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다섯아이키우기

스타크래프트를 삭제하다.

주방보조 2007. 11. 3. 01:47

우리집 오락은 제가 통제합니다.
물론 독재자라고 뒤에서 충신이가 흉보고 다니는 것 다 알고 있습니다. 교신이가 자주 일러바치니까.
교신이에겐 그렇게 형이 하는 말을 다 일러바치면 좋은 게 아니야라고 하면서도 ... 충신이 녀석의 속마음을 조금이라도 잘 알게 되는 유익을 은근히 누리고 있는 중이지요.^^

제가 컴퓨터로 하는 게임 중 인정하는 것은
테트리스류와 스타크레프트(이하 스타)입니다.
다른 자잘한 게임을 다운받아 하기도 하지만...
핀잔을 주기도 하고 재미없잖느냐 어르기도 하여 시들하게 만들어 버리거나
지나치게 잔인해 보이는 것은 단호하게 삭제 지시를 내리고 금지해 버립니다.
그러나
테트리스류와 스타는 권장하는 편입니다. 둘을 저는 정말 컴퓨터 게임의 명작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테트리스나 그 아류인 뿌요뿌요 같은 것은 시간이 그리 많이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서 가끔 반짝했다가 가라앉고 다시 떠오르고 합니다만
스타는 시간도 꽤 많이 필요하고 우리집 아이들에게 지속적인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주말이면
우리집 세대의 컴퓨터는 충신 원경 교신이의 스타 화면으로 고정됩니다.
마눌이 제일 싫어하는 시간이죠.
특히 요즘은 원경이와 교신이의 스타실력이 일취월장하여 저와 충신이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컴퓨터와 3:3으로 대결하거나 충신이와 동생들이 편을 가르고 컴퓨터도 끼워서 3;3을 하는 것이 주 종목이었습니다. 충신이가 컴퓨터를 못하는 날엔 제가 대신 그자리를 차지하였구요.

그러다가 얼마전부터
컴퓨터에 있어 우리집 최고수인 충신이...IPX로 하는 3:3 게임이 성에 차지 않는지
제게 자꾸 인터넷으로 하는 베틀넷에 대하여 언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예전에 강제로 차단시킨 '바람의 나라'라는 인터넷 게임이 있어서 잘 알고 있지만
인터넷 안으로 들어가 게임에 빠지기 시작하면 그 중독성이 강하여 시간과 정신에 심각하게 영향을 끼친다고 확신한 저는...충신이에게 분명하게 "금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또 충신이가 '아버지는 독재...금지만 하고..툴툴' 했다는 정보가 제게 흘러들어왔지요.^^

그러던 중
지난 주 금요일에
교신이가 혼자 스타를 하는데 화면이 이상했습니다.

나:이것이 무엇이냐?
교신:베틀넷이요
나:누가 접속하게 만들었지?
교신:형이요

충신이와 원경이 교신이 그리고 마침 와 있던 큰 녀석 둘을 불러 모으고
아주 심각하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한번만 더 베틀넷을 하는 것 걸리면 컴퓨터에서 스타 자체를 삭제해 버릴 것이다"
스타를 시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버츄얼 드라이브로 깔아 놓고 사용중이었기 때문에 이런 선언이 가능한 것이었지요.

...

토요일 좀 늦게 몸이 좀 좋지않음에도 불구하고 아차산을 다녀왔습니다.
마눌이 제게 일렀습니다.
"충신이가 당신없을 때 교신이와 컴퓨터를 하였다"고
제가 없을 때 좀 멋대로 하는 녀석이므로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 교신이의 컴퓨터를 켰습니다.
그런데 컴퓨터가 부팅을 하다가 멈춰버리는 것입니다. 가끔 있는 일이지만 마눌의 고자질도 있고 해서 교신이를 불렀습니다.
왠지 교신이의 표정이 굳어 있는 것이 제 신경을 자극했습니다.
너 어떤 게임을 했느냐? 혹 베틀넷을 한 것은 아니냐? 형이랑 같이 한 게임이 베틀넷이었느냐? 저의 계속되는 질문에 교신이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갔습니다.
드디어 "형이~"로 시작되는 변명이 녀석의 입에서 나왔고

저는 "이 어리석은 놈들~~~하루도 안 되어~~~"하며 컴퓨터에 저장된 스타를 모두 삭제해 버렸습니다.

...

충신이는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던 유일한 컴퓨터게임을 잃어버리고 기가 팍 꺾여 지내고 있습니다.

원경이는 자기는 억울하게 스타를 못하게 되었다고 오빠를 비난하고
누나들은 꼴 좋다, 아버지 말씀을 어기더니...하며 비아냥 거리는 중입니다.
교신이야 공범이니까, 게다가 이실직고할 수밖에 없었던 녀석이니까...제 눈치, 형 눈치 살피느라 그저 말이 없고요

...

몇달전 식구들이 모두 함께 읽은 마시멜로 이야기...를 충신이에게 상기시켜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경우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해보라고 '참지 못하면'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법이라고...

...

충신이는 이번 중간고사에서  성적이 약간 올랐고...그것이 녀석을 좀 방자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칭찬이 독이 된 경우랄까요.

