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다섯아이키우기

기적, 광화문파...완성되다.

주방보조 2010. 11. 8. 04:19

 저와 맨 먼저 집에서 청계천 시작점까지 걸어 간 녀석은 원경이 입니다. (http://blog.daum.net/jncwk/13745542)

그리고 혼자 두 번 저와 함께 한 녀석은 교신이구요. (http://blog.daum.net/jncwk/13745706)

진실과 나실은 함께 저와 같이 갔고 (http://blog.daum.net/jncwk/13745632)

충신은 비오는 날 청계천산책로를 벗어나 힘겹게 함께 했습니다. (http://blog.daum.net/jncwk/13745661)

그리고 우리집 '안티아버지'인 충신이의 동행으로 이젠 끝났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마눌님은 솔직히 말해 절대로 그 길을 감당할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가끔 농담으로 툭 제안을 해보긴 하였지만, 정말 농담으로 끝나는 것이 당연하다 여겼습니다. 그래서 미완성의 광화문파를 미학적으로(맞는 말이지도 모르겠지만) 완성되었다 여겼다는 것이죠.

 

그런데 지난 토요일...

첫째는 일본에 가 있으니 당연히 없고

둘째는 국립박물관에 숙제해야 한다고 가버리고

세째는 공부하는 척 학교 도서관간다고 발르시고

네째는 학기말 시험(중3은 특목고 가는 아이들 때문에 학기말 고사를 한달쯤 앞당겨 치릅니다. 이런 짓을 하면서 교육이란 말을 쓰는 것이 참 이상합니다.)이라고 자기 집으로 가버리고

다섯째는 누나 혼자 공부하는 데 심심할까봐 딸려 보내고

그러니...결국 딸랑 저와 마눌 둘만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향후 우리가 맞아야 할 노후의 상황인 것같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둘이 간단한 대화가 오갔습니다.

난 운동하려 나가야돼, 두시간쯤은 걸어야 할 것같은데

저도 같이 가요, 아무도 없고...요즘 주로 앉아서 일을 해선지 소화도 잘 안되고 하니  

그럼 살곶이다리까지 가볼까? 거기서 한양대역 전철타고 돌아오면 되니까

글쎄요, 일단 가보고요

 

저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섰지만 제 주머니에 마눌의 지갑과 핸드폰을 추가하고 뚝섬 들어가는 입구에서 마눌이 먹고 싶다고 산 뻥튀기까지 허리에 찬 무거운 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불평 한마디 안 했습니다. 감히...같이 가 주시는 것만으로도 영광인 처지이니 말입니다.

혼자 걷는 일에 익숙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곁에 누군가 말 벗이 있어주면 참 좋은데, 아이들이 모두 그럴 처지가 못되기도 하고 그러지 않으려고도 하는 상황에서 마눌의 동행은 닭들대신 꿩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때가 아마 3시경이었을 겁니다. 하늘이 안개때문에 뿌옇고 해가 마치 달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덥지 않았고 걷는데는 오히려 편했습니다. 건강에는 좋지 않은 날씨였지만 ...

 

살곶이다리쪽으로 가는 길은 우리에게 쓰라린 추억이 있는 곳입니다. 오래전일입니다만, (  http://blog.daum.net/jncwk/1024750)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경험한 일이 있었지요. 아마 그때 그 일이 지금껏 마눌을 광화문까지 걷기에 동참시키지 못한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것이 그때 당신이 꼬마들 데리고 먼저 나간 굴다리야...슬쩍 과거의 미안함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면서 잘 정비된 한강길 보행로를 따라 걸었습니다.

성수대교 아래를 지나 미래의 제 무덤을 지나 용비교 아래, 맞은 편에 응봉산이 보이는 벤취에 앉아 잠시 쉬었습니다. 안개때문에 응봉산 단풍이 별로였습니다.

 

중량천을 건너는 다리 위에선 수 많은 잉어떼들을 보며 즐거워했고, 그리고 코스모스들이 아쉽게도 별로 남지 않았지만 난장이 코스모스니, 짱구머리 코스모스니 작명을 해 가며, 어릴 적에는 옅은 보라색 코스모스가 좋았는데 지금은 진한 보라색꽃이 좋다느니, 처녀적에는 코스모스같았던 자신이 지금은 호박꽃이 되었다느니...하면서...살곶이 공원에 도착하였습니다.

