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일 아침
새로 인조잔디가 깔린 자양중학교 운동장을 보고
적당히 비가 내렸으니 매우 좋을 것이라며 교신이를 부추겨 둘이서 축구를 하러 갔습니다.
첫번째 슛은 멋지게 골대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두번째 슛은 골대를 강하게 맞추고 뒤로 떠 넘어갔으며 ...발에 감기는 공의 임팩트의 순간은 정말 짜릿했습니다.
축구공을 차본지가 얼마만인가
한 10년은 되었을껄
자전거와 걷기에 빠져서 이 축구를 그토록 오랫동안 외면하였었다니...참 바보로군
똥볼킬러로 이름을 높이던 중학교시절 나보다 볼을 멀리 차는 녀석도 거의 없었어
볼을 한번 잡고 몰고가면 모세의 기적처럼 앞이 훤히 열리던, 골기퍼도 나의 슛을 두려워해 몸을 피하던 고등학교시절도 있었는데
하물며 대학원 졸업이 가깝던 때조차도 하프라인에서 슛을 쏘면 빨랫줄처럼 날아가 골키퍼 앞에서 한번 바운드하고 골대안으로 빨려들어갔었고...
충신이 클때 몇번 같이 놀고는 축구를 까마득히 멀리했었지
왜 그랬을까?????
자... 간다,
만면엔 미소를 띄우고
오른쪽 다리엔 온 힘을 모으고
세번째 슛을 정말 힘껏 날렸습니다.
악!!!!!!!!!!!!!!!!!!!!!!!!!!!!!!!!!!!!!!!!!!!!!!!!!!!!!!!!!!!!!!!!!!!!!!
무릎이 특 소리를 내면서 극심한 통증이 정신을 거의 잃을 지경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인조잔디의 푹신함에 순간 감사하며 온몸을 구부리며 무릎을 잡고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놀라서 달려온 교신이를 향해 눈은 웃으며 온얼굴로 울었습니다.
무릎 안쪽 인대가 탈이 난 것입니다. 한참을 누워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어났더니...막내 앞에서 체면을 구기지 않을만큼 참을 만했습니다. 오른쪽 다리는 슛을 할 수는 도저히 없는 상태였지만 왼쪽 다리가 있으니까.
우리 한골 넣기를 하자.
아무도 없는 비내리는 석탄일 아침 42년차이를 넘어선 세기의 대결이 자양중학교 인조잔디 축구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작년에 비록 후보였지만 학교대표로 광진구 우승, 3개구연합 준우승에 빛나는 김교신 선수와
왕년의 똥볼킬러 김원필 선수의 대결이 바햐흐로 벌어질 찰라였지요.
운동장엔 사람이란 하나도 없고 오직 어마어마한 수의 인조잔디들만이 비가 내려도 전혀 촉촉히 젖지않는 잎을 세운채 우리 둘의 대결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볼을 운동장 가운데 놓고 한번 퉁 내려쳐서 세번째 튀어오르면 시작되는 경기였습니다.
비록 황금의 오른쪽 다리는 고장이 나서 걸을 때마다 통증을 결코 가볍지 않게 전달해 주고 있지만
모든 경기는 끝나봐야 아는 것이고, 정신력 하면 55년을 공들인 내공이 엄청날 것이므로 까짓 13살 초딩6학년 녀석을 못이길 것이라고 전혀 생각지 않았습니다. 공을 빼앗기만 하면 왼발로 한번에 넣어버리리라...흐흐흐...
먼저 공을 빼앗은 녀석은 교신이였습니다. 다람쥐 같은 놈.
저를 빙돌아 달려나가는 순간...크하하하하하...인조잔디의 결에 따라 주르르 미끄러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오른쪽 다리의 통증도 잊은 채 크게 웃으며 공을 빼앗아 골대를 향해 절뚝거리며 짓쳐 나아가려 하였습니다.
아...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 순간 저는 유체이탈과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은 저 앞으로 공과 함께 나아가는데 몸은 교신이와 똑같은 모양으로 주욱 미끌어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교신이의 웃음소리는 내 마음과 몸 딱 그 중간에 들어 있었던 것같습니다.
그리고...
악!!!!!!!!!!!!!!!!!!!!!!!!!!!!!!!!!!!!!!!!!!!!!!!!!!!!!!!!!!!!!!!!!!!!!!!!!!!!!!!!!!!!!!!!!!!!!!!!!!!!!!!!!!!!!!!!!!!!!!!!!!!!!!!!!!!
적당히 조심하며 스트레칭으로 약간의 호전을 보이던 오른쪽 어깨가 미끄러지면서 본능적으로 몸을 받치다가 결국 상상초월의 통증을 제게 안겨 주었습니다.
온몸을 구부리고 어깨를 감싸 안은 채 또 한 번 인조잔디의 푹신함을 온몸으로 느껴야 했습니다. 내 혼과 몸 사이에 간들어지던 교신이의 웃음소리는 뚝 그치고 , 아빠 괜찮으세요?라는 소리가 제 귀를 파고 들었습니다. 그래, 괜찮아, 목소리는 그렇게 나갔지만 일그러진 얼굴과 꾹 감겨 액체를 토해내는 눈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지요. 한참을 누워서 통증을 진정시켜야 했습니다.
자 그래도 넌 아버지잖아.
힘을 내
사나이 두 번이나 울어, 체면을 구겼지만 승부는 내야해...
두번째 하프라인에 서서 공을 튀긴 뒤
교신이는 멍청히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저를 가볍게 돌아 제 골대에 한 골을 집어넣었습니다.
졌다...
...
절뚝거리며, 아니 오른쪽 다리를 질질 끌며...집으로 돌아가, 온갖 구박을 다 받아야 했습니다.
다 늙어서 무슨 짓이냐에서 부터...우리가 가지 말라고 할 때 가지 마셨어야죠...에 이르기까지
...
매일 1만5천보는 다 걸었다 ...
동네 2층 김학윤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를 받으며...마침 창가에 내려보이는 활기찬 아이들의 뜀박질 모습에 피식 웃음을 날려보냈습니다.
이거 자전거도 못 타는 거 아냐...후회하면서...ㅠㅠ
-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사실은 좀 웃었습니다. 다치신건 안스럽지만 글이 재밌어서요 ㅎㅎ)
답글
하지만 인내심과 끈기 하나는 알아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싸나이의 눈물을 쏙 빼는 통증에도 불구하고
끝내 승부를 판가름하는 경기를 마치셨으니까요.
결국 병원 물리치료 신세까지 지고 계시니.. 여자들에겐 정말 잔소리 꽤나 들으실 고집.. 맞죠? ^^ -
막내를 향한 자식 사랑은 높이 평가합니다만
답글
참 무모하시다는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축구에 목숨을 걸 정도로 빠진 동창녀석이 있는데
언젠가 무릎 수술을 했다는 말을 들었고,
일전에는 산소에 가서 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쳐서 한 달간 입원하는등 치료를 받았다더군요.
매 주 전국의 온갖 산이라는 산은 다 다니는 또 한 녀석도 있는데
무릎 수술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산을 오르는 것을 보면 이건 운동이 아니라 노동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 앞에 장사없다는 말 괜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왕년에...그러셨다는 것 인정할게요.
이제는 충신이랑 교신이를 경쟁하게 만드시고 관전을 하시는 게 좋으실듯 싶습니다.
끝까지 치료 잘 받으시구요. -
무지는 무리를 낳죠?
답글
근데..무리 과정은 재밌잖습니까~~^^
석탄일...실내 체육관에서 교회 체육대회가 있었습니다.
피구,줄다리기,농구에 온 몸이 뻐근.
하루 지나니까 더 뻐근...오늘에야 좀 괜찮군요. -
저는 석탄일에 같은 남선교회원들과 족구를 오랫만에 했는데 평소에 운동을 그렇게 했는데도 안 쓰던 근육을 사용해선지
답글
며칠간 뻐근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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