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목요일 나실이와 잠실 교보문고를 들려 롯데백화점 지하광장에서 잠시 앉이 쉬고있는데
거기 마침 어느 교회에서 성탄트리를 하나 세워놓은 것이 보였습니다.
우리 둘이 마음이 맞아 그런지 동시에 그 트리를 보고 '저건 없느니만 못하다' 하였습니다. 몇년째 똑같은 것을 가져다 놓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참 보기싫은 몰골이었기 때문입니다. 덕지덕지 붙여놓은 방울들하며 마치 먼지를 뒤집어 쓴 듯 보이는 생기없는 불빛들 하며...
게다가 잠실역 지하 그 번잡스러운 가게들 어디에서도 성탄절이 즐겁다는 기미가 하나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 흔한 성탄절 캐럴조차 들을 수 없었습니다.
매년 점점 심해지는 성탄절무관심이 올해는 극에 달한 듯합니다. 하필이면 노는 토요일이라서 억울하여 더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
우리집도 성탄절을 참 우울하게 맞았습니다.
원경이가 아주 아담하게 성탄절 트리를 혼자 잘 꾸미긴 하였지만
그래도 항상 앞장서서 트리도 장식하고 집안도 꾸미고 분위기도 잡던 진실이의 부재가 그렇찮아도 많이 아쉬웠는데
성탄전날인 24일부터...우울한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방학식을 한 충신이가 하루 종일 놀다가 저녁먹고 선물 챙겨 자기 교회로 가서 12시 다 되어서야 들어온 것입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성탄절...그것이 깨지기 시작한 것이지요.
혼자 즐거운 성탄절을 만끽한 우리 충신이의 받은 선물들을 내 놓으며 부리는 희희낙낙을 보는 것도 ...다른 식구들의 흥을 깨기엔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아내는 울지마톤즈를 감상하시고는 감동과 슬픔에 잠겨 계시며 집안일에 몰두하고
나실이는 편입을 위한 서류 작성에 골몰하고
그러다 보니 딸랑...원경이와 교신이 그리고 저 이 셋만 정신이 온전하였답니다.
그렇게 성탄전야를 썰렁하게 보내고 성탄절 아침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교회로 충신이는 충신이교회로 각자 성탄예배를 하러 갔습니다.
우리교회에선 예배후 케익을 먹고 간단한 요기를 하는 중인데, 자기교회 예배를 마친 충신이가 우리 교회로 불쑥 들어왔습니다.
교인들 모두 반가워했지요.
그런데 녀석의 표정이 떨떠름 한 것입니다. '갈 데도 없고 돈도 없고 놀 친구도 없어서 왔다'면서 말이지요.
그러면서 계속 '게임방 게임방' 노래를 하는 것입니다.
항상 잘 참는 저는^^ ... 꾹 참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문득 생각이 나서 어제 방학식하며 받았을 성적표를 보여달라고 하였습니다.
성적은 비밀입니다.^^만 그것을 보면서 분노를 참느라 좀 고생을 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때 녀석이 옆에 섰는 교신이에게 '우리 게임방가자'라고 한마디를 하였습니다.
일단 점잖게 나무랐습니다. 너희 둘만 게임방에 가면 어떻게 되겠느냐? 식구들이 모여서 함께 성탄절을 즐겁게 지낼 생각은 없느냐? 아버지가 너 게임방가는 것 싫어하는 줄 번연히 알면서 아버지 코 앞에서 들으라는 듯 게임방가자 하는 것은 무례한 짓이다. 다시 그러지 말아라.'
그리고는 방에 들어가 나머지 식구들과 흰소리들을 주고받으며 낄낄거리고 케이블 티비에서 재방송해주는 시크릿 가든을 보다가 교신이를 데리고 가족 파티를 위해 이마트에 가서 각종 과자들과 음료수들을 사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입이 불뚝 나온 충신이는 컴퓨터로 스타2게임을 구경하고 있었고, 참 밉다 생각하며...한참을 컴퓨터를 한 듯보여, 그만좀 하라고 하고 1시간쯤 걸려 다녀왔는데 녀석은 귀에 이어폰까지 꼽고 여전히 홀로 컴퓨터 게임에 몰두한 채 흔들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메국의 어머니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성탄절에 복 많이 받으라는...그러면서 이야기가 길어지자, 컴퓨터에서 밀려나 김치냉장고 앞에 서있던 우리 충신이 전화에 몰두하고 있는 저를 힐끗 보면서 교신이에게 한마디 하는 것입니다. "우리 게임방이나 가자"
아...제가 그래 게임방 다녀오도록 해라 하면서 만원짜리 한장이라도 꺼내주며 온화한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아버지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어머니께 무례하게도 전화를 급히 끊어 버리고 소리를 버럭 지르고 말았습니다. 할머니와 전화하면 자기한테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계산한 교활한 짓거리에 화가 치솟았던 것이지요.
