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교신이는
학교에 갔다 오면 자기 방에 들어가 콕 박혀 나오지 않습니다.
슬쩍 들여다 보면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책을 읽거나, 벽장안에 꾸부리고 잠을 자거나, 길게 뻗어 누워 있습니다.
표정이 어둡냐고요?
만약 지 아비처럼 우울증에 걸렸다든지, 혹 실연을 당했다던지, 또는 학교 성적이 형편없어 낙담했다든지 하다면
당연히 표정이 어둡겠지요.
그런데 녀석의 표정은 비교적 밝습니다. 싹싹하게 대답도 잘 하고 심부름도 잘합니다. 그리고 누나들이나 형하고도 까불거리며 이야기도 잘 하구요. 그러니 우울증도, 실연도, 성적비관도 아닌 것이지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아버지가 보기 싫은 것!
아들이란 부자유친이란 오륜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친하지 아버지와는 좀 맞지 않는 존재인가 봅니다.
저는 좀 특수하긴 했지만 아버지는 거의 신적 존재였고(아버지 자신이 스스로를 제2의 하나님이다라고 하시기도 하셨지만^^, 그래봐야 누나에겐 물같은 존재셨지요) 사이가 뻘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만
저의 아들들은 두 놈 다 어려서부터 제가 친구같은 아버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6학년이란 사춘기의 경계선에 이르면서 피차 잘 맞지 않는 양태를 보이고 대립각을 세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맏아들의 경우, 어느날 함께 자전거를 타고 살곶이 다리에 같이 가자하였을 때, "안녕히 가세요"하며 휙 돌아서서 자기의사를 분명히 하는 순간 제 가슴에 커다란 멍이 들어버렸던 기억이 있습니다만, 이 막내 녀석마저 이젠 그때가 온듯 합니다.
사실 이런 막내 아들의 태도에는 마눌의 죄가 크게 한몫 한다고 생각합니다.
막내를 보면서 고난을 이겨낼 힘을 얻었다는 그 이유만으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하여튼 이뻐서 뭐든 잘 해주려고하는 약점이 녀석에게 그대로 노출되어 버린 탓일 것입니다.
"아이가 필요하다고 조르지 않는 한 해 주지 마시오. 미리 알아서 다 해주면 아이들에겐 의뢰심만 깊어지고 무엇이든 귀한 줄을 모르게 되니까 말이오"
자고로 아내란 남편의 말을 잘 안 듣도록 창조된 존재 아니랄까봐...저의 이 고귀한 권고는 아이들 옷가게 앞에만 서면 한갖 하찮은 티끌이 되어 사라져 버려 왔습니다.
좋습니다. 물려받을 옷이 없어진 탓이니 그건 그렇다고 해도, 헤어스타일까지 이쁘게...미용실에 가서 잘 '다듬어'주는 악행^^을 저질러 왔습니다. 사내놈이 머리를 짧게 깍고 씩씩하게 뛰놀아야지, 이쁜 머리를 하고 땀만 질질 흘리며 돌아와 저녁마다 아침마다 머리 손질에 시간을 쏟게 하다니 말입니다.
헤어스타일 신경 쓰는 놈 치고 공부 잘하는 놈 한 놈도 본 적이 없다.
형도 스포츠로 깎았는데 뭐냐 넌?
우리집에 독일병정 하나가 있어, 아주 검은 독일군 핼맷을 쓰고 다니는군.
어제 밤에 샤워를 해 놓고 아침에 또 머리를 감아야 하다니, 쯧
머리카락 흩어질까봐 모자를 쓰는 거라며?
뭐든 남의 눈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은 행복할 수가 없는거야.
그렇습니다.
바햐흐로, 아비인 저와 독일병정이 된 막내 교신이 사이에 머리카락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강압적으로 제가 직접 머리를 깎아 주어도 되겠지만^^ 민주주의적인 칠스트레일리아에서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아서 저는 '빈정거림" 정도의 무기로 녀석을 공략하고 있는 중입니다.
물론 녀석은 '방콕'으로 응전하고 있고요. ㅎㅎㅎㅎ
...
아무래도
이번 전쟁은 막내 교신이의 승리로 끝날 것 같습니다.
누나들도 형도 그리고 마눌님까지...다 동원되어 눈을 찌르고 있는 녀석의 머리카락을 어찌 해 보려 하고 있지만 요지부동인 것을 보면 말입니다.
이제 전쟁은 시작되었고
막내는 형처럼 이 늙고 병든 아비를 계속해서 잘 무찌를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많이 패배할수록 우리집 막내도 점점 어른이 되어 가겠지요.^^
그러면서 이 칠스트레일리아의 다섯아이 키우기도...막을 내리게 될 것이구요.
...
녀석이 고집을 부리는 것 보니까, 이제 내 할 일도 다 끝난 것같아.
그래도 아직 초등학생이잖아요.
시골로 내려가고 싶어, 아직 갈 곳은 없지만...
여봇!
왜?
할 일이 없긴 뭐가 없어욧!
뭐가 있는데?
영어라도 열심히 가르치면 되잖아욧!
허걱!!!
