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화요일
교신이와 둘이 동서울 터미널로 갔습니다.
어디를 가시려는 것이지요? 묻는 녀석의 질문을 무시하고
그냥 따라오기나 해, 한 마디를 지르고
택시를 타고 원경이와 하늘재에 갔던 것과 똑같이
물을 한병 준비하고 지팡이 삼아 우산 하나를 챙겨들고 동서울 버스터미널에서 월악산 가는 버스를 8시40분에 올라탔습니다.
피곤이 몰려 왔지만
평등...이것을 자녀교육의 모토로 삼는 저는 교신이에게도 평등하게 방학여행을 하게 해 주려고 무리를 하고 나선 것입니다.
수안보를 지나고
미륵리를 지나고, 거기서 교신이에게 하늘재가 바로 저기다라고 산과 산 사이 골짜기를 손가락으로 가리켜 주었지요.
그리고
아래로 송계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가
마침내 어느 한적한 길가 음식점이 있고 슈퍼가 있고 주유소가 있는 곳에 버스가 멈추어 섰습니다.
여기가 종점입니다. 기사양반이 말을 할 때 버스엔 우리 둘 뿐이었습니다.
11시 40분...
그 버스는 1시 10분에 서울로 간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잠간 산책할 요량으로 월악산과 반대쪽으로 길을 잡았습니다. 다리건너 맞은편 산이 야트막한 것이 한적하여 좋아보였고, 제가 좀 반골기질도 있는 편이고 하여 그런지도 모르겠고, 전 여하튼 아버지의 권력으로 별로 찬성하지 않는 아들을 이끌고 나아갔습니다.
잠자리들도, 나비들도, 온갖 곤충들도 참 많았습니다. 사람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맨 처음 우리가 만난 다리 이름이 재미있게도 구려1교였는데
아마 이 월악산 북쪽이 옛 고구려 땅이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 반대편엔
월악산이 제법 멋있게 ~악산답게 거친 바위 봉우리들을 뽐내었지요.
봐라, 저 산에 올라가면 이렇게 멋있는 광경은 볼 수 없단 말이지, 인생이란 말야...그래서 앞으로 전진만 해서는 안 되는 거야, 어떤 때는 잠시 뒤로 물러나서 ... 전체를 보는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어...운운...
우산을 휘둘러대며 벌레를 퇴치하느라 바쁜, 듣지도 않는 교신이에게 '경을 읽어주는 마음으로'^^ 떠들어 대었습니다.
올라가기 시작했을 때
오랜만의 햇볕에 말리려고 사람 인(人)자 모양으로 줄지어 세워놓은 참깻대들만 우리를 맞이하였고
올라가면 갈수록 사람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고 저 높은 곳 어디선가 풀베는 소리만 요란하였습니다.,
길은 더 올라갈 수 있다 하고 있으나
풀잎 덩굴들이 그만 올라가라 막아선 그곳에서
우리는 돌아 내려왔습니다.
숲 사이에 절벽이 멋지게 미소짓고 있는 지점쯤이었지요.
요정을 닮은 나비가 하도 부드럽게 날아 박수를 쳐 주었던
그리고
교신이가 엄청나게 신기해 하는 나무뿌리도 해골모양을 하고 누워 있었던 그쯤이었습니다.
....
12시30분 버스정류장으로 내려와 식당에 들렀습니다.
평등...을 위하여
원경이에게 사주었던 것과 똑같은 메뉴, 똑같은 가격의 식사를 주문했습니다. 산채 비빔밥 둘과 감자전하나...
그러나 이 음식점들이 평등하지 않았습니다. 가격은 같았는데 하늘재 입구보다 훨씬 양도 많고 맛도 더 좋았습니다.
배가 터지게 먹고^^
교신이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갈래 아니면 좀 더 둘러보고 3시10분차를 타고 갈래?
교신이왈, 지금 올라가면 너무 허전하죠...
그래서
우리는 드디어 2시간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서 월악산을 조금만 올라가자 하였습니다.
제 머리로 1시간쯤 올라가면 50분쯤걸려 내려올테니 시간이 딱 맞겠다 계산을 하였습니다.
음식점에서 길을 건너 학교 뒷길로 하여 등산로를 한참 찾아 겨우 길을 잡아 산을 올랐습니다. 우리가 오른 길은 원래 등산로가 아니었나 봅니다. 가파르게 오르다 중간쯤에서 소 울음소리를 듣고, 거기서 시원한 바람을 맞은 후엔 아주 좁고 텁텁한 산길이 우리를 맞았으니까요. 사람 없기는 맞은편이나 마찬가지였구요.
그러다가 풀들로 거의 길이 가려진 ... 혹 뱀이라도 나올까봐 우산대를 열심히 땅을 쳐대며 나아가던 중 사람들이 두런두런 모여 있는 곳을 발견했습니다.
제대로 된 등산로를 따라 올라오는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었습니다. 계곡물도 적당히 있고 월악산 영봉으로 오르는 길 산신제를 드리는 사당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어서
보세요^^
그런데 문제가 터졌습니다.
급히 많이 먹은데다가
가파른 길을 헉헉대고 오르느라 체했는지
교신이가 몸을 구부리고 복통을 호소했습니다.
더 이상의 등산은 포기하여야 했습니다. 애초에 영봉에 오를 것도 아니었고 하니 부담없이 내려가기로 하였습니다.
손가락을 따서 체기를 내리겠다 하여, 솔잎이니 뾰족한 나무막대기니 동원하였으나 실패하고
결국
화장실에서 전날 묵은 거시키를 배출함으로서 어느정도 해결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내려오며 돌아 보니...사람들이 송계 계곡물에 삼삼오오 짝을 지어 놀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버스정류장 바로 옆에 엄청나게 큰 야영장도 있고 말입니다.
겨우 남은 30여분동안
우리는 물에서 발을 담그고 돌을 던지고 자잘한 물고기라든가 개구리라든가를 발견하는 재미를 누렸습니다..
막내의 초등학교 마지막 여름방학
아비노릇을 조금이라도 아이들에게 골고루 평등하게^^ 해 주려고 참 어설픈 여행을 하였습니다.
교신이는 처음 반대편 산행은 불만으로 시작했고 , 월악산행은 고통이었지만, 마지막 잠간의 물놀이는 기쁨...으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마지막이 좋으면 다 좋은 것이라지요?
마지막 물놀이가 잠깐이었지만 기쁨이었으니 어설픈 여행도 기쁨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3시10분 차를 어김없이 타고
6시10분에 동서울 터미널에 내렸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집까지 한강길을 따라 걷는데, 석양의 지는 해가 우리를 환상적인 천상의 데코레이션으로 맞아주었습니다.
교신아
여기 이 한강물에
우리가 발 담구었던 송계 계곡의 물도 포함되어 있을 거야.
아부지 뻥 아니에요?
아니 이눔이 아버지실력을 뭘로보고...뻥일리가 있겠냐?
ㅎㅎ...그리고
혹 그놈의 물이 금강으로 흘러들어갈 수도 있겠는데....속으로 뜨끔하였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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