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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만 가난해지는 ‘이상한 경제대국’(한겨레)...우리의 지향하는 미래

주방보조 2011. 10. 18. 15:52

국민들만 가난해지는 ‘이상한 경제대국’

등록 : 20111017 21:07 | 수정 : 20111017 22:26

 

국내총생산 증가한 스페인 젊은이 둘중 하나는 실업자
미국 빈부격차 정도, 가나·니카라과 수준으로 추락

» 전세계 82개국에서 ‘99%’의 동시 시위가 열린 15일(현지시각) 미국 알래스카주 베설의 툰드라 지대에선 1인시위가 벌어졌다. 다이앤 매키천 알래스카주립대 교수는 ‘나는 99%, 툰드라를 점령하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개 세마리와 함께 시위를 벌인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려놓았다. 다이앤 매키천 페이스북
# 지난 4일(현지시각) 스페인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의 한 강의실. 문학 수업 수강생 28명에게 영국 <비비시>(BBC) 방송의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내년에 졸업하면 곧바로 일자리를 얻을 거라고 자신하는 사람?” 손을 드는 학생은 1명도 없었다. 질문을 바꿨다. “어떤 직업이라도 괜찮으니, 어쨌든 일자리는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여기는 사람은?” 그제야 주저주저 몇 명이 손을 들었다. “그럼, 원하는 일자리를 찾으려면 이 나라를 떠나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은?” 대부분이 번쩍 손을 들었다.

# 지난 15일(현지시각) 미국의 뉴욕 리버티 플라자 공원(주코티 공원). 주말이면 이곳엔 학생, 실업자뿐 아니라 현재 직장을 갖고 있는 이들까지 나와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인다. 남편과 함께 나온 에리카 말로이(40)는 “집도, 차도, 직업도 있지만, 너무 불안하다”며 “월급은 몇 년째 그대로인데, 물가는 끊임없이 오르고, 언제 실업자가 될지도 알 수 없다. 너무 무섭다”고 말했다.

스페인과 미국은 이제 ‘가난해지는 선진국’의 대명사다.

물론 나라가 가난해지는 건 아니다. 스페인의 2010년 국내총생산(GDP)은 1조4778억달러로 호황기이던 2006년에 비해서도 약간 증가했고, 미국은 여전히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이다. 가난해지는 것은 ‘99%’로 상징되는 대다수 국민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스페인은 실업률 1위이며, 미국은 칠레·이스라엘·멕시코에 이어 빈곤율(한달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가구의 비율)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15일 전세계 동시시위의 시발점과 기폭제가 스페인 청년들의 텐트 시위와 미국의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였던 것은 당연한 귀결일지 모른다.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스페인이 2003~2006년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일자리 창출의 절반을 차지하며 호황을 누릴 당시엔, 이탈리아·캐나다 대신 주요 7개국(G7)에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도 심심찮게 나왔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는 ‘부동산 거품’에 직격탄이었다. 바닷가 주변엔 짓다 만 건물이 늘어섰고, 68만7000채가량의 새집은 여전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건설경기의 붕괴는 민간부문 및 공공분야 일자리 축소로 이어졌다. 이 결과 2007년 18%에 불과했던 16~25살 실업률은 지난달 46.2%(전체 실업률 21.2%)까지 치솟아 튀니지·이집트보다 높게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 초 그리스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 우려 속에 부채위기가 옮겨붙을까 우려하는 정부는 각종 복지혜택을 대폭 축소하고 공공부문의 정리해고에 나섰다. 가격표시가 없었던 스페인 레스토랑의 메뉴판에 전에 없이 가격표가 등장할 정도로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았고, 교역 상대국의 성장세도 둔화되며 안팎으로 출구가 꽉 막혔다. 이런 악순환 속에서 한때 ‘정치 무관심 세대’로 불렸던 젊은이들이 ‘분노한 사람들’(로스 인디그나도스·Los indignados)이란 이름으로 광장으로 나온 것이다.

미국에선 빈곤율 증가와 함께 중산층 붕괴 문제가 전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대공황 등 극심한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최대 피해자인 빈곤층이나 소외계층이 생존권 차원의 저항이나 투쟁을 벌이긴 했지만, 요즘 월가 시위처럼 중산층이 대거 나선 경우는 역사적으로 거의 없었다.





지난해 미국의 중간 가계소득은 4만9445달러로 1999년 이후 처음으로 5만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고용불안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미국의 상품 및 용역 생산은 19% 증가했고, 비금융부문 기업들의 수익도 85% 늘어났다. 그러나 민간부문의 일자리는 200만개가 줄어들면서 미국 성인들의 취업률은 58.2%로 1983년 이래 가장 낮다. 자동화, 비정규직 확대, 생산공장의 해외이전 등은 기업한테는 경비 절감을 통한 수익성 확대를 가져다줬지만, ‘고용 없는 성장’의 고착화를 낳았다.

그 결과, 미국은 상위 1%가 소득의 23%를 차지하는 기형적 사회가 됐다. 미국의 빈부격차 수준은 가나, 니카라과, 투르크메니스탄과 비슷한 수준이다. 제이컵 해커(예일대)와 폴 피어슨(버클리대) 교수는 공저 <승자독식의 정치학: 워싱턴이 어떻게 부자를 더 부유하게 만드는가?>에서 “경제성장의 보상이 ‘슈퍼 리치’(부자 중의 부자)로 점점 더 몰리면서 경제적 중산층의 지위는 점점 더 하락하고 있다”며 부유층 엘리트들이 주도한 수십년간의 탈규제, 노동운동 억압, 근로소득보다 금융·투자소득에 대한 가치 부여 등이 강화된 것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뉴욕/권태호 특파원, 이정애 기자 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