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Y씨가 2009년 6월 월간 ‘한맥문학’에 ‘버릇없는 소송 당사자의 소망’이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이다. Y씨는 당시 법정의 상황을 기술한 뒤, “법관이라면 적어도 버릇없다는 의미를 어떤 경우에 써야 하는지 정도는 확실히 알고 있는 신중한 법관”이었으면 한다고 적었다.
얼마 전 이용훈 대법원장이 사법개혁의 대상으로 구술변론주의와 공판중심주의를 정착시키려면 사법부는 국민을 섬기는 사법부로 다시 태어나야 하고 변호사들이 만든 서류라는 것이 대개 사람을 속여 먹으려고 말장난 치는 것이 대부분이므로 변호사들이 작성한 정제된 서류보다는 당사자를 법정에 출석시켜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는 취지의 훈시를 하여 법조계의 파장이 만만치 않았던 기억이 있다.
나는 평생 처음으로 변호사에게 민사소송을 의뢰하여 소송을 진행하던 중 변호사가 구술변론을 해야 하니 같이 참석하자고 권하여 문득 변론기일소환장에 소송대리인이 선임되었더라도 당사자 본인도 출석하라고 적혀 있는 것을 읽어 본 터이라, 사건 당사자로서 법정에 출석하여 상대방의 주장에 재판장 앞에서 나의 진심을 밝히고 싶다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서울 지방법원 5호 법정에 출석하였다.
법정은 방청석이 없고 고급 재질에 안정감 있는 색상으로 잘 단장되었고 법대와 가깝게 당사자와 대리인이 동석할 수 있도록 책상과 의자가 배치되어 있었다. 앉아서 책상에 기록을 펼쳐 놓고 자유롭게 공격, 방어를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놓아 대법원의 사법개혁의 의지가 한눈에 확인되는 법정 분위기였다.
재판장이 법대에 앉아 쌍방 대리인의 출석을 확인하자 원고대리인은 동석한 나를 원고 중 한 사람으로, 피고대리인은 동석한 분을 자신이 소속된 로펌의 초임 변호사로 법정 수습차 나왔다고 소개를 하였으나 재판장은 수습 변호사도 소송위임장을 제출하였는지는 확인하지 않고 피고석에 앉게 하였다.
원고, 피고대리인이 차례로 변론을 마치는 것을 지켜본 내가 승소 목적을 가지고 소송을 제기한만큼 피고대리인의 주장에 몇 마디 이의를 제기하는 순간 재판장이 느닷없이 “어디서 버릇없이 툭 튀어 나오느냐”고 질책하고는 “할 말이 있으면 대리인들이 변론을 모두 마친 다음에 손을 들어 재판장으로부터 발언권을 얻어 하라”고 하였다. 재판장이 그렇게 면박이나 주려고 변론기일소환장에 당사자도 출석하라고 하였는지 화가 났고, 한편으로는 주장하고 싶었던 의지가 한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나는 결과가 훤히 보이는 사건에 매달려 더 이상 변호사가 허송할 것이 미안하여 사임계를 제출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버릇의 사전적 의미는 여러 번 거듭하는 사이에 몸에 배어 굳어 버린 성질이나 짓으로, 버릇없다는 어른에 대한 예절을 차릴 줄 모른다라고 수록되었다.
나는 재판의 실질적 주체인 당사자로서 법정에 출석하였고 재판장도 처음 보는 분이다. 나는 재판장의 지적대로 할 말이 있으면 소송대리인들이 주장을 모두 마친 다음에 손을 들어 재판장으로부터 발언권을 얻어 발언을 해야 하는 것이 구술변론주의에서의 법정 규칙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렇더라도 법정 경험이 없는 70세 노인에게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재판장으로부터 버릇없다는 질책을 받을 짓으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더구나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피고대리인이나 그보다 더 앳돼 보이는 로펌 수습 변호사, 참여관 면전에서 소송당사자가 변호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재판장으로부터 버릇없다는 인격적 수모를 당하고도 재판 결과에 미련을 가지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비굴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나에게는 사법부가 섬겨 주지 않아도 좋고 사법 개혁을 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법관이라면 적어도 버릇없다는 의미를 어떤 경우에 써야 하는지 정도는 확실히 알고 있는 신중한 법관이 재판을 하는 사법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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