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우리/세상에 대하여

"학원금지"를 허하라!...(한겨레 펌)

주방보조 2009. 3. 8. 00:03
학원 없는 삶은 어떻게 가능할까.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편집인, 송호창 변호사, 우석훈 연세대 강사, 노회찬 진보신당 공동대표가 교육·법률·경제·정치 전문가로서 학원 없는 사회로 가야 할 이유와 방법을 제시했다. 편집자

한 사회를 끝장내는 교육

»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한 사회를 끝장내는 가장 완전한 방법은 무엇일까? 역사 속에서 실행된 적극적인 방법은 학살일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또한 학살만으로 한 사회를 끝장낼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히틀러는 유대인을 박멸하기 위해 가스실까지 동원했지만 지금 유대인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없던 나라까지 만들어 죄없는 팔레스타인 인민들을 학살하고 있지 않은가. 제노사이드는 유대인의 수를 일시적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지만 그들의 결속력은 오히려 더 강화했다.




한 사회를 끝장내는 가장 완전한 방법은 바로 그 사회 성원들의 결속력을 파괴하는 것, 즉 모든 사람을 오로지 자기만 아는 인간으로 만들어 만인이 만인을 상대로 아귀다툼을 벌이는 사회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만 하면 그 사회는 설사 지금 제아무리 휘황하다 해도 이미 끝장난 사회다. 인류 역사에서 지배계급에 굴종하는 인간을 길러낸다거나 국가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인간을 길러내는 교육은 존재했다. 그러나 어떤 가치관에서든 사회적 결속력을 거스르는 인간을 길러내는 교육이 이루어진 경우는 한 번도 없다. 그러나 이젠 엄연히 존재한다.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이다.

오늘 한국이 절체절명의 사회인 건 물론 모든 사람이 말하듯 경제 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이 사회가 아이들을 ‘나쁜 인간’으로 길러내는 일에 이념과 계급을 불문하고 온 힘을 모으고 있다는 데 있다. 한국은 아이들을 이기적이고 경쟁적이며 물질적 풍요를 인생의 목표로 삼으며 소박함의 아름다움과 정신적 충만을 우습게 여기는 인간으로 키우는 걸 교육이라 믿는 사회이며, 어떻게 하면 그런 교육을 더 효율화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걸 교육 문제라 말하는 사회다.

» 초·중·고교생 10명 중 7.5명이 학원에 다니는 대한민국은 학원 공화국이다. 학원은 ‘고객’인 부모를 유치하기 위해 ‘교육’을 이용해 아이들을 혹사시킨다. 학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선행교육, 잦은 시험, 많은 숙제 등은 ‘부모 만족’을 위해 학원이 고안한 장치일 뿐이다. 그리고 누구나 똑같이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한국의 부모는 이념을 떠나 그러한 ‘학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사진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그리고 그 아귀다툼의 중심에 학원이 있다. 한국에서도 본디 학원은 정규 교육기관인 학교를 보조하는 교육 수단에 불과했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에서 사람 꼴을 갖추는 이런저런 덕목과 가치들을 배우는 일이 사라지고, 국·수·사·과니 영어니 하는 학과 점수가 유일하고 전적인 가치가 되면서 학원은 학교를 제치고 가장 주요한 교육기관이 되었다. 한국에서 여전히 벌어지는, 일반학교가 어떻고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와의 격차가 어떻고 하는 논란들은 실은 다 그냥 겉치레 말들이다. 학교보다 주요한 교육기관으로서 학원은 이미 지급하는 금액에 따라 엄격하게 서열화돼 있으며 누구도 그 ‘금액에 따른 격차’에 항의하지 않는다.

학원의 권위는 보수적이고 탐욕스러운 사람, 이를테면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조·중·동 애독자에 국한하지 않는다. 진보적이라는 사람, 심지어 진보적 교육을 고민하고 실천한다는 사람들도 감히 제 아이를 학원에서 자유롭게 하진 못한다. 광장에서 “이명박이 우리 아이들 다 죽인다!”고 외치던 사람들도 자정이 되면 눈동자가 풀려 휴대전화로 아이가 학원에 다녀왔는지 확인한다. 오늘 외국 자본 투자까지 들어오는 거대한 학원 산업의 주인공들은 모조리 ‘개혁적인’ 386들이다.

