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다섯아이키우기

충신이가 달라졌어요^^

주방보조 2010. 12. 6. 04:16

충신이는 요즘 고2 2학기 학기말 고사를 치고 있습니다.

시험시작하기 며칠전 시험시간표를 물어보았습니다.

모른다더군요.

시험범위도 역시 아는 것이 없구요.

우리 충신이가 그렇게 대범하답니다. 시험같은 것은 어찌되든 아무 상관없이 살아가는 정말 대담무쌍한 고2지요.

 

그러나 저는 충신이와는 전혀 반대인 속좁고 초조하고 안달복달하는, 이제 곧 반올림하면 60이 되는 참 못나고 갑갑한 아비입니다.

공부해야할 아들은 목마르지 않고 오히려 아비는 목이 마른 이 현상은 도무지 어찌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파는 것이잖습니까?

시험 시작하기 이틀전에 좀 일찍 학교에서 돌아온 충신에게 제가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충신아~

예?

수학시험은 언제냐?

아직 잘 모르겠는데요

한번 확인해 봐라, 너희학교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되잖아?

예...알았어요...수요일인데요?

시험 첫날이란 말이지?

공부는 좀 했니?

뭐 그냥 그렇죠 뭐

아버지하고 수학 공부라도 좀 해 볼테냐?

그러죠 뭐

 

그냥 툭 던진 낚시인데, 이렇게 쉽게 걸려 들다니...저는 깜짝 속으로 놀랐습니다.

중학생이 된 이후부터는 이런 제안에 대하여  

1.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을 하지 않거나

2.힘들게 입으론 예라고 하며 바디랭귀지로는 NO!!!!를 부르짖거나

3.못들은 척 하거나...였는데

이번처럼 순순히 그것도 시원스럽게 '그러죠 뭐'라고 대답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쇠뿔은 단김에...

식탁을 치우고 둘이 나란히 앉았습니다. 실로 몇년만인지... 

  

요즘은 고2수학이 두 부분으로 나뉘어서 수학1이 있고 미적분과 통계가 있더군요.

일단 수학1 교과서를 가져오게 하여 녀석의 실력을 살펴보았습니다.

등차수열의 일반항, 합, 등비수열의 일반항, 합,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2~3일 공부해도 시험문제를 하나라도 풀 것이란 기대는 제가 먼저 접었습니다. 고2말인데  이렇게 순백의 실력일 수가^^

차근차근 교과서의 문제들을 해결해 갔습니다. 등차수열부터 무한급수까지...

놀랍게도 충신이는 하루 너댓시간이나 저의 설명을 듣고 문제를 풀고 틀리면 또 풀고, 일단 교과서의 문제들은 모두 섭렵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시험첫날 수학1을 보았고...문제 두개를 알고 썼다고, 그러나 나머지는 다 틀린 것같아서 시험지를 구겨 쓰레기 통에 넣었다고 하였습니다.

다음날은 영어

본문을 외우라는 제 말에, 중간고사 때 외우기 괄호문제가 지나쳐서 선생님이 그런 문제 안 낸다고 하셨으니 이번엔 외워봤자 소용없다며 약간 반항을 했지만, 그래도 노력하는 척은 하였습니다.  일단 일찍 들어와서 자기전까지 내내 영어책을 들고 있었으니까요.

 

오늘 월요일은 미분과 적분 시험입니다.

토요일에 4시까지 축구를 하고 돌아왔다는 변명을 한 것 말고는 토요일 오후 내내 저와 함께 부정적분과 정적분을 공부했습니다. 정말, 생기초인 미분을 하는 방식조차 모르는 녀석에게 일단 미분을 통하여 3차함수 그래프 그리는 법을 숙달시키고 적분으로 들어가 시험범위까지 교과서 문제들을 모두 풀어 낼 수 있게 만들고 정석의 문제도 몇개 주물러 보게 하였습니다. 물론 초보적인 문제들이었구요. 그렇게 하였지만 시험에 대하여는 조금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충신이에게도 말해 주었지요. 네 실력이라는 것은 지금까지는 왜 틀리는지도 모르고 틀린 것이라면 이번엔 그래도 왜 틀리는 지는 알고 틀리는 것이 될 정도일거라고....그러니 틀리는 것은 똑같을 것이라고... 녀석도 수긍을 하였구요. 다만 수학이란 것이 그렇게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니란 것을 느꼈다고 하더군요. 대박이지요? 이 정도면...^^

 

...