그리고 나서 방에 들어가 원경이와 나실이와 저 셋이서 해리포터를 보고 나왔는데, 그때까지도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결국 그만 하지 말아야할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 개만도 못한 자식...그것도 성적이라고 받아오고...게임방 게임방 타령에 컴퓨터질이라! 언제까지 할 것이냐!" 두발당수!
그 순간...제 발길질을 피하면서 녀석은 저를 아래로 내리 깔아 보았습니다. 그 눈빛이 참 고약했습니다. 나중에 녀석은 자기가 키가 커서 그냥 내려다 보았을 뿐이지 아버지를 화나게 할 마음은 없었다는 변명을 늘어놓았지만...이미 저는 이성을 어느정도 접어두었습니다. 따지자면 전날부터 이틀동안 내내 녀석이 제 잘 포장되어 숨겨진 혈기의 맥들을 최고의 안티아버지답게 꼭꼭 눌러대었기 때문입니다.
아파서 거의 쓰지도 못하는 오른손에 막대기를 들고 녀석이 피하여 도망 간 넘버1의 영역^^으로 돌진하였습니다.
마눌은 저의 분기탱천한 모습에 맏아들을 보호한다고 제 오른팔을 막으며 툭 건드렸고...제 오른팔은 때맞추어 번갯불처럼 제 온 몸의 힘을 빼앗을 정도의 통증으로 저를 강타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이성을 잠시 접어두었고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아팠다고 해도 감히 넘버1에게 시비를 걸수는 없었고...
떨어진 막대기를 왼손으로 다시 잡고 녀석의 머리통을 한대 툭 건드렸습니다.
툭...이 아니었답니다. 퍽...이었답니다. 그러고보니...퍽까지는 아니어도 툭보다는 조금 강한 딱 정도가 맞지 싶습니다.
어쨌든
모성애가 언제 지는 것 보셨습니까?
아내는 그 커다란 충신이의 머리통을 끌어 안고 부벼대며 제게 초절정의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왜 머릴 때리느냐? 당신은 화난다고 망치로 전자사전도 박살을 내더니, 아이 머리까지 이렇게 심하게 때리느냐, 정신이 잘못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그리고는 제게 마지막 삼지창을 콱 꽂아버리셨습니다. 당신을 보기도 싫다!!!
저도 뭐 약간의 저항은 했지요. 잠시 노려보고 + 충신이는 당신이 책임져라 + 아이고 팔이야^^ 정도...ㅎㅎ
그러나 결국
졸지에 저는 천하에 둘도 없는 죄인이 되어 꼬리를 내리고, 접어두었던 이성의 그 무거운 날개를 펄럭 다시 펴고, 파티를 위해 준비했던 닭고기와 과자들과 음료수들을 다 냉장고에 쳐 박아버리고 동정하는 듯한 딸들의 조심스런 '아빠 팔 괜찮아요'라는 소리를 위안삼아 들으며 추리하게 퇴각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glooooooooooooooooomy christmas...ㅜㅜ
...
그리고 주일날 오후까지...우리집의 분위기는 정말 말도 아니었습니다.
주일 저녁에 나실이가 엄마를 잘 설득하며 위로해 주고, 충신이도 제게 변명같지 않은 변명을 해대고, 넘버1의 '다시 당신을 보고싶어졌다'는 자비어린 용서로 온 가족이 다시 화목하게 되어 닭다리를 뜯고 과자를 먹고 음료수를 마셨습니다만^^
이미 우리들의 성탄절은 최악의 성탄절이 되고 만 후였습니다.
...
월요일 ...
