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다섯아이키우기

아버지, 위탁교육을 받겠어요.

주방보조 2010. 11. 24. 05:28

지난 금요일 충신이가

왠일로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제 눈치를 힐끗 보더니, 놈답잖게^^진지한 표정으로 제게 물어왔습니다.

 

"아버지, 혹 제가 위탁교육을 받는다고 하면 승락해 주시겠어요?"

 

저는 이 한마디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파악이 안 되었지만, 저도 안티김충신인만큼^^ 무조건 반대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애써 그 마음을 누르면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좀 설명을 해줄래?

예...신설동에 있는 위탁학교인데요, 정부에서 비용을 대 주어 학비는 무료이구요,  우리학교에는 월요일만 나와서 몇과목 들으면 되구요, 거기로 가서 일년간 특별한 교육을 받는 거예요.

어떤 걸 배우는데?

예...항공비파괴검사라는 것을 배우고 싶어요.

그게 뭔지는 알고?

아니요, 그렇지만 취업도 잘된다고 하고요, 외국으로 연수도 보내준데요.

겨우 일년 배워서?

그러니까요... 일년배우고 나면 위탁교육하던 학교로 진학을 하는 것이지요. 2년제인데요, 인터넷으로 좀 알아봤는데요 100% 취업된데요.

그래?

예...

알았다.

그럼 허락해 주시는 거예요?

네가 뭔가 하겠다는데 이 아버지가 허락을 하지 않을 이유가 뭐 있겠느냐? 어치피 공부는 하기 싫고 그런 거 잖아?

그럼 담임선생님에게 말씀드려서 원서를 쓰겠습니다.

잠깐만...그래도 저녁에 엄마 오시면 같이 이야기를 더 해 봐야 할 것같은데, 난 너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 엄마는 어떨지 모르잖아? 그러니 밤에 이야기를 마무리 하자. 그리고 내일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알았지?

옛, 알겠습니다.!!

 

녀석은 신이 좀 난 모양입니다. 안티김충신인 아버지가 자기 선택을 지지한다니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장군의 표정이 되었었다니까요. 엄마 정도는 부침개 뒤집듯 쉬운 상대라 생각한 것같고요.

자기는 키도 조건에 맞는답니다. 그래 조건이 뭐니 물으니, 165-195사이여야 한다나요...ㅎㅎ...대부분 해당되잖아 그랬더니 그래도 해당 안 되는 아이들도 있다고 벅벅...우기고 

성적도 안 보고 시험도 안 치고 오직 1,2학년 출석하고 봉사활동점수만 보는데, 봉사도 많이 하고 출석도 지각하나, 억울한 결시하나이니 문제없을 것이라고 ..신을 내었습니다.

게다가 수학공부는 전혀 안 하고 영어나 조금 하면 된다나...

 

저는 속으로 괴어오는 착찹한 생각을 버리며 저를 달랬습니다.

그래, 녀석이 뭔가 하겠다니 다행인거다. 기술직으로 산다는 것이 녀석의 길이라면 일찍 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휴...~~~

 

...

 

오후4시경이었는데

뜻밖에도 전화가 그 위탁교육하는 학교에서 걸려왔습니다. 충신이가 인터넷으로 그 곳에 물어봤던 모양입니다. 충신이가 받지 않고 제가 받은 것이 다행이었고, 약 30분정도를 통화한 듯 한데 참 친절하고 고마운 전화였습니다. 그 상담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충신이가 이야기하지 않았거나 몰랐던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대략 다음과 같았습니다.

1.위탁교육을 받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

2.그래서 사전에 상담도 필요하고 적응훈련도 필요하다는 것. 

3.대학입학시험을 치려할 경우, 3학년 내신은 0점처리되어 1,2학년성적으로만 치뤄야한다는 것.

4.고3일년간의 위탁교육은 별로 배우는 것이 없다는 것. 졸업하고 취업은 할 수 있지만 겨우 짐나르는 정도의 막노동이나 할것이라는 것.

5.그래서 오직 자기들 운영하는 전문학교에 진학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

6.위탁교육 안 받고 일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진학이 당연히 가능하다는 것.

7.전문학교 졸업후 군에 갈 때 부사관(예전의 하사관)으로 지원하면 부사관 시험점수에 약간의 혜택이 있고 매월160만원정도의 월급을 받고 4년을 근무하고나면 그것이 경력으로 인정된다는 것.

8.그리고 대부분 기능사 자격은 쉽게 받지만 취업은 자신의 능력에 달렸다는 것.

...물론 충신이 정도면(충신이는 봉사점수가 많은 편입니다.) 충분히 합격할 수 있다고 적성만 맞는다면 조금이라도 일찍 시작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이 위탁교육이라는 것을 분석했습니다.

1.인문계 아이들중 환경이 나빠서 학비를 댈 수 없고, 대학진학을 하기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과정이라는 것. (우린 부자니까^^ 해당사항 없고...)

2.고등학교 생활이 적응이 안 되어 착실하긴 한데 공부를 전혀 안 한 아이들을 위한 배려가 있다는 것. (부회장이니, 선도니 하는 충신이에겐 해당무...)

3.대학진학에 있어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약점이 두드러지게 느껴진다는 것. (경직되는 것을 창의력만 좋은 충신이가 좋아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

4.100%취업이라는 광고속엔 4년동안 부사관으로 군에 가는 것이 포함된 과장이 있다는 것. (충신이가 강조하던 해외연수는 거의 꿈이라는 것.)