 

어제 저녁에 새 집에서 나실이와 원경이에게 이 충신이의 신비한 현상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충신이가 변한 것같다고...진지하게 공부를 하고 있다고...나처럼 고2말에 공부 시작해서 고3에 대박^^나는 거 아니냐고...ㅎㅎ

 

나실이가 말했습니다.

 

"아빠...혹시 그거 충신이 녀석 연막아닐까요?

뭔가 큰 사고를 쳐 놓고, 공부하는 척 하여...들키고 나서도 안전보장을 확보하려는..."

 

원경이가 그 말을 뒤이어 말했습니다.

 

"아니면 오빠가 공부 열심히 하는 척 하고 나서

엄청나게 놀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나니...

제 가슴도 제게 말했습니다.

"정말....저 녀석 새로 옮겨 간 교회에서 여학생이라도 사귄 것 아닐까?

그녀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 중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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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기간 내내 밤 12시 넘어까지 놀다 들어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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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녀석이 이번 고2 2학기말 시험에서...우연찮게 조금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사고를 쳔 것 같지는 않고, 여학생을 새로 사귄 것 같지도 않습니다. 엄청나게 놀 궁리는 잘 모르겠지만...^^

 

...

 

흠...

하나님께서 같은 아버지로서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제 기도를 들어주셔서

녀석의 전두엽을 획기적으로 잡아 늘여 주신 것이 아닐까요?^^ㅎㅎㅎ

 

 

 

 

  • malmiama2010.12.06 11:21 신고

    같은 아버지...감동입니다.^^
    고딩 수학을 봐줄 수 있는 아버지..부럽군요.

    믿음대로 됨을 믿는다면 의심하면 안된단다~~나실아,원경아~~

    답글
    • 주방보조2010.12.06 18:44

      오전에 시험이 끝낫을텐데 지금 막 들어왔습니다. 놀다온 기색이 역력하여 인상을 썼더니..."내일은 체육하고 일본어예요. 허접한!" ..헐~
      아직도 갈 길이 멀었지요?^^

  • 한재웅2010.12.06 14:06 신고

    대단하세요.

    답글
    • 주방보조2010.12.06 18:49

      녀석이 문제를 푸는 동안 틈틈이 옆에서 돋보기를 코에 걸고 성경을 읽었답니다. 그러는 사이 마태복음을 다 읽었습니다.^^

  • 리닙니다2010.12.06 23:53 신고

    하늘 아버지께서 제게 주방보조님을 아버지로 주지 않으신 것에 감사~
    꾸뻑...(_._)*
    저로선 겁나게 무서운 아버지십니다.
    아마도 주방보조님께서도 제가 님의 딸이 아닌 것에 분명코 감사하실 것이라지요!
    수학 못하는 거 만큼은 제가 충신에게 지지 않습니다.

    저는 충신군 믿습니다.
    아마도 그 아버지께서 느끼고 계신 그 아들에 대한 좋은 느낌!
    맞을 겁니다.^^*

    답글
    • 주방보조2010.12.07 01:42

      고맙습니다. 충신에 대하여 좋은 신뢰를 보여주셔서...

      우리집 딸들도 수학을 못한답니다.^^ 나실이는 특히...그래도 녀석이 제일 믿음직스럽지요. 저...무서운 아버지 아닙니다.ㅎㅎ

  • 김순옥2010.12.07 13:20 신고

    그 변화가 무섭게 발전할 징후라고 저는 생각하고 싶어요.
    정말 필요성을 깨닫게 되는 때가 언제냐의 싸움일지도 모르니까요.
    물론 좀더 일찍...이었더라면 좋겠지만 어설프게 더 오래가는 것보다는
    깨달음 뒤에 가속도가 붙는다면 훨씬 더 가치있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충신이가 멋지게 보인다고 했잖아요.
    기말고사가 아닌 다음 중간고사 내지는 3월 모의고사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답글
    • 주방보조2010.12.07 18:17

      오늘 시험이 끝났습니다. 종일 컴퓨터로 게임구경을 하고 앉았습니다.
      내일 수학여행을 떠난다니 하고 잔소리를 하지 않다가...결국 한마디 하고 말았습니다.

      원상복귀냐?
      아니요...
      그럼?
      열심히...공부해야죠...

      정말 딱 초딩이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