울지마톤즈에 대한 짧은 소감을 쓰면서...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고 혼자 한참을 웃었습니다.
아...그래...충신이가 아프리카사람을 많이 닮았지...그게 마눌님의 마음에 오버랩이 된거야. 불쌍한 아프리카인, 불쌍한 충신이...그렇게...
-
웃으면 안되는데.. 슬며시 웃고 있어요.
답글
맨 마지막 글을 보고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충신이가 아프리카 사람을 많이 닮아서.. 그게 오버랩이 되었다는 불쌍한 아프리카인 충신이에서...
글을 읽는 내내 슬프다가 막판에.. 웃어버렸어요. ^^;;;;;
저도 좀 우울한 성탄전야를 보냈는데요...
아이들이 겨울들어서면서 골골하네요.. 11월부터는 수시로 병원가고 약먹이고 겨울 내내 약먹이다 일 다 볼것 같은 느낌입니다.
성탄전야에도 교회에 행사도 있고 자정에 성탄예배를 드린다는데
새론이가 중이염이 와서 보채는통에 하루종일 안고 업고 있다보니 결국 포기하고 말았답니다.
교회에 가서도 계속해서 보채고 하면 다른 성도들에게도 폐가 될 것 같고.. 아이도 힘들 것 같고 해서요.
남편도 일이 많아 새벽에나 들어 와서 혼자 아픈 애들 돌보려니 좀 힘들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하고.. 그랬답니다.
내년엔 모두 건강하고.. 좀 즐거운 성탄절을 보낼 수 있을까.. 싶네요. ^^ 우리 모두에게 말이죠..
아이들 키우시면서 힘든일 많으시죠?
힘내세요! 화이팅!
앞으로 제가 겪게 될 일이라 생각되니.. 남일 같지 않고 살짝 겁나기도 합니다.
새빛도.. 새론이도 머리 굵어지고 사춘기 되고 하면..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고 엇나가기도 하고.. 그럴 날이 올테니까요.
벌써부터 그런 모습이 보일때가 있으니.. 휴.. ㅡㅡ;;;
참.. 울지마톤즈.. 저도 보고 싶었는데... 아침마당에 그 신부님에 가족들이 나와 얘기하는 모습 보면서... 저도 좀 울었거든요. 요즘은 참 왜이렇게 눈물이 많은지.. 티비보다 툭하면 울어서 새빛이가 절 놀린답니다.
엄마 또 울어?
^^;;; -
구루미가 아니라 글루미가 맞으셨군요...^^*
답글
최악의 성탄절이라 표현하셨지만~
... 에비~ 아닌데요?
주일 저녁의 빛나는 화목을 이끌어낸 최선의 성탄절이잖아요?
무엇보다 "다시 당신이 보고싶어졌다"는 넘버1의 말씀!!!
무엇을 더 바라시겠습니까? ^^*
그나저나...
여적 충신군 편들어 왔는데,
톤즈사람들 바라보듯 측은지심에서가 아니라
충신을 신뢰하는 내 진정이었는데~
이번 사건 만큼은 쪼금 힘드네요.
제가 무지 싫어하고 염려하는 하나가...
컴퓨터게임에 지나친 열정을 보이는 거거든요~
죄송하지만 충신군,
이런 상황, 사건에서 이렇게 보여준 태도라면
저한테도 좀 맞았을 거 같습니다!!!
말로 해서 될 것이 있고 안 되는 것이 있는데...
안 된다 싶으면 퍽이고 딱이고 간에 일단 날리고 봐야죠.
어이쿠~
제 댓글... 넘버1께서 보시면 안되는데!!!
사실 내 자식 나는 때려도 남이 건들면 열받는 거라는데
넘버1까지 상정되기 전에 넘버3 선에서 저 작살나는 거 아닐까 모르겠습니다.
여튼 오늘은 저도 충신군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네요.^^*
"충신아! 너를 향한 내 폭력(?)은 믿음이고 기대다!"-
주방보조2010.12.29 09:43
충신이란 놈이 어제 페이스북에 Fortune Cookie를 열어본 덕에 제게 보내지 메세지는
"Stop searching forever. Happiness is just next to you."였습니다.
경우에 맞는 말인것 같지 않습니까?...ㅎㅎ
...
