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이라서
누구나 하는 착각을 하면서 진실이를 키웠습니다.
두세살즈음...동요 백여개를 줄 줄 외워대며 따라부를 때...우리가 천재 딸을 낳았구 나^^하면서
유치원에 다닐 때도 시조 열편 외워대는 것을 뚝딱 해치워 우리의 입을 딱 벌어지게도 하였지요.
그러나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아이들의 따돌림에 시달리기를 시작하면서
그리고 수 계산이 늦어 수학 점수가 그리 좋지 않게 나오면서 녀석은 좀 주눅든 채 초등학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따돌림을 받은 이유는...옷이 깨끗하지 못하고 얼굴이 까맣고 예쁘지 않고 내성적이고 공부도 잘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는데, 이때부터 좀 비뚤어진 행태가 나타났었지요.
이름과는 다르게 거짓말도 잘 하고 말도 별로 없어지고 우울한 아이...
당시 환경이 사무실 반쪽을 개조해 꾸민 집이었으니 열악하기 그지 없는 상태였고 막 네째가 태어나 정신이 없는, 그래서 좀 더 세밀하게 돌봐 줄 수 없는 때였지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가장 진실이에게 미안한 시기였습니다.
상계동에 작은 아파트를 마련하고
그리로 전학을 한 후에 진실이는 많이 밝아져 갔지만
여전히 학습에 진전이 별로 없었으며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
그 이름도 유명한 이해찬씨가 교육부 수장이 되어 꿈같은 이야기들을 토해내고 학교에서 시험을 완전히 퇴출시켜 버려서 적당히 교과서만을 조물락거리는 진실이의 실력이 어느정도인지 정확하게 판단할 기회가 전혀 없었으며
초등학교 시절엔 학교 공부에만 충실하고
마음껏 놀게 해준다는 저의 교육방침에 따라
학교공부는 점검할 수 없는 대신 ..마음껏 노는 것은 보장해 주었다는...^^
다섯째가 태어나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할 필요가 생겼고
일자리 문제도 있어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를 한 것이 진실이가 5학년때로 기억합니다.
수학은 여전히 잘 못하고, 다른 공부도 그리 뛰어난 것이 없었습니다.
피아노는 잘 쳤지만 손가락이 짧고^^본인이 피아노를 전공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으며
찬송가를 잘 칠 정도의 실력이 되었으므로 6학년이 되면서부터는 매일 한 곡을 다섯번씩 치던 것조차 강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6학년 접어들면서 5학년부터 조금씩 보여오던 취미생활이 하나 생겼는데
그것은 만화 보고 따라 그리기와 만화 이야기 만들기였습니다.
이 만화와 관련된 진실이의 집요한 노력은 그때부터 저의 엄격하고 치밀한 감시망을 뚫고 또는 감시망에 걸려 경을 치고도 꾸준히 고2 1학기까지 이어져 갔습니다.
혼내고 말리고 때리고 설득하고 쫓아내기까지 하면서
수십권의 노트...만화와 만화스토리로 빽빽한...를 압수하고 진실이와 아니 만화와 저는 계속 투쟁해야만 했습니다.
중3이 끝나갈 때 진실이에게 만화를 전공으로 해도 좋다고 마지못해 허락했으나
스스로 그리 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자신은 만화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이미 그때 간파하고 있었노라고, 그러나 너무 좋아서 계속 그려대었노라고 하였습니다.
고1말에도, 고2 중간에도 ...만화에 몰두하는 녀석에게 만화가가 되라고 제가 오히려 권하였지만
역시 만화는 자기 재능으로 안 된다고 그 길을 가지는 않겠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2학년 올라가면서 녀석이 택한 것이
이과였습니다.
말렸지요. 수학이 점수가 좋지 않고 국어(만화스토리 만들어 대던 덕일까요?^^)와 영어가 오히려 상대적으로 점수가 높았으니까요.
녀석은 극구 이과를 가겠다 했고 사회과목은 지겨우며 과학은 재미있다고 하였습니다. 나노과학도 흥미가 당기고 생명공학도 너무나 재미있을 것같다고.
저는 원래 수학을 좋아했고 공대에 가고 싶었으나 적록색약이라 당시 이공계 진학을 일찌감치 포기해야 했던 터라...하고 싶어하는 것을 더 이상 막고 싶지 않아서
진실이의 이과행에 찬성을 했습니다. 아내는 반대했지만...제가 설득했지요. 두고두고 원망받을 일이었습니다^^
이과에서 1년을 보낸 후 2학년 말 진실이의 성적은 희안하게 나왔습니다.
