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다섯아이키우기

털...

주방보조 2005. 3. 21. 17:23
제 얼굴에 솜털이지만 수염이 나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2학년이 시작되던 때였습니다.
얼굴이 검은데다 수염이라부르기도 그러하지만 검은 솜털이 나기시작하자
아이들은 저를 '까깜치'에서 '애노인'으로 놀려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물구나무 서서 걸으며 삼삼칠 박수를 리더하시길 잘하던 수학선생도 지나가며 제 솜털 수염을 잡아다니며 놀려대곤 하셨지요. 다른 놈들에 비해선 확실히 길었던 모양이었는지...

그래도 그 솜털수염을 처음으로 깍은 것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였습니다.

...

그런데
이제 막 6학년이 된
제 맏아들놈이 얼마전 "홀로~~~"
그 코밑의 털을 밀다가 사고를 쳤습니다.
오른쪽은 멀끔하게 잘 밀었는데
왼쪽이 좀 부실했는지 여러번 밀어대다가 껍질을 직경 2센티미터쯤 긁어놓았나 봅니다.

그 상처를 베타딘, 마데카솔 발라주고 거즈대고 반창고붙여 잘 아물게 하여 주었습니다.

그리곤 반창고를 떼었다 붙일 때마다..잔소리를 하여 대었지요.

'야 이놈아 면도기를 처음으로 쓰려면 아버지한테 말하고 도움을 받았어야지...이게 무슨 꼴이냐~'

...

어제 일입니다.
아직까지 녀석의 왼쪽 상처가 약간의 흔적을 남기고 있는 와중에
녀석이 화장실을 들락날락 하더니
방안에서 조용한 꼴이
저의 신경을 자극했습니다.

녀석의 방을 들여다 보고... 뭐하니? 물어 녀석이 얼굴을 돌리는 순간...

커헉...!!!

눈썹의 털이 양쪽으로 반씩이나 없어진 채로 ... 예의 새로 면도한 멀끔한 얼굴이 그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

아니 또 면도기를 이렇게 함부러 써대었단 말이냐? 기가 막히다 왜 그랬느냐 이놈아!?

예...눈썹 양쪽이요 너무 붙어서 일자로 보이길래 깍느라고...면도기가 너무 잘 드는 바람에...엉엉~

좋아하는 여자애라도 생긴 것이냐?

그건 절대 아닙니다...엉엉~

...

아내도 그 몰골을 보고 기겁을 하여 난리를 쳤지요. 오히려 먼저 놀란 제가 말려야 할 정도로...

누나들과 동생들도 그 면상을 보고 엄마 아빠의 난리치는 모습에 웃지는 못하고 난감해 하고 있고.

대책을 세워야 했으므로...
눈썹그리는 연필?로 제가 양쪽을 균형있게 칠해봤는데...너무 검게나와서 이상해 보이고 ...마치 신짱구 눈썹처럼 보여서 도저히 안되겠고

트릭을 써서 1회용반창고를 붙여 다친 척하기로 하였습니다.

녀석의 반창고를 두개 이어붙인 꼴을 보고
결국 우리 식구 모두 포복절도를 하고 말았지요.

...

아침에 반창고를 찾는 녀석에게...아무래도 그냥 가는 것이 낫겠다 하고...학교로 쫓아버렸습니다.

눈썹자리에 반창고를 붙이고 가는 것도 사실 너무 이상했고

녀석이 '털'의 소중함을 처절하게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도 조금 있고...
충신 눈썹의 고난
[EASTMAN KODAK COMPANY] KODAK CX4200 DIGITAL CAMERA (1/30)s iso140 F4.5
at 2005-03-07 (mon)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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