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희기자 gatsby@]
[불법 다단계업체, `세뇌` 강의·집중 감시로 대학생 착취...법망 교묘히 피해]
-SKY大 법대생도 다단계 유혹 빠져
-`세뇌` 강의·집중 감시로 대학생 착취
-불법 다단계업체, 법의 `사각지대`
"오토바이를 타다가 교통사고를 냈는데. 부모님 몰래 피해자와 합의할 보상금이 필요해서 돈을 빌리는 중인데 20만원만 꿔 줄 수 있겠니."
올 초 A씨(22·대구)는 중학교 동창 B씨(23)에게 이 같은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B씨는 이른바 `SKY` 법대 2학년에 재학 중인 엘리트였다. A씨는 과외 아르바이트로 번 돈 일부를 B씨에게 보냈다.
"신세졌으니 서울에 꼭 한번 들르라"는 말에 그의 하숙집으로 향한 A씨는 B씨에게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좋은 상품을 판매하고 돈을 버는 일을 하는데 추가로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다. 교통사고 보상금 이야기는 친구 사이의 신뢰도를 시험해보려고 했다"는 것.
중고교 시절 전교 1등을 도맡아하며 최고 명문 법대에 진학했던 B씨였기에 A씨는 어안이 벙벙했다. A씨는 3일 동안만이라는 다짐을 받은 뒤 B씨와 함께 서울 외곽 주택가로 향했다.
◇쉴 틈 없는 4시간 연속 `세뇌` 강의
작은 방 2개와 부엌이 붙어 있는 투룸 형태의 옥탑방에서 남녀 8명이 살고 있었다. 나이가 제일 많은 한 남자가 `방장`이었다. 전문대 출신인 그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고 했다.
대부분은 부산과 대구 등 지방 출신이라고 했다. 휴대폰은 `방장`이 모두 걷어 통제했다. 샤워를 할 때도 순서가 있었다. `방장`이 먼저고 여자, `그 밖의` 남자 순이었다.
다음날 오전 6시, A씨는 이들과 함께 강남 모처 한 빌딩으로 향했다. 30여평 규모의 `강의실`에는 20·30대 초반 남여 70~80명으로 가득했다.
20·30대 중반의 세련된 남여가 강사로 나섰다. 강연은 쉬는 시간 없이 4시간이 넘게 지속됐다. 이들은 "여러분들 힘든 상황 모두 이해한다. 이곳에서 노력하면 3년 안에 연봉 5000만원 이상을 받을 수 있다"거나 "다단계라는 말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우려고 날조된 말"이라고 했다.
오후 8시가 넘어 돌아온 옥탑방에서도 강연은 계속됐다. 오후 10시쯤 `방장`은 A씨를 불러 "강연이 어땠나.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이었을 거다"며 "겸손해야 된다"고 했다.
약속된 3일이 지나고 4일째 오전 6시, A씨는 `방장`에게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방장`은 "명문대 법대를 다니는 A가 추천하는 일이다. 믿음이 부족하다. 오늘은 새 식구들을 위한 강연이 있으니 꼭 들어야한다"고 붙들었다.
100평은 족히 될 것 같은 텅 빈 공간에 100여명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앉아있었다. 4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은 앞으로 나와 죽염 치약과 각종 건강식품의 효능·가격을 설명했다.
이를 본 일행은 박수를 치며 "저 물건은 꼭 사서 판매를 해야겠다"거나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대학생 취업·고수익 보장 `유혹`에 그만...
A씨는 "4일째 오전 강연을 마친 뒤 일행과 잠시 떨어진 틈을 타 홀로 곧장 서울역으로 도망쳤다"며 "친구의 전화가 계속 걸려왔지만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최근 불법 다단계 판매 회사를 설립, 판매사원으로 고용한 대학생을 협박·감시하며 강제로 합숙시킨 일당을 무더기로 적발했다. 거여·마천동 일대는 불법 다단계 판매업체에서 영업을 하는 대학생들이 밀집돼 있다. `거마 대학생`이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불법 다단계 업체들은 사회 경험이 부족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고수익 보장·취업 알선 등의 명목으로 유혹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세뇌`에 가까운 정신교육과 집중감시를 통해 회원의 이탈을 막는 수법으로 이윤을 착취, 일부 상위 판매원들은 수십억원의 부당 이득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대학생들이 이들의 `황당한` 유혹에 쉽게 빠져드는 것은 `88만원세대`·`우골탑(牛骨塔)`으로 상징되는 극심한 취업난과 높은 등록금 때문으로 풀이된다. A씨는 "대부분이 지방대 출신 휴학생이거나 갓 제대한 취업준비생"이라며 "사실상 거의 세뇌교육을 받다보면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고 말했다.
◇불법 다단계업체, 법의 `사각지대`
다단계는 상품 소비자가 하위 구조의 판매원이 돼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이다. 하위 판매원들의 수익 일부가 상위 판매원들에게 집중된다. 때문에 하위 판매원들은 회사에서 비싸게 매입한 물건에 이윤을 붙여 팔아야 수익을 남길 수 있다.
대부분의 불법 다단계업체들은 현행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방판법)의 허점을 악용, 방문판매 업체로 등록해 변종 영업을 한다. 합법적 업체로 등록할 경우 소비자피해보상 보험을 체결해야 하고 자본금 및 후원수당 규모 등 규제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정부는 전국적으로 72곳의 다단계업체와 5만8000여곳의 방문판매업체가 활동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찰은 단속으로 인한 `풍선효과`를 우려, 이달부터 2달 동안 전국적으로 특별단속을 실시한다.