그리하여 오늘 한국에서 학원은 단지 학원이 아니다. 학원은 오늘 우리 아이들과 우리가 사는 사회와 우리의 인간성을 망가트리는 자본의 가치관의 결정체이자, 마몬의 성전이다. 학원의 존재를 부인하는 노력은 우리 아이들과 우리가 사는 사회를 살리는 첫걸음이다. 학원을 없애자. 우리 아이들이 그들의 학교에서 공부하게 하자.


2000년 위헌결정을 다시 생각한다

» 송호창 변호사
■ 송호창 변호사

예전엔 공교육을 보호하기 위해 사교육에도 여러 가지 법률적 제약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실효성 있는 모든 제한이 해체되고 학생과 학부모는 각자의 재산에 따라 사교육에만 매달리게 됐다. 이 모든 사태의 시작은 2000년 헌법재판소가 내린 ‘과외금지 위헌결정’부터다.

당시 위헌 이유는 부모의 교육권은 다른 교육 주체보다 원칙적으로 우위에 있고, 학교 밖의 교육 영역에선 더욱 부모가 우선하므로 법으로 과외를 금지하는 것은 한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육 문제의 모든 책임을 헌재에 지울 수는 없지만, 이로부터 사교육 시장은 아무 거리낌 없이 뻥 뚫린 대로를 무한 질주할 수 있었고, ‘수단·방법 가릴 것 없이 성적만 올려라’ 주의가 모든 것을 압도하는 지상 최대의 선이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오해가 있다. 당시 헌재는 상당히 심각하게 교육 현실을 고민하면서 공교육의 가치와 부모의 교육권을 저울질한 가운데 어렵게 결정을 내렸다. 사교육 제한이 무조건 위헌이란 말이 아닌 것이다. 법이 사교육 금지를 원칙으로 하고 또 형사처벌까지 부가하는 것은 공교육의 가치를 지키는 수단이라곤 하지만 과도한 규제라는 취지였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허용하되 예외를 넓혀 금지하고, 형사제재가 아닌 행정규제 등의 방법으로 완화한다면 합헌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것이다.

당시 교육부가 헌재에 ‘과외는 학생들에게 자주적 학습태도를 결여시키고, 신체적·정서적 성장을 막으며, 경쟁의식으로 인해 공동체 의식을 키울 수 없으며, 학교 교육을 황폐화해 학생들의 사고력·창의력 발달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과외를 금지해야 한다는 법률의견을 냈다는 사실을 지금의 교육과학기술부는 알기나 할까. 과거에 비해 아이들의 신체와 정서는 더욱 심각하게 왜곡되고, 교육 현장에서는 온갖 부작용이 터져나오는데도 왜 교육당국의 정책은 10년 전보다 못하게 거꾸로 가는 걸까.

헌재 결정 당시 ‘위헌 판단은 과외를 무제한 허용하자는 것이 아니다. 교육이 붕괴되고 있는 처지에서 대입수능 정책의 개혁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했던 소수의견에 더욱 귀기울여야 한다. 구호처럼 유행하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란 영화가 나온 것이 1989년이다. 그 뒤로 아이들은 더욱 치열하게 행복을 성적과 맞바꾸고 있다. 교육당국은 언제까지 이 상태를 방치할 건가. 공교육 보호와 사교육 억제를 위해 과외 금지가 처음 생긴 것이 1981년이다. 전두환 정권 때도 교육당국은 지금처럼 무책임하고 파렴치하지는 않았다.


가장 쉬운 경제위기 해결책

» 우석훈 연세대 강사
■ 우석훈 연세대 강사

한국은 아주 짧지만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까지 간 적이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하여간 한국에 주어진 모든 자본을 총동원하다시피 해서 공식적으로 2만달러 경제를 만들기는 했다. 이 순간을 정점으로 한국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시작했다. 정치학자들은 이걸 “이명박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 같다. 그럴 수도 있다. 정치적 구호는 늘 그렇게 생겨나고, 사람들은 그렇게 흐름을 보기는 한다.

