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14:33)
방언이든 통역이든 예언이든
교회에서 그 은사 사용의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듣는 자입니다.
방언에 통역이 필요하고
예언도 차서를 따라 해야 하는 이유는 듣는 자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함입니다.
만일 듣는 자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라면 그런 것은 울리는 꽹과리 소리처럼 무의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말씀을 주시고 역사를 주시고 삶의 환경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것"중 우리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들에 대하여
하나님은 일부러 감추고 곤란케 만드시는 일을 하시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몰랐다고 변명할 수 없음도 온 세상에 하나님을 알리는 지식이 충만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도 우리가 다 읽어 알 수 있는 말씀으로 씌어져 하나님 당신을 온전히 드러내고 있지 않습니까?
십자가의 예수는 어떻습니까? 그 이름을 믿는 것이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자격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까?
하나님의 초점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또는 하나님을 찾고 바라는 자들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사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사로서 자기의 영광을 위하는 것도 엄히 경계할 일이지만
그 은사를 통하여 듣는 자에게...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 회개의 열매를 얻게 하는 것 등 유익을 얻을 자가 없는 것이라면...그것은 쓰레기에 불과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중에서 행해지는 통역없는 방언이나 혼란만 가중시키는 질서없는 예언이 그와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금지와 질서의 명령을 무시하고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불분명한 체험적 지식과 신비를 마치 보물단지처럼 여기며 쫓아가는 일은 ... 반드시 이단이나 사이비를 낳게 됩니다.
은사를 잘못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것으로 오히려 마귀를 즐겁게 하는 죄를 범함이요
의미없는 은사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며...오직 마귀의 속이는 이용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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