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수능 점수가 발표되었고
오늘부터 나실이는 공식적으로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 되었습니다.
고교3년 동안 성실하게 공부했으나
집중력의 부족탓인지...공부하는 양에 비해 그리 성적이 좋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이 못난 아비를 닮아 돌머리를 물려받은 때문인지도 모르지요.
물론 비밀입니다만^^...수능점수도 내신과 비슷하게 나왔습니다.
어제 늦게까지 인터넷에서 '서울약대'^^들을 뒤지고 다닌 탓인지...
다른 녀석들 모두 떠난 좀 늦은 시간에 나타났고...
밥 먹고 아빠랑 운동이나 하자는 말에 순순히 동의를 해 주었습니다.
자전거를 탈까 하다가 걷기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방향은 잠실교보문고로 정했습니다. 가는 길에 유영희 작가의 '자장면과 짬뽕사이'라는 수필집도 살겸...
...
아빠 난 집에서 가까운 대학에 가고 싶은데...
흐흐흐 그러게 말이다. 코 앞에 대학들이 즐비한데 말여...
난 머리가 나쁜가봐요
응... 날 닮았으니 머리가 나쁜 게 맞지
아빠는 머리가 좋지 않나?
흠...솔직히 말해 줄까?
뭘요?
진짜 네 문제가 무엇인지?
예
넌 말야...머리가 깨이질 못했어.
피...그냥 머리가 돌이라고 하시죠.
그건 좀 다른 이야긴데...아빠도 너랑 마찬가지였거든...둔하고 이해 못하고...
그래요?
그래...그랬어. 수업 시간에도 무슨 소린지 태반 넘어 이해 못하고 , 공부한다고 앉아 있어봤자 효율은 안 오르고 ...그러다가 머리가 깨였지. 어느 순간...
어떻게요?
글쎄, 뭐라 딱 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는데 너하고는 전혀 다른 환경이 가져다 준 것이 아닐까 해.
그게 뭔데요?
그러니까 너는 부모구존 형제무고...이고 그러다 보니 그냥... 절박함이 주는 압박이 크지 않잖아?
예 그런 편이죠.
난, 부모무능 형제유고^^였단 말야. 일찍 결혼한 누이의 빈한한 신혼 살림에 더부살이였으니까. 너나 나나 동일한 기질...그 딱딱한 느긋함을 깨뜨리지 않고는 희망이 없다는 그런 절박감이 있었지. 운운...
우리는 공사중인 한강 길을 따라 가다가 잠실대교 건너가며
끝없이 이야기를 이어 나갔습니다.
서울 약대중(혹 오해할 이가 있을까봐 드리는 말씀인데...서울 약대는 '서울에서 거리가 약간 떨어진 대학'들을 서울 상대는 '서울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는 대학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이름들을 거명하며 마주보고 웃기도 하고...한숨도 쉬어가며...
...
올해 초...진실이의 재수학원을 알아보기 위해 진실이와 함께 송파의 학원들을 찾아갈 때도 잠실대교를 건넜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잠실대교 아래...수 많은 갈매기들이 멋진 날개를 펴고 비행하고 있는 장관을 처음 보았었지요.
겁 먹고 내려다 보려 하지 않던 나실이도 위에서 내려다 보는 갈매기의 멋진 모습을 한 번 보고는 ...감탄^^
...
잠실역 앞...서울 약대가는 버스들을 가르쳐주고^^
잠실 교보 문고에서 책을 사고...
다시 돌아오며...잠실대교 중간에서 1만2천보가 찬 만보계를 리셋 시키고
우리는 조잘조잘...^^여성호르몬이 점점 많아지는 늙은 아빠의 수다와 수능성적 발표라는 부담감을 덜은 여고3년생의 수다...
친구들 품평에서부터...먹거리 품평까지...를 이어갔습니다.
...
농협 앞에 벌여놓은 좌판에서 만두와 찐빵을 사서 ...먹으며 걷다가
우리 집 앞 작은 순대국집에 기말고사 중인 원경이를 불러 ...함께 점심을 먹는 것으로 끝...
그 시간이 12시 45분
나실이를 새집으로 보내며
영어공부라도 손놓지 말고 열심히 해...한 마디 아니할 수 없었으나
한껏 밝아진 얼굴로
나실이는 크게 "예!"...라고 외쳤습니다^^
까짓것 ... 스카이만 학교고...인서울만 학교랍니까?
서울 약대든 서울 상대든 밝고 성실하게 공부하면 되는 것이지요.
게다가
이 고슴도치 아빠 눈엔
이제 대학생이 되면 '인생의 절박함에' 머리가 깨여서...놀라운 향상을 보일 것이 뻔한데...
믿거나 말거나^^
-
-
깨우치게 하는 글입니다. 따뜻하고 잼있고.ㅎ
답글
울집 형민이는 성악레슨 받기 위해 오늘은~새벽에^^ 일어났습니다.
한 시간 반 걸리는 서울의 레슨장소로 가기 위해서는 7시반에 집에서 나가야 하거든요. -
어쨌거나 지긋지긋^^한 시험지옥에서 해방된 나실이를 축하합니다.
답글
여성홀몬이 많아진 아빠와의 다정한 데이트 부러워요.
나도 ,우리 아이들도 그런 아빠를 두지? 못해 그런 데이트 못했거든요.
우리 시동생은 진짜 서울약대를 나왔는데 이렇게 좋은 아버지가 안계셔서 그렇게 행복하지못했어요.
아무쪼록 나실이를 많이 칭찬해주고 위로?해주고 격려해주세요
격려하는 차원에서 무농약밀감 한상자 보낼게요.
독수리 오형제에겐 코기리 비스켓이 되겠지만...
더 사고 싶어도 이제 그농장에 귤이 없다네요. 너무 인기가 좋아서 동이났답니다.
오랫만에 들렀습니다. 잠도 안오고.... [비밀댓글] -
서울안이든 바깥이든.. 더 중요한 건 어디서나 밝을 수 있는 능력이고..
답글
가족에 대한 믿음으로 그 울타리를 존중하는 마음 같은 거겠지요.
간혹 주객이 전도되어 인간성이나 가족애를 잃어버리고 오직 출세나 돈만 향해 가는
사람들이 아주 흔합니다. 요리왕님 아이들은 마음이 건강한 것 같아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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