그러나 같은 사건을 교육이라는 눈으로 보자. 한국은 경제적으로 망했는데, 사교육을 담당하던 학원이 코스닥에 상장을 하고 드디어 제대로 된 투자 가능 기업이 된 순간, 그 순간부터 망했다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한국 경제의 전개 과정을 보면 그렇기는 하다. 사교육이 진정한 의미의 기업이 된 순간, 한국 경제는 몰락하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사교육과 공교육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철학적으로 논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고, 또 그럴 마음도 없다. 나는 이것을 국내 시장 위축과 80%에 달하는 해외 경제 의존도의 진정한 요소로 분석할 뿐이다. 한국에서 자식을 둔 부모들은 늘 가난하다. 중산층을 기준으로 볼 때, 한국에서 사교육은 대체로 가처분소득의 3분의 1 혹은 그 이상을 요구한다. 그게 싫으면 자식을 조기유학의 형태로 외국으로 보낸다. 총소득 수준만 보면 정상적인 선진국의 소득·소비 분포가 형성되는 것이 당연한데, 한국에선 그 돈을 사교육에 지출하고 있으니까, 정상적인 내수 산업 구조가 생기기 어려운 것이다.

이 정도면 국민경제의 정상적인 운용이 힘들 정도다. 그러나 이미 존재하는 학벌 구조 속에서는 누구도 이 게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 게임의 너무 쉬운 해법은 사교육 금지라는 점에 아마도 국민의 절반 이상은 쉽게 동의할 것이다. 정부가 개개인들의 가처분소득을 더 높이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그를 통해 내수시장을 복원하려고 한다면, 이를 위한 가장 쉬운 조치가 사교육 금지가 아니겠는가. 어차피 경쟁은 피할 수 없다 하더라도, 사교육이 있는 상태와 그렇지 않은 상태, 두 가지 중에서 사교육이 없는 상태가 국민경제의 운용을 위해서는 훨씬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 2000년 헌법재판소의 과외 금지에 대한 위헌결정 이후, 이런 선택은 논의 자체가 막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지금과 같이 국민경제가 사교육으로 인해 위험하게 된 상황은, ‘경제 민주화 조항’이라고 불리는 헌법 119조 2항(‘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이 적용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선택의 문제를 행정적으로 헌법적 질서에 맞게 풀 수 있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이른바 이해당사자인 누군가가 다시 헌법재판소에 법률적 결정을 청구하거나, 아니면 사실상 헌법에 준하는 권한을 갖는 국민투표를 통해 이 사회 전체가 합의할 수 있는 원칙을 세우는 일이다. 좀더 합리적이고 타당한 절차는 국민투표를 통하는 길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한국의 현행 헌법은 국민투표 부의권을 대통령에게 독점적으로 주고 있지만,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국민경제에 중대한 문제가 되는 이 정도 사안이라면 대중적 청원 과정을 통해 국민투표까지 가는 것이 아주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이러한 법리적·정치적·사회적 논의 절차가 아니라, 이미 누구도 제어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져버린 사교육이라는 특수한 경제 부문을 어떤 방식으로 연착륙시킬 수 있을 것인가다. 이미 사교육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대부분의 국민들이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음에도, 국민적인 대변인이라고 할 수 있는 가수 신해철마저 끌어들일 정도로 사교육은 엄연한 하나의 산업이 되어버렸다.

» 올해부터 전국 학생들의 ‘성적’ 줄세우기를 위한 일제고사가 시행됐다. 대입선발고사 자율화, 국제중 설립, 고교 다양화 정책 등 현 정부의 모든 교육정책은 사교육과 동맹관계를 맺고 사교육 시장을 확대하는 데 기여한다. 지난해 사교육 시장 규모는 20조9천억원으로 1년 전보다 5% 커졌다. 유례없는 경기침체와 관계없이 사교육 시장만 호황이다. 사진 한겨레 강창광 기자