처음 시나리오대로라면 거기 한양대역에서 2호선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인데

마눌님은 제게 '교신이가 빨리 걷는 것은 자길 닮아서'라며  저보다 한 걸음쯤 앞서서 쌩쌩 걸어갔습니다. 아마 이때쯤 자기도 광화문까지 걸어야겠다 생각을 하신 듯 합니다. 여기가 광화문까지 가는 데 딱 절반쯤돼...라는 제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였거든요.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죠.

 

살곳이를 돌아 청계천에 접어들었는데 청계천 하류의 물은 물이끼 종류로 보이는 부유물이 많이 떠 있었습니다. 물은 맑고 작고 큰 물고기는 제법 있었지만 어디 앉아서 감상할만한 풍경은 못되었지요.

 

고산자교를 지나면서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의외로 평소보다 사람이 많아서 토요일 오후라 그런가보다 생각하며 계속 걸어갔습니다. 

신데렐라 호박마차에서 사진 한장 찍어 드리고^^

 

동대문 근처에 이르렀을 때...급격히 사람들이 많아져 가기 시작했습니다. 걷기에 지장이 있을 정도가 되어갔지요.

청계천 3가정도에서는 사람들의 물결이라 표현할 정도로 좁은 청계천 길이 꽉 메워져 운신이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세계등불축제'라는 것을 하고 있었던 것이죠.

우리는 그 인간의 물결에 떠밀려 옴짝 달싹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청계천 물위엔 각종의 형상이 있고 그 안에 등불을 켜 놓았으며, 중간쯤엔 커다란 열기구가 가스버너의 열기로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우리도 재미있어서 사진도 찍고 했지만 곧 예전의 만원버스에서처럼 꽉 막힌 상황에 대하여 염려하기 시작했습니다. 사고의 위험이 매우 크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약 50여미터의 청계천길?을 한시간쯤 걸려서 청계천 1가의 도로위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뭐 별로 볼 것도 없다 싶은데

사람들도 참 억수로 많이 모였습니다. 다들 재미없는 인생을 사시는 때문이 아닐까...

그런 고약한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ㅎㅎ

 

... 

 

광화문파가 된 인증샷을 찍고

 

명동교자에 가서 저녁을 먹고

을지로 2가에서 전철을 타고(운좋게 금방 앉을 수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너무 힘들었으므로, 둘 다)

집에 돌아오니 저녁 10시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참 힘든 인물을 모시고 갔는데...정말 힘든 일을 만나서...무척 힘든 여정이었습니다.  

 

마눌님...역시 한 마디 하셨습니다.  '가보니 갈만하기도 했지만 ...두번 다시는 가기 힘들것 같아요.'  ㅎㅎ

 

그래도...다음날 아이들에게 '나도 이젠 광화문파다' 하는  말투엔

기적을 이룬 여인의 자부심이 조금 깔려 있는 듯 들렸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 주방보조2010.11.08 04:50

    사진들이 좀 허접하게 되었습니다.
    인물도, 풍경도...모두

    핸드폰 카메라 탓입니다.ㅎㅎ

    답글
  • 김순옥2010.11.09 07:55 신고

    축하합니다.
    온 가족이 광화문파에 입성하신 것...ㅎㅎㅎ(...파 라는 게 좀 그렇네요)
    진실이로 인해 쉽지는 않겠지만 단체로 한 번! 금상첨화일 것 같은데요.
    저는 왼쪽 발가락이 당겨서 오래 걷는 게 좀 힘들답니다.
    더군다나 운동을 위한 걷기는 쉽지 않아요.
    신촌에서 집까지 20여분? 가끔 걷기는 하지만요.

    등축제가 있다고 듣긴 했어요.
    무슨무슨 행사가 있으면 사람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앞서는 게 핑계같아요.
    부부가 손을 잡고 산책하는 것...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희망사항이긴 한데
    저희 부부는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일단 보폭부터가 다르거든요 ㅎㅎㅎ

    기적을 이루신 여인의 자부심...그 기분 알 것 같아요.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답글
    • 주방보조2010.11.09 16:07

      ㅎㅎ...단체로 한번!
      굳 아이디어십니다. 정말 재미있을 것같습니다. 도시락까지 싸 가지고^^가면 금상첨화일듯.

      마눌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별수없이...대세를 따르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 죽고나면 20년은 혼자 살아야할텐데 빨리 배워놓는 것이 신상에 좋겠지요.ㅎㅎ

      그곳은 대학캠퍼스들이 많으니 산책하기엔 정말 좋은 환경이잖습니까? 송선생님과 함께 천천히, 자주, 많이 걸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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