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금요일 늦게 제주도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충신이는
볼거리는 많았지만 피곤하고 재미없었다고, 먹거리나 기념품 값이 너무 비싸 황당했다고 열심히 주절거리더니
오늘은 저와 원경이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우리와의 동행을 거절하고 자기 교회 음악회를 핑계로 아침부터 일찌감치 사라졌습니다.
대신 막 학기말 시험이 끝난 나실이가 하루를 놀겠다며 우리 일행이 되어주었습니다.
오후 2시경 출발을 했는데 예상보다 바람이 찼습니다.
2호선 전철에서 마침 다용도 목티를 파는 분이 계셔서 3천원에 하나를 샀습니다. 모자도 되고 귀코입까지 방한도 되는^^, 그래서 오늘같이 준비없이 나온 날 아주 유용할 듯하였습니다.
나실이는 무척 즐거워하며 계속 종알거렸는데
원경이는 표정이 조금은 굳어 있어 왠지 그리 즐겁거나 흥미있어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의무적으로 약속을 지키려는 듯한 태도로 보였지요.
신촌역에 내려서 마지막으로 가봤던 4,5년전과, 아니 제가 학교 다니던 30여년전과도 별로 달라진 것없는 그 길을 걸어 연세대로 들어갔습니다. 기껏 바뀐 것이 화장품 광고하는 도우미들이 많아진 것과 기차길아래로 굴다리가 생긴 것 정도?
변함없이 볼품없는 입구를 지나 백양로를 따라 올라가면서
왼쪽은 공대건물 오른쪽은 의대건물, 저건 도서관 이건 학생회관...하며 하나씩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낡아빠진 그래서 새로지은 건물들과 이제는 많이 부조화를 이루는 독수리 상 앞에서 원경이 기념사진을 한장 찍어 주고(나실이 핸드폰으로)
다시 올라가며 저건 체육관 저기 저건 대강당, 거기선 가끔 체플이 끝나고나면 윗층 동아리사무실 유리창이 깨지며 '유신철폐, 독재타도' 벌건 글자의 플랭카드가 아래로 죽 내려오곤했었고, 이건 예전엔 상대건물이었는데 법대건물이 되었고 원래 처음 도서관이었던 용재관, 그리고 왼쪽이 신학대학 그리고 언덕으로 올라가면 신입생들이 공부하던 종합관...
원경이는 여전히 들은둥 마는둥...흥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재미가 반감되었지요.
그리고 언더우드 동상이 있는 세개의 돌건물 앞에 다다르자
'여긴 좋네요'...우리 원경씨가 한마디 긍정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ㅎㅎ
역사의 향기가 느껴졌던 모양입니다. 그냥 각진 무수한 건물들 가운데...자기만의 멋을 그대로 간직한 고색창연함의 가치를 말입니다.
그래 이 건물이 연세대 최초로 세워진 것이고 저게 두번째 그리고 맞은 편에 보이는 가운데 건물이 세번째로 세워졌다고 알고 있다. 아버지는 저 맞은 편 건물 지하실에서 입학시험을 치렀었고...
언더우드 상 앞에서 원경이와 저 둘이 사진 한장을 찍었습니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청송대를 거쳐 노천강당에 이르렀을 때
'여기도 좋네요'...두번째 감탄사를 내 놓으셨습니다.
돌좌석 하나마다 기증자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이런 날을 대비하여 나도 하나쯤 기증할 것을 하고 후회하였습니다. 제 이름을 발견하면 우리 우울증에 좀 빠져 있는 원경이가 엄청나게 즐거워 했을텐데 하고 말이지요.
아침을 늦게 먹어 점심을 안 먹이고 데려 나왔더니 배가 고프다고 ...
공사중이라 학생회관 식당은 문을 닫았고 ...우리는 바삐 학교를 벗어나 식당을 찾아 나섰습니다.
나실이는 아빠는 잘 아는 식당이 없느냐고 핀잔하듯이 묻고
원경이는 보이는 식당간판마다 들어가자고 하고^^
이대로 가는 길목에서 여러 식당을 두고 우리는 가위바위보를 하였습니다.
저는 갈비탕, 원경이는 삼계탕, 나실이는 안동닭찜...원경이가 이겼고 우리는 삼계탕을 먹으러 가다가 뜻을 돌이켜 안동찜닭을 먹으러 갔습니다. 결국 뜻을 돌이키는 것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말았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5시 조금 넘어 식당을 나섰는데 얼마나 바람이 찬지 이대를 구경하는 것은 포기하고 다만 입구에서 바라보이는 건물들만 보고 돌아서서 전철을 타고 집으로 왔습니다.
