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다섯아이키우기

일본에서...2

주방보조 2008. 7. 31. 18:25

어제

그러니까 수요일 오후 5시가 되어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냥 보통 안부를 묻는 전화면 봄바람같이 부드러운 음색인데

그리고 지금까지는 전화할 때마다 그랬는데

이번에 영 그렇지 않았습니다.

성질이 좀 난 듯한 ... 그러면서도 좀 겁먹은 듯한 음색이었단 말이죠.

 

마눌과 20년을 함께 살다보니...마눌의 발자욱 소리 하나만 들어도 그날의 컨디션을 알아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는데, 어찌 전화 음색을 듣고 첫마디에 상황판단을 할 수 없겠습니까?

저는 걱정스럽게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요?

 

아내는 자기가 처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였습니다.

아침에 진실이와 같이 신주꾸 역에 내려 자신은 연수받는 곳으로 가고

진실이는 쇼핑도 하고 구경도 하고 돌아다니다가 ... 자기가 문자를 보내면 진실이가 와서 함께 집으로 가기로 하였다는 것이죠.

 

4시에 만나자고 문자를 보냈는데

1시간을 기다려도 오질 않으니 어쩌면 좋으냐고...

게다가 진실이에게 문자를 보내면 ... 일본어로 답장이 오는데, 몇 번 그러더니 아예 답장도 하지 않는다고...

 

진실이가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여권하고 돈이 든 가방까지 잃어버려서 ...오도 가도 못하는 것 아니냐고...

아내는 속상함과 염려로 북받쳐 점점 감정의 파고가 높아져 갔습니다.

저는 어떻게 도울 방법도 없고

전화 끊고 일단 ...답장으로 온 그 일본어 문자가 뭔지 영어로^^ 물어보라고, 그리고 누군가에게라도 부탁해서 사정을 설명하고 습득한 핸드폰을 돌려 받을 수 있도록 해보라고...말했습니다.

 

조금 뒤에 또 전화가 왔습니다.

그 일본어 문자는 '나는 네가 하는 언어를 이해못하겠다'는 뜻이라 하고 아무래도 연수받던 곳으로 돌아가 한국어를 하는 이를 찾아야겠다고 다시 전화를 끊었습니다.

 

저는 충신과 원경과 교신과 함께 있었는데...제 입에선 마구마구 진실이에 대한 욕이 튀어나왔습니다.

 

그 바보같은 년이...핸드폰 처음 산지 백일도 안 되어 잃어버리고 결국 못찾아 공돈 물어가며 번호이동하고, 지난번 지갑을 잃어버려 종암경찰서까지 다녀온것도 모자라...이번엔 일본에서 몽땅 잃어버려?

정신없는 년...집에서 새는 바가지 들에서도 샌다더니...일본에 보내질 말았어야 했어...  

가방도 항상 앞으로 오도록 조신하게 하고 다니질 못하고 덜렁덜렁...

어쩌란 말이냐...엄마는 일본어 한마디도 못하지...내가 갈 수도 없지...

말도 지지리 안 듣더니 ...으이구 속터져~~~~

 

그때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목소리가 달라져 있었습니다. 저는 즉각 마음이 놓였지요^^

진실이가 문자를 보내왔어요.

연수받는 곳으로 올라가던 중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다 날뻔 했어요.

글쎄 제가 문자를 엉뚱한 번호로 보냈나 봐요.

언제 만나냐고 왜 연락이 없냐고...근데 번호를 보니 제가 문자 보낸 번호가 아닌 거예요.

 

저는 소리쳤죠^^

아니 당신마져 내 속을 썩히다니...여기서 애들 돌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말이요.

객지이니 정신차리고 잘 지내요...제발...

 

호호호...웃음을 남기고 전화는 끝이 났습니다만

십년감수한 제 가슴은 벌렁벌렁...한참을 진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얼마후 또 전화가 왔습니다.

 

여보...일이 이렇게 된 거예요.

제 핸드폰에 진실이가 자기 번호를 입력하고 저장을 해 놓았는데 ... 그것이 잘못된 거였어요.

그래서 지금 벌로 저녁 식사 준비하라고 시켰구요.

그러니...전 잘못이 없어요. 알았죠?

 

...

 

결국 모든 잘못은 진실이가...^^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지...그정도 잘못으로 끝이 났으니 말입니다.

 

여전히 제 마음은 ...마치 강가에 아기둘 놀러 내보낸 그런 심정입니다.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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