국어와 영어는 괜찮은 등급이 나왔는데, 수학은 아주 낮은 등급이고 과학과목들은 그보다 더 떨어졌지요.
우리, 아내와 저는 다시 한번 문과행을 권했습니다.
선생님께 여쭤보라고, 3학년부터라도 문과로 옮겨 공부를 하라고...
녀석은 결정적으로 우리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선생님이 절대로 안 된다고 하셨다고...
3학년 1학기가 거의 끝나갈 때...6월에
우리는 진실이를 불러 놓고 심각하게 다시 권해야 했습니다.
영어와 국어도 성적이 좀 더 떨어졌고 수학과 과학은 훨씬 더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진실이가 시험을 쳐 볼만한 학교들...3류대^^...은
그래도 진실이를 받쳐주는 국어와 영어 중 한과목만 성적에 반영하기 때문에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드디어 진실이도 우리의 의견에 동의하였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문과로 바꿀 것을 말씀드렸지만 이미 학급을 바꿀 수는 없고 진실이 자신이 다른 반에 가서 공부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학과학시간에는 거의 자습, 사회과목은 기왕 듣던 법사외에 아무것도 들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때 사교육을 받게 해야 하지 않나 고민했으나 ...우리의 사교육 금지 원칙을 깨지 않기로 하고 갈팡질팡하며 참고서를 사보는 것 정도로 사탐을 정리하게 하였습니다.
...
무엇을 전공할 것인가?
너무 변독스럽고
아쉽기 그지 없는 12년의 공교육 과정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답이 의외로 무척 쉽게 나왔습니다.
사탐관련된 과목들은 싫고, 일본어는 잘 할 수 있을 것같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일본어는 내신에서 보기드물게 1등급을 받은 경력도 있었으며
일본 친구 하나를 사귀어 자주 편지도 주고 받고 하는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만화를 좋아하다 얻은 부수입이라는 생각이 아니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막연한 대학진학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아이들의 적성을 잘 �아내고 적절한 전공을 선택하게 돕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저나 제 아내도 대학 전공이 얼마나 불만스러웠는지...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가끔 투털거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진실이의 전공 선택은 일단 녀석이 좋아하는 것이므로 만족스럽다 생각합니다.
앞으로 어찌 변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전공선택의 왕도는 없다...오직 우연과 결단만이 있을 뿐이다...우리 집 진실이의 전공선택의 과정이 은근히 말해주고 있는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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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전공도 괜찮지요. 만화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패션 출판 등 분야는 물론이고
답글
아직도 이공계통의 기술 과학서적들.. 경제 금융분야 서적들..
일본책들은 우리나라 산업계의 교과서로 중히 쓰이니까요.
다만.. 일본어는 전공자들이 많아서.. 이를테면 원고번역을 맡기는 경우에도
영어에 비해 절반쯤으로 임금이 낮지요.
(예전에는 일정때 배운 노인들하고도 자리 경쟁을 해야 했으니..)
관심있는 한두개 분야의 언어(용어)에서 좀더 특수한 재능이 나타나도록
갈고닦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군요.
성격이 좋고 친화력이 있다면.. 같은 능력에서는 선택될 기회가 훨씬 많을 겁니다.
(사실 기업들 입장에서는 능력은 다 엇비슷히 뛰어난데 요즘 아이들 성격이상한 놈 많다는걸
고민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ㅎㅎ- 능력은 있는데 오래 노는 아이들.. 인성문제에서 걸리는
경우가 의외로 많답니다. 면접해보면.. 호감 안가는 친구들이 많아요)
이런 점에서 진실이는 이미 큰 장점을 갖고 있을 듯...
'좋은 대학(?)의 문제는 결국 - 유능한 친구들과 사귀는 것(인맥)과
졸업후 진로(취업 또는 평생의 생계) 때문에 바라게 되는 것인데..
여기에 대한 대비가 있다면 반드시 그것에 얽매일 필요는 없는 것일 수도 있겠고요.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이 장차 그에게 행복한 삶이겠는가..가 아닐까요?
곧 성년이니까.. 진실이 스스로 자기 길을 고민하고 선택하는 것이 답일 것 같기도 합니다.
젊다는 것은 곧 기회가 많다는 뜻이겠지요. (쓸 수있는 화살의 수는 한계가 있겠지만)
부모를 포함한 주변의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정보와 지혜와 용기를 나눠주는 것뿐.
연구 많이 하셔서 최상의 길을 찾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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