-
-
우리집은 7남매였는데 애들 하나하나에 원필님처럼 신경쓰신것 같지 않은데요?^^
답글
사춘기를 이렇게 겪는군요?
우리 애들은 사춘기를 어떻게 보냈는지 생각이 안나네요.
귀여워요. 아빠도 아들도... -
제가 댓글을 너무 열심히 썼나 봐요.
답글
두번이나 날아갔어요. 백스페이를 누르는 바람에요.
아이들이 몸이 성장하는 만큼 마음도 커가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요.
이발을 놓고 저도 늘 씨름하는 부분입니다.
깔끔하고 반듯하기를 바라는 부모와는 달리 친구들의 말 한 마디가
더 영향력을 발휘하거든요.
한편 생각하면 그래도 그만하면 착한게지...라고 자위합니다.
물론 본인도 늘 그렇구요.
뭘보고 그러는지는 모르지만 자칭 모범생이고 그만하면 잘하는거고...
선생님께서도 그러시더군요.
착하고 성실하고...성적은 더 노력해야 한다구요.
충신이도 교신이도 다 멋진 아드님이세요.
어려서 아버지와 교감했던 많은 것들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당분간 장마비랑 친해지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아요.-
주방보조2011.06.23 20:36
그런 것 같아요.
친구들이 다 투구형 머리를하고 돌아다니거든요. 또래집단에서 떨어져 나오기 두려운 것이겠지요.
저는 네가 짧은 머리로 아이들을 리드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그럴 생각은 없어보여서...좀 실망^^이구요.
허긴 저처럼 마구잡이 패션으로 사는 것이 녀석들에겐 오히려 이해 못할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충신이하고 교신이에게 공부도 싫고, 자유도 싫다면
제발 185라도 넘어라 그러면 모델이라도 할 수 있잖겠느냐?고 약을 올려 대고 있지요.
교신이가 한빛이 반 정도만이라도 따라가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
-
독일병정...ㅋ
답글
아빠가 좋아하는 거 실천하기를 기뻐하는 유민이도 헤어스타일 만큼은 아니더군요.
"유민아~ 아빠는 커트한 머리를 좋아해~~너무 길지 않니? 머리 감고 말리는데도 시간 많이 걸리고~~"
"절대로~~절대로~~안돼욧!....이만큼 더 기를거예요~~요즘 짧은 머리 애들 없어요."
내 헤어스타일 뭐라하는 사람 없으니까~ 네 헤어스타일도 냅둬야 하지 싶군요.
효율~~단정함~~이런 거 안통합니다.ㅎㅎ -
부모가 아이 머리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기한이 초등학교 6학년이라면.. 그래도 요즘치곤 그리 빠른건 아니지 싶어요.
답글
새빛은 벌써부터 자기 머리 마음대로 하려고 하거든요. ㅡㅡ;;;;
자아가 강할수록 더 그런것 같습니다.
머리 모양은 자기표현의 수단 중 가장 강력한 것 중 하나니까요.
머리 모양 하나로 사람의 얼굴이나 분위기가 확 바뀌잖아요.
새론이는 내내 머리를 자라지 않고 제가 앞머리만 너무 길어서 살짝 잘랐다가
최근에 미용실 가서 짧게 잘랐더니 다 큰애 같다는 소리를 엄청 듣습니다.
제가 봐도 초등학생 정도의 외모??? 로 느껴지는데요.
이유가.. 아무래도 할아버지랑 거의 흡사한 머리모양 때문이리라 여겨지는데요.
다음엔 조금 길러서 아기답게 잘라 주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안그래도 조금 조숙한 외모인데 머리 모양때문에 너무 아기스럽지 않아 보여서요. ㅎㅎㅎㅎ
참, 말장로님 앞으로 보내주신 책 잘 건네 받았습니다.
매번 그렇게 바람처럼 휙~ 다녀가시고.. 받기만 하니까 감사하고도 미안한 마음.. ^^;;
요즘 좀 바쁘지만 틈을 내어 열심히 읽어 보겠습니다.-
주방보조2011.06.24 18:44
머리길이, 치마길이,,,이런 것이 어린이 인권과 관계있다는 어른들의 이상한 동의에
저는 좀 극렬하게 반대입니다.
제도를 가르쳐도 나중에 자유해 버리는데
자유부터 가르쳐서 어찌하려고 그러는지 말입니다.
그러니 학생이 선생을 패고 선생들은 문제학생들 겁나서 상대않고 외면하는 퍼센트가 97%에 이르는
이상스런 '방종'에 이르른 것이 아니냐...싶습니다.
새론이는 영양상태가 좋아서...나이들어 보이는 것이겠지요. 헤어스타일 때문이겠습니까?^^
음...새빛이는 그러고도 남겠지요?^^ ㅎㅎㅎ
-
'칠스트레일리아 > 다섯아이키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승엽과 기회, 그리고 막내에겐 잔소리 (0) | 2011.07.04 |
---|---|
달팽이 구조대^^ (0) | 2011.06.26 |
새벽기도... (0) | 2011.05.25 |
호주 워킹 홀리데이...를 준비하면서... (0) | 2011.05.20 |
사나이 두 번 울다...ㅜㅜ (0) | 2011.0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