이 아비의 마음에 이번 충격이 녀석을 좀 정신차리게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욕심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풀이 죽은 녀석의 몰골에
마음이 아퍼서 ... '야비하지만'  다음과 같은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이번 학기말 고사에서 평균 XX점을 넘으면...
다시 스타를 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고 하루를 더 할 수 있게도 해 줄 것이다"

녀석의 눈에 생기가 돌았냐구요?

아니요^^...

 

 

 

 

 

  • 김순옥2007.11.03 10:04 신고

    한얼이는 리니지라는 게임에 많이 빠졌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방황하던 시기에 그것으로 인해 엄마의 속을 끓였던 것도 사실이구요.
    한빛이는 잡다한 것들을 많이 한답니다.
    닌텐도를 비롯해서 일본만화, 이것저것 게임 조금씩, 유희왕 카드도 적당히...
    모범생의 척도를 어떤 기준으로 삼아야 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해서
    한빛이가 모범생이 아닌 것은 아니지요.
    외모로부터 풍기는 이미지를 비롯해 자타가 공인하는 모범생이니까요.
    그렇다고 성적이 썩 훌륭한 건 아닌데 친구들이 그런다는군요.
    "한빛이 너는 많이 놀게 생겼는데 어떻게 공부를 잘하냐"구요.
    그리고 어떻게 공부하면 잘할 수 있느냐구요.
    그런데 정작 툭별히 잘하는 반에서 1등하는 친구에게는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거네요.

    문제는 아이들에게 놀이라 할 수 있는 컴퓨터 사용시간을 어느정도 주는 게 적당하느냐겠지요.
    학교에서 설문지를 통해 조사를 했는데 한빛이 본인은 컴퓨터를 그냥 즐기는 정도로 사용한다고 나왔다네요.
    하지만 그것이 엄마의 제약에 의한 것이지 본인 스스로의 의지는 아니라는 게 문제지요.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기 때문에 한빛이의 경우는 수시로 컴퓨터 앞에
    들락거리며 하루에 2시간 이상을 사용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줄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 억제시키면 다른 곳으로 탈출할 기회를 노릴 수도 있으니까 잘 조정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답글
    • 주방보조2007.11.03 15:25

      리니지도 중독성이 꽤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해 본 적은 없습니다.
      하루 2시간이나 컴퓨터를하면서 모범생이 된다는 것은 ...나머지 시간 동안 집중력있게 공부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진실이와 충신이는...탈출을 좀 했었습니다.
      게임방도 몇번 들락거렸었다고...고백하는 것을 들었었거든요.
      문제는 '의지'라고 저는 봅니다.
      원경이는 나름대로 스스로 차단할 줄 아는데, 충신이는 그 제동장치가 무척 약합니다. 강제로라도 막아서지 않았다면
      아마 장난이 아닐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슬쩍 물어봤지요^^ 너 게임방 가고잡은 마음이 충만한 거 아니냐고...피식 웃더군요^^ 그리고는 학기말 시험에서 XX점을 넘기는 어려울 것같다고 하구요. 깍아주리? 하였더니 못 미더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학교에서 컴퓨터를 만지작 거리니까...숨통이 막힌 정도는 아닌듯 해 보입니다^^

  • 봄빛2007.11.03 10:16 신고

    문득
    머리를 스치는 걱정.. 기우이길 바라면서
    저희집도 아들넘들 대학가기 전
    게임에 대한 남편의 통제가 꽤나 철저했지요.
    그랬더니 녀석들이 주말이면 기숙사에서 나와 바로 집에 안 오고
    실쩍실쩍 게임방을 가더라구요.
    너무 차단 시켜버리면 럭비공처럼 예측 할 수 없는 나잇대를 사는 아이들이
    혹 다른 방향으로 튈수도 있다는 그런 얘기.

    주말..
    오늘도 평안하시길.

    답글
    • 주방보조2007.11.03 15:30

      그런 과거가 누군들 없겠습니까?
      저도 있는데요^^돈이 없어서...그냥 왕십리 골목길 방황하는 정도였지만...
      튈 때 튀더라도 일단 잡아놓고 보겠다는 것이 제 심사인 것이죠^^
      잘 잡히면 다행이고 튀면 쫓아가 다시 잡고...

      근데 그걸 아시고도 ... 안 일르신 것이죠? 현모양처세요^^

    • 봄빛2007.11.05 10:55 신고

      푸흐흐~
      저희집도 아이들 문제에 관해서는
      엄마보다 아빠가 더 관심이 많고
      또 그 또래 녀석들을 이십오년을 다룬 실력자라서
      아들녀석들 눈빛만 보면 인석들이 참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감을 딱~!!
      그러니 굳이 이를 것도 없이 들통이 나버리고..

      지금 돌아보면 쩜님 말씀처럼 과정에 불과했더라는 거지요.

    • 주방보조2007.11.05 12:22

      가엾은
      그러나
      운 좋은
      아드님들입니다. ^^

      25년된 도사아부지와 그 도사님을 자주 능가하는 어무이를 두었으니...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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