[불법 다단계업체, `세뇌` 강의·집중 감시로 대학생 착취...법망 교묘히 피해]
-SKY大 법대생도 다단계 유혹 빠져
-`세뇌` 강의·집중 감시로 대학생 착취
-불법 다단계업체, 법의 `사각지대`
"오토바이를 타다가 교통사고를 냈는데. 부모님 몰래 피해자와 합의할 보상금이 필요해서 돈을 빌리는 중인데 20만원만 꿔 줄 수 있겠니."
올 초 A씨(22·대구)는 중학교 동창 B씨(23)에게 이 같은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B씨는 이른바 `SKY` 법대 2학년에 재학 중인 엘리트였다. A씨는 과외 아르바이트로 번 돈 일부를 B씨에게 보냈다.
"신세졌으니 서울에 꼭 한번 들르라"는 말에 그의 하숙집으로 향한 A씨는 B씨에게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좋은 상품을 판매하고 돈을 버는 일을 하는데 추가로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다. 교통사고 보상금 이야기는 친구 사이의 신뢰도를 시험해보려고 했다"는 것.
중고교 시절 전교 1등을 도맡아하며 최고 명문 법대에 진학했던 B씨였기에 A씨는 어안이 벙벙했다. A씨는 3일 동안만이라는 다짐을 받은 뒤 B씨와 함께 서울 외곽 주택가로 향했다.
◇쉴 틈 없는 4시간 연속 `세뇌` 강의
작은 방 2개와 부엌이 붙어 있는 투룸 형태의 옥탑방에서 남녀 8명이 살고 있었다. 나이가 제일 많은 한 남자가 `방장`이었다. 전문대 출신인 그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고 했다.
다음날 오전 6시, A씨는 이들과 함께 강남 모처 한 빌딩으로 향했다. 30여평 규모의 `강의실`에는 20·30대 초반 남여 70~80명으로 가득했다.
20·30대 중반의 세련된 남여가 강사로 나섰다. 강연은 쉬는 시간 없이 4시간이 넘게 지속됐다. 이들은 "여러분들 힘든 상황 모두 이해한다. 이곳에서 노력하면 3년 안에 연봉 5000만원 이상을 받을 수 있다"거나 "다단계라는 말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우려고 날조된 말"이라고 했다.
오후 8시가 넘어 돌아온 옥탑방에서도 강연은 계속됐다. 오후 10시쯤 `방장`은 A씨를 불러 "강연이 어땠나.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이었을 거다"며 "겸손해야 된다"고 했다.
약속된 3일이 지나고 4일째 오전 6시, A씨는 `방장`에게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방장`은 "명문대 법대를 다니는 A가 추천하는 일이다. 믿음이 부족하다. 오늘은 새 식구들을 위한 강연이 있으니 꼭 들어야한다"고 붙들었다.
100평은 족히 될 것 같은 텅 빈 공간에 100여명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앉아있었다. 4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은 앞으로 나와 죽염 치약과 각종 건강식품의 효능·가격을 설명했다.
이를 본 일행은 박수를 치며 "저 물건은 꼭 사서 판매를 해야겠다"거나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대학생 취업·고수익 보장 `유혹`에 그만...
A씨는 "4일째 오전 강연을 마친 뒤 일행과 잠시 떨어진 틈을 타 홀로 곧장 서울역으로 도망쳤다"며 "친구의 전화가 계속 걸려왔지만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최근 불법 다단계 판매 회사를 설립, 판매사원으로 고용한 대학생을 협박·감시하며 강제로 합숙시킨 일당을 무더기로 적발했다. 거여·마천동 일대는 불법 다단계 판매업체에서 영업을 하는 대학생들이 밀집돼 있다. `거마 대학생`이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불법 다단계 업체들은 사회 경험이 부족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고수익 보장·취업 알선 등의 명목으로 유혹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세뇌`에 가까운 정신교육과 집중감시를 통해 회원의 이탈을 막는 수법으로 이윤을 착취, 일부 상위 판매원들은 수십억원의 부당 이득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대학생들이 이들의 `황당한` 유혹에 쉽게 빠져드는 것은 `88만원세대`·`우골탑(牛骨塔)`으로 상징되는 극심한 취업난과 높은 등록금 때문으로 풀이된다. A씨는 "대부분이 지방대 출신 휴학생이거나 갓 제대한 취업준비생"이라며 "사실상 거의 세뇌교육을 받다보면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고 말했다.
◇불법 다단계업체, 법의 `사각지대`
다단계는 상품 소비자가 하위 구조의 판매원이 돼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이다. 하위 판매원들의 수익 일부가 상위 판매원들에게 집중된다. 때문에 하위 판매원들은 회사에서 비싸게 매입한 물건에 이윤을 붙여 팔아야 수익을 남길 수 있다.
대부분의 불법 다단계업체들은 현행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방판법)의 허점을 악용, 방문판매 업체로 등록해 변종 영업을 한다. 합법적 업체로 등록할 경우 소비자피해보상 보험을 체결해야 하고 자본금 및 후원수당 규모 등 규제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정부는 전국적으로 72곳의 다단계업체와 5만8000여곳의 방문판매업체가 활동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찰은 단속으로 인한 `풍선효과`를 우려, 이달부터 2달 동안 전국적으로 특별단속을 실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