대체로 지금의 사교육은 내부적으로는 완벽한 양극화 구조이며, 1억원 이상의 연소득을 올리는 일부 스타 강사와 2천만원 미만의 소득을 올리는 비정규직 강사들로 양분돼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부드럽게 지금의 사교육에 전도된 한국의 교육을 정상화하며 사회적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일까? 지금의 사교육 인력을 공교육으로 흡수하는 방식이 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교육대학원 등을 활용해 사교육 인력의 상당 부분을 공교육으로 흡수하면, 공교육의 교사 대 학생 비율을 획기적으로 낮추면서 사교육 폐지의 충격을 줄이고 공교육의 질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교육 폐지만으로 학벌사회의 문제와 그 밖에 우리가 늘 ‘교육의 문제’라고 얘기하는 온갖 문제가 해결될까?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대학 등록금, 국립대학 사이의 연계, 사립대학에 대한 정부 지원 등 남아 있는 문제는 여전히 많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경제적 위기 속에서 가장 쉬운 해결책의 출발점 하나를 손에 들고 있는 셈이다. 이게 풀리면, 공교육 그리고 사회적 교육이라는 틀 속에서 많은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출발점으로 내가 바라는 정책적 요구는 간단한 하나의 문장이다. “사교육 금지를 국민투표에 부치자.” 그것이 가결되든 부결되든, 이것은 민주주의 절차 내에서 가능한 일이고 그 단순한 조치에서 많은 것들을 얻어낼 수 있으며, 국민경제 회생까지 걸려 있는 일이 아닐까 한다.


국민투표를 제안한다

» 노회찬 진보신당 공동대표
■ 노회찬 진보신당 공동대표

한국 사교육비의 대부분은 좋은 대학 들어가는 데 쓰인다. 아이들의 진정한 실력을 높이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입시 경쟁에서 앞선 순위를 받는 데 쓰일 뿐이다. 대학입시를 위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교육비를 지출하면서도 대학의 학문 경쟁력이 최하위권에 머무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지출되지 않는 대학 입학 경쟁 비용으로 한 해 수십조원의 지출이 계속되는 이 바보 같은 일을 우리는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나?

이명박 정부는 사교육비를 반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말과 행동은 거꾸로 가고 있다. 영어몰입 교육, 대입 자율화, 고교 다양화, 일제고사 강행, 국제중 설립 등 사교육비를 한 푼이라도 더 지출하게 하는 온갖 방안이 시행되고 있다. 저소득층까지 가계 지출 중 교육비 비율이 계속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사교육비를 한 푼이라도 더 쓴 학생이 입시 경쟁에서 유리한 만큼, 지금 대한민국의 교육은 기회 균등을 통해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부가 세습되고 가난이 승계되는 부익부 빈익빈을 재생산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사교육비를 줄이는 방법은 우선 사교육의 필요성을 줄여나가는 것이다. 즉, 고질적인 학벌 체제를 타파하고 대학의 상향 평준화를 추진해야 한다. 이른바 ‘좋은 대학’이 적기 때문에 입시 경쟁이 치열하고 경쟁 비용이 늘어난다면 ‘좋은 대학’을 늘리는 길부터 찾아야 한다. 국공립대학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로 이들을 모두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일부터 해야 한다.

공급을 대체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방과후 학교를 늘려 사교육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까지의 통계에 따르면, 방과후 학교가 늘어남에도 학원 및 개인 교습비는 더 높은 비율로 늘어나는 것이 확인됐다. 방과후 학교를 통해 사교육비를 반으로 줄이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대책은 실패가 확정적이라 할 수 있다.

공교육을 바꿔서 사교육이 필요 없도록 하는 게 정답이긴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공교육에서 경쟁과 서열을 최소화하고, 사교육 종사자를 학교와 공공서비스로 흡수하고, 학생의 창의력과 자율성을 신장시키는 학생중심주의 학교로 바꾸는 것이 정답이긴 하지만, 시간도 필요하고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따라서 사교육에 대한 공급 차원의 통제정책이 적극 모색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입시와 관련된 사교육을 금지하는 국민투표를 제안한다. 입시와 직접 연관된 사교육만 제한한다면 위헌 소지도 없앨 수 있다. 우리 모두, 경쟁을 하더라도 공정하게 하자는 사회적 합의를 하자. 이런 합의를 바탕으로 새로운 교육체제를 만드는 여정을 시작하자. 핀란드의 교육개혁은 1963년 의회에서 결정을 내리고, 1968년에 법을 만들고, 197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충분히 논의하고 합의한 다음 학교를 바꿔나갔다. 그리고 지금 핀란드는 세계 모든 나라가 본받고 싶어하는 학교를 가진 나라가 됐다. 개혁을 늦춘다면 우리는 강자만이 살아남는 ‘동물의 왕국’을 계속 유지해야만 한다. 교육을 바꾸지 않는 한 이 나라에 희망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