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게 되면 당부하던 것이 있습니다.
너그들...절때로...반장이나 뭐 그런거 하믄 안 된다...알긋지~!!!@@
다행히 아이들이 모두 그런 권력욕이 없거나^^ 아비의 말에 잘 순종하거나 하여...한놈도 저의 이 간곡한 당부를 외면하지 않고 충실히 잘 지켜왔습니다.
물론 부담없는 진실이의 만화부 부장이나 나실이의 도서부 부부장같은 것은 질끈 누감아 주었었지만요.
지난 금요일...
교신이가 헐레벌떡 들어오더니
아빠 저 학년대표로 뽑혔어요. 학급대표가 아니라 학년대표요. 제가 제일 빨랐거든요. 하며 떠들어 대었습니다. 가을 운동회에서 선생님들과 계주경기가 있는 것인지, 아님 이웃 학교와 계주경기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이 3학년 중에서 제일 빠른 사나이로 뽑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녀석은 한마디 추가로 제게 툭 던졌습니다.
아빠 대표로 뽑히고 나니 기분이 좋아져서 전 청소당번이 아닌데...아이들 청소하는 것 거들어 주었어요.
음...불길한 전조가 그때 왜 느껴지지 않았는지...
토요일...
교신이가 또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면서 외쳤습니다.
아빠 저 회장됐어요.
저는 혼자 추천을 받았는데 자기가 해 보겠다고 한 아이들을 다 누르고 회장이 되었어요.
허걱...
그동안 큰놈들 키우면서 반장같은 것 하지말라...혹 이야기 안 했어도 우리 아이들은 반장이 되는 것으로 문제될 일은 없다는 생각을 하고 막내에겐 그런 당부를 하지 않았더니...그 방심한 허를 찌르고 이 막내놈이 사고를 친 것입니다.
여자회장엔 자기가 좋아하는...김sw가 되었고
아이들이 자기와 김sw를 투표용지에 나란히 같이 적어 낸 경우가 많았다고...운운
녀석의 무용담을 듣고 저와 아내 그리고 형과 누나들은 모두 입을 약간 이그러뜨리며^^...축하해 주었습니다.
녀석의 의기양양한 꼴이라니...
월요일...
오늘은 임명장을 주지 않으셨다고...약간 실망한 듯 ...
얌마 너 차렷 경례 잘 했어 묻는 저에게 ... 임명장을 받아야 회장노릇을 한다며 슬쩍 저를 쳐다보고...
한달간 쉬던 태권도를 다녀와서...다시 그 무용담을 추가로 늘어 놓았습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떨어져서 우는 모습이 마음 아팠다고...마지막에 선생님이 떨어진 아이들 꼭 안아 주셨다고...자기는 조용한 학급을 만들어 보겠다고 공약을 했고 당선 소감으로는 뽑아줘서 고맙고 힘껏 노력하겠다고 했다고...
화요일...
집에 들어오는 녀석의 안색이 좋지 않아...
혹 회장이 되고 나서 녀석을 싫어 하는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어 무슨 일이 있었느냐 추궁을 하였더니
'자기 조'에 말썽장이들만 들어와서 화가나서 그렇다고 속상하다 하길래 혼을 내 주었습니다.
회장은 자기 마음대로 하고픈 것 하라고 뽑힌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말썽장이들을 위해 필요한 것이 회장이다. 예수님도 의인을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하러 오셨다 하지 않았느냐...
수요일...
이건 여자 반장이 제게 준 거에요.
가방에 꼭 달고 다니라고 해서...녀석은 좀 민망한지 고개를 숙이고 그러나 좋아서 죽겠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채...원숭이 모양의 악세사리 거울을 만지작거렸습니다.
너 걔 본관이 어딘지는 아니? 광산김씨면 다 말짱 꽝이야...놀려대는 저를 째려보며...아버지는 왜 그렇게만 생각하세요? 정색을 하고 반박하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낄낄댈 수밖에 없었지요^^
목요일...
깃발을 휘날리듯...아들은 임명장을 들어 흔들며 내 놓았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바뀌었고 자기들은 임명장을 받으려고 방송실에 갔는데 얼굴도 화면에 나왔고 기분이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내일 임원수련회를 떠난다고 ...
아내는 일본에서 사온 물건 중에 작고 반짝이는 것을 교신에게 주며 김sw에게 주라고 하였습니다. 남자가 여자 주는 것 받기만 하면 안된다고 하면서.
그리고 저녁 시간 부회장의 엄마라는 분에게서 전화가 왔고...아내는 난처한 듯 죄송하다든가 그러겠다든가 그럼요 라는 말을 여러번 하였습니다.
교신이 녀석이야...권력도 사랑^^도 모두 얻은 기막히게 좋은 일이겠지만
저나 아내에겐 ... 해보고 싶지 않은 일들이 부담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일단은 물론 사정을 말씀드리고 ... 많은 양해를 구하였지만 ...
금요일...
오늘 아침에...녀석은 임원수련회를 떠난다고 준비물을 챙긴 가방을 들고 나섰습니다.
가나 쵸코파이를 네개 넣어주고 녹차를 한병 싸주며...잘 다녀오라고 하였습니다.
...
어제 저녁 둘이 함께 이마트를 가면서...녀석이 내년에도 회장을 할까? 하며 저를 쳐다 보길래...속으로 허걱! 놀라며^^ 겉으론 씩 웃어 주었습니다. 회장이 되니 그렇게 좋으냐? 그래도 그렇게 좋은 것을 너만 하면 되겠느냐...다른 아이들도 다 해 봐야지...
그건 그렇죠...녀석은 순순히 제 말에 수긍했습니다.
착하고 용감하게 자라주기를...가방을 메고 뛰어 가는 녀석의 뒷 모습을 보며...기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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