...
나실이말로는 원경이가 우울해 한 것은 저때문이라더군요.
아빠는 가기 싫은데 억지로 약속을 지키려고 가시는 것같다고...그래서 미안하고 재미없다고...
요즘 몸이 힘들긴 합니다. 오른쪽 어깨는 정형외과에 다니며 매일 찜질을 해도 별로 나아지지 않고, 약간의 두통도 동반되고 있고, 오른쪽 눈도 좀 아파서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나고 말이지요.
게다가 수학여행을 다녀온 충신이가 완전히 예전의 게으른 모드로 돌입한 꼴이 눈에 무척 시었구요.
제 표정이 영 그랬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원경이에게 참 미안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대앞을 지나 지하철을 타러 올라가는 길에 원경이가 제게 밝게 말했습니다.
'저는요, 연대보다는 이대가 더 좋아요, 이대에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ㅎㅎ
겨우 이대 정도되는 대학이 원경이를 알아나 볼 수 있을까요?...고슴도치 아빠에게 뇌가 언뜻 전해준 망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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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무런 암호도 보내지 않으시고 다녀가셨네요.
답글
하긴 어제 저는 부천역에 2시 결혼식이 있어서 다녀왔습니다.
두루두루 2차로 뭉친다는 것을 거절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는 길로 드러누웠습니다.
금요일 밤부터 이상 신호가 오더니 심한 감기가 저를 가만두지 않네요.
내일부터 기말고사가 시작되는 한빛이의 거동도 썩 마땅치 않은데 제 말이 이제 씨알도 먹히질 않구요.
날씨가 추워서 나들이 하기에는 좀 그랬을 것 같아요.
이대앞 음식점 추천을 해달라고 하셨는데 뜨렷하게 추천할 만한 곳이 없었거든요.
더러는 저희 아파트로 올라오는 길 오른쪽 2층 '가미'라는 분식집이 오래도 되었고 괜찮다고 하는데 저는 별로거든요.
예전에는 '그린하우스'라는 빵집도 많이들 그리워하던데 지금은 파리바케트로 바뀌었구요.
한참 안동찜닭이 인기있을 때 이대 앞은 몇 집 건너 생기기도 했답니다.
오히려 이대 지하건물로 들어갔더라면 추운 날씨도 극복하고 겉에서도 볼 수 있는 도서관 내부도 좋았을텐데요.
새로운 도서관이 유리로 오픈되었는데 스탠드가 꽤 멋지더군요. 여대 느낌이 물씬 나구요.
원경이의 지금 정서로는 여대에 매력을 느낄 것 같은데
아마 고등학생이 되면 남녀공학을 더 선호하게 될지도 모르지요.
오래된 건물을 제외하고는 연대도 꽤 삭막해 보여요.-
주방보조2010.12.13 06:50
한빛이네는 제대로 기말고사를 치루는군요. 원경이는 중3이라고 일찍 끝내고 요즘은 박물관이니 뮤지컬이니 다니고, 충신이놈도 지난주에 벌써 끝내고 수학여행 다녀왔으니...남은 두주정도를 어떻게 때워나갈지...제가 다 스트레스랍니다.
이대 지하건물은 ... 미리 추천을 받았더라면 좋았을 뻔 하였습니다.^^
원경이가 이대를 말하는 것이 어려서 그런 것이군요.
그리고 아마 성격탓도 있을 것입니다. 진실이나 충신이는 이성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이고
나실과 원경은 좀 반대거든요. ㅎㅎ 교신이는 바람둥이?구요^^
가끔이지만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대학교가 그냥 빼곡히 건물들만 가둬놓은 전시장같아요. 청송대가 그나마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구요. 그래선지 정도 안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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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남매 중 한 명쯤은 아빠랑 동문인 것도 괜찮을듯 싶은데요..
답글
원경이가 이대보다는 연대생이면 좋겠습니다.
미팅폭은 좁아질지라도..^^-
주방보조2010.12.13 13:56
3년 뒤면 어디로 가는가 결정이 되겠지요. 정말 얼마 남지 않았구나 싶습니다.
지금은 꿈을 꿀 수 있는 시기이니...
이대도 연대도 다 좋지요.^^
원경이가 대학에 갈 때쯤 되면 두놈은 졸업하고 자기길을 갈 것이고...생각만 해도 썰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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