는...

    아이들은 어떤 의미로든 저희들과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
    내리사랑이라는데 그것을 탓해서 뭣하겠어요.

    답글
    • 주방보조2012.04.28 01:47

      요즘은 나이탓인지 울컥울컥 하고 있나 봅니다.

      특히 어머니께는
      죄스럽고
      보고싶고

      아들들이 속을 썩히니...더 지난 일들이 생각이 나고 그런 것 같습니다.

      외할머니를 모시러 메국에 홀로 이민을 가실 때
      제게 그렇게 같이 가자하셨었는데...단칼에 거절해버렸던 것을 비롯해 이루 헤아리기 어려운 못된 짓들이 기억납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아들들을 통해서 저의 못된 불효를 꾸짖으신다 그런 생각도 듭니다. ㅜㅜ

  • malmiama2012.04.28 10:50 신고

    성품이 곧고 강인한 분 같습니다.
    내면은 부드럽고.

    답글
    • 주방보조2012.04.29 01:02

      바른 소리 잘 하시고, 남자 교장등과 싸움도 마다 않으셨다 하시더군요. 형이 공산당이라고 당신 반 아이를 퇴학시키려는 것을 막아서시다가 공산주의자로 몰리기도 하셨던 경력도 가진 분입니다.
      저는 유감스럽게도
      병드시고 얼굴에 가득 기미가 끼인 '별볼일 없는 못난'엄마...로부터 인식이 시작됩니다. 제겐 한없이 따뜻한 분이셨지만 ... 전 철없이 창피해 했답니다....쩝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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