 

그리고...녀석이 하려고 하는 비파괴검사라는 과목이 방사능과 매우 밀접한 일이라 꼼꼼하지 못하면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녁즈음 퇴근한 아내는 제가 녀석의 바램인 위탁교육에 이은 전문학교 그리고 부사관 그리고 방사능작업...을 이야기하자

눈물을 한참동안 주루룩 흘렸습니다.

 

...

 

야자를 끝내고 10시쯤 충신이가 들어왔습니다.

마눌은 눈물을 한참 흘린 뒤라선지...조용히 듣기만 하였습니다.

 

저는 제가 들은 정보와 분석을 충신이에게 말하면서, 이렇게 권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1년 공부를 더 하고, 그리고나서 정 항공비파괴검사전문가가 되고 싶다면 그 학교에 그 때 가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제말을 곰곰히 듣고, 엄마가 가끔 사이사이 토하는 탄식소리에 귀를 기울인 뒤...우리 맏아들은 말했습니다.

 

아버지 말씀이 맞겠네요. 3학년 내신이 0점처리되는 것은 정말 몰랐어요.  그건 좀 곤란하죠. 정말 원하는 것이 생기면 바꿀 수 있어야 좋겠지요. 해외연수도 힘들것같고...

 

...

 

이렇게 우리는 맏아들과 함께 고비 하나를 또 넘겼습니다. ^^;;;

 

 

 

  • 한재웅2010.11.24 18:00 신고

    아이들의 요구사항에 대해 부모가 강압적으로 나가면 아이들이 반발하여 설득하기가 어려운데 ... 충신이 얘기를 끝까지 듣고 차근차근 얘기한 것이 충신이를 설득시킨 관건이 된 것 같습니다.지혜롭습니다.

    답글
    • 주방보조2010.11.25 00:48

      워낙 아무것도 안 하려들고 잠만자고 뒹굴기만 하는 녀석이라서요. 그래도 뭔가 해보겠다니...반가웠거든요. 내용을 알고나서는 또 한숨을 많이 쉬었지만 ...
      결정적인 것은 3학년내신이 0점이 된다는 것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녀석은 양다리를 걸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듯 했거든요. 해보다 안 되면 돌아오지,뭐 그런...

      녀석은 오늘도 야자에서 잠을 실컷 잔 것을 자랑처럼 늘어놓았습니다.ㅜㅜ 야자가 아니라 야잠...
      이래도 걱정 저래도 근심...입니다. ㅎㅎ

  • 김순옥2010.11.24 20:46 신고

    학부모께 전화를 해서 깊은 상담을 해주는 학교라면 그래도 전혀 믿음이 가지 않는 건 아니네요.
    무엇보다도 충신이가 자기의 진로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도 확실하구요.
    부모님의 의견을 존종하고 슬기롭게 결정을 하는 것도 성숙한 모습의 일면입니다.
    아직 2학년이니까 좀더 폭넓은 사고와 그에 맞는 노력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한빛이는 전교회장선거에 다녀오더니 내년에는 자기도 도전하겠다고 하더군요.
    수시에 1차 목표를 두고 있는 모양인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나요.
    처음으로 그 부분에 욕심을 나타내는데 저는 속으로 시큰둥하며 노코멘트,
    아빠인 남편은 뿌듯함을 감추지 못하는듯...그렇습니다.

    수능에 목표를 둔다면 충신이는 1년, 한빛이는 2년이 남았네요.
    어찌된 일인지 엄마인 저는 한빛이에 대한 욕심이나 기대? 그런게 별로 없어 보여요.
    아마 지금까지도 외형적인 것은 공부라고 하는데 내면에는 게임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 보이거든요. 물론 성적도 어중간하구요.

    충신이 어머님의 눈물에 저는 죄책감이 듭니다.
    한얼이가 국내에 근무하는 쪽을 선호하는 것에 대해 가끔 태클을 걸거든요. 돈 더 많이 벌어야 한다고...
    아무래도 저는 애틋한 면이 부족한 엄마임에 틀림없는 것 같아요.

    답글
    • 주방보조2010.11.25 00:53

      정말 고마운 상담선생님이었습니다.
      만약 그 선생님의 친철하고 솔직한 상담이 아니었다면...그냥 위탁교육을 보냈을지도 모르지요. 인터넷의 글들은 그냥 좋은 점만 적혀있었거든요.

      한빛이는 실력도 지도력도 있으니 뜻만 세우면 될 것입니다. ㅎㅎ 그런데 그러다가 정계진출한 한빛이를 마침내 보게되는 것이나 아닐지 기대가 됩니다.^^

      제가 직장다닐적에는 해외근무가 메리트가 많았는데...요즘은 그 반대라고 하더군요.
      ㅎㅎ...만약 충신이가 한얼이 1/10만 따라간다해도...마눌은 항상 웃고 살껄요^^

  • malmiama2010.11.25 09:35 신고

    충신이가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있군요.
    개념없는 아이가 절대로 아닌게지요.

    홀로 걷게 하되 뒤에서 보살펴야 할 시기입니다.
    상담 잘 하셨습니다.^^

    답글
    • 주방보조2010.11.26 01:12

      저도 녀석의 독립심을 꺽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동년의 개념있는 아이들에 비해서는 너무나 뒤쳐지는 수준이라서 걱정입니다.
      고민을 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좀더 많은 고뇌의 흔적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네요^^
      격려를 해 주시니...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