충신에게 한마디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들이 아니라...어떤 때는 원수입니다. ㅋ...
이놈 덕분에 오랫동안 우리 가정의 금과옥조였던...부부단합공...이 깨져버려서 속이 상합니다만
애비 화나게 하는 데 귀신같은 재주를 가진 놈인 것은 인정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 별난 재주를 어디 써 먹을데는 없는지...휴
-
-
뭔 말을 하기가 ...
답글
에효~
제 가슴을 칩니다.
사람이 다 거기서 거깁니다. 그냥 숨쉬고, 먹고, 싸고, 사는 것이지요.
아직도 기대가 많으셔서... ^^ -
-
부모가 자식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이겠지요.
답글
기대에 부응이 일치하기란 쉽지 않을 거예요.
충신이의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묘사하시니까 그렇지 어느 가정이나 거기서거기가 아닐까 싶어요.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요.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조금만 더 한다면...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결국 한빛이는 방학2개월 과외를 결정했답니다. 열심히 하는 것도, 그렇다고 아주 밀리는 것도 아니고...
삼위일체로 결정된 일이니 최선을 다해주길 바랄뿐이지요.
새삼스럽게 건강이 최고라는 생각을 합니다.
무엇보다도 충신이가 건강하고 또래에 비해 의식이 강하다는 게 나무랄 데 없는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의 화가 큰 효과를 거둘 수는 없다는 건 아시죠? ㅎㅎㅎ-
주방보조2010.12.31 00:02
충신이는 천재입니다. 제가 화날 일만 골라하는 천재^^
공부를 안 해서 못해도...조금만 미안해 하기만 한다면 전 오히려 위로와 격려를 쏟아부을지 모르는데
참 뻔뻔하거든요.
그래서 자주 녀석에게 그럽니다. 넌 나와 반대이니 출세도 하고 돈을 많이 벌겠다...^^
한빛이는 스스로도 이번 겨울방학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대비하고자 하는 것이겠지요. 학원보다는 과외가 훨씬 효과적일 것입니다. 과외하시는 분이 길잡이역할을 잘해주기만 한다면...두달이면 충분히 도움이 되겠지요.
한얼이는 1월부터 출근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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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힘든 아들이었다...^^
답글
너도 힘든 아들이었지만 그래도 귀하고 사랑스러운 내 아들이었다!! 이렇게 말씀 하시고 싶어하셨겠지요.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 이런 말도 생각납니다.
요즘 7살짜리 우리 유찬이가 밥상머리에서 밥을 열심히 먹지 않고 늘보노릇을 하는것을 보면
꼭 지 아빠 그나이때 그대로 입니다.
날마다 보지 않고 무슨 날에만 밥상을 같이하는 할미 할배가 속터져하는데 지 애비는 오죽 하겠어요?
그래도 우리 앞이어선지, 어릴때 아빠한테 혼 많이 나던 기억 때문인지
정말 많이 참고 상냥한 ? 목소리로 지 아들을 구슬리는걸 보면
좋은 아빠되려고 애쓴다! ....속으로 생각하며 미소를 짓습니다.
애 둘 키우면서도 날마다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는데 독수리 5형제의 아빠이시니 오죽 하겠어요?
충분히 공감합니다.
그래도 넘버1께서 그 모든것을 잘 덮어가시니 다행입니다.
세월이 지나면 다 그리운 추억으로 기억될겁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에 같이 밥먹으려다 교회에서 떡국을 끓여주는것 먹고 각자 헤어져서
오는길에 하필 예수님과생일이 같은 진혁이 생일선물 사주고
통닭 한마리 사가지고 와서 둘이서 메리 크리스마스했습니다.-
주방보조2011.01.02 21:44
새해 인사로 전화하는 중에 어머니께서 또 손자를 두둔하시더군요.^^ 충신이 왕팬이시거든요. 자식이 부모 닮지 누굴 닮느냐고...ㅎㅎ
아이 다섯이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데
제가 항상 좀 과욕을 부리는 탓에 ...아이들 특히 좀 특이하게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진 충신이를 힘들게 한 것도 많습니다. 공평이란 잣대가 과했다...그런 생각을 합니다.
둘이서 메리 크리스마스...10년쯤 뒤엔